버려질래? 아니면 버릴래?

연애의 끝은 이별이다. 그 이별의 눈치 싸움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by UHA



유부

대학교 졸업직전 졸업 과정을 도와주는 졸준위 활동을 하게 되었다. 졸업 사진 스케줄 잡고 줄업에 필요한 학사모 대여 등 기타 행사를 주최하는 부분에 있어 학과 별 학생들이 활동하게 된다. 난 그 졸준위에 대표로 활동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사진 촬영 기사님들이랑 친해졌고 그 졸업사진 앨범을 만드는 업체와도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그 업체들은 내년에도 오더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간식도 밥도 게다가 술도 사주며 엄청 친밀하게 지내려고 했고 자연스럽게 비슷한 나이인 사진 기사분들과 친해졌다.

나는 그때 21살이었고 사진기사 중 제일 젊은 배씨는 24살이었다. 배씨는 대학은 가지 못했고 고등학교 졸업해서 바로 취업하여 지금의 사진 촬영 업체에 취직했다고 했다. 업체와의 술자리는 잦아졌고 사진 촬영이 다 끝나 이제 만날 일이 사라졌지만 배씨와 사적인 연락을 종종 하며 하교 후 알바가 없으면 만나서 밥도 먹으며 썸 아닌 썸을 타고 있었다. 그러다 배씨의 고백으로 사귀게 되었다.


"저랑 만나요 제가 잘해 줄게요. 하영씨 마음에 들어요. 우리 잘해봐요."


그렇게 배씨와 연인이 되었다. 동기들 간에 술자리 끝날쯤 와서 술 계산하고 집 앞에 택시까지 태워서 집에 보냈고 일이 없으면 저녁마다 맛집을 다녔고, 가끔 시간이 있으면 사진 촬영 업체 놀러 가서 종종 그 친하게 지냈던 팀장님과 밥도 먹으며 다른 연인과 다른 것 없이 20대 연인처럼 순수하게 연애하며 서로 잘 지냈다.


그렇게 연애 한지 2달이 넘어 3개월 되어가는 시기에 낯선 번로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유하영씨 맞나요? 저는 배씨 아내인데요."

"예?"


당황스러웠다. 머지? 정말 어이가 너무 없었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먼가 엄청난 걱정과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속으로 딱 한 가지 생각났다. '아 식빵 똥 밟았다. 도그 베이비' 그냥 더럽고 그 아내한테 미안함이 몰려왔다.


"당연히 모를 거라 생각했어요. 그럴 사람이에요. 하영씨 제가 남편 관리 제대로 못해서 제가 죄송해요. 빠르게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당연하죠. 정말 몰랐어요. 알겠습니다."


배씨의 아내가 안타 끼웠다. 그 당시 핸드폰에 전화번호를 저장하면 페이스북에 친구추천으로 떴다. 무서운 IT 세상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고를 쳐서 아내가 나랑 동갑인 21살이었고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가 있었으며 아내의 집에 배씨가 얻혀서 살고 있었다. 곧장 배씨에게 전화해서 사실을 말했고 정리하자고 하니 나를 붙잡고 회유했다. '나 자살할 거야', '나 이혼 소송 중이야', '너 아니면 안 돼', '그 아기 내 아기 아이야' 등등 말도 안 되는 말을 쏟아부었고 전화번호 차단을 하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를 오거나 발신자 표시제한으로 전화를 오기도 했다. 나는 그때마다 배 씨 아내에게 알려줬고 배 씨 아내에게 문자가 왔다.


'이런 거 알려주지 않아도 돼요, 연락 와도 무시하시고 이런 연락 안 주셨으면 좋겠어요.'

'발신자 표시 제한으로 전화 오고 주변인들 핸드폰으로 전화 오는 게 저는 스트레스입니다. 남편관리 제대로나 하세요.'


라고 하며 보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씨한테 연락이 엄청 왔다. 결국 학교까지 찾아와서 내가 획을 그었다.


"나 너 같은 남자 별로야, 네가 이혼을 깔끔하게 하고 서류에 정말 너 혼자가 되고 돈을 떳떳하게 많이 벌어서 외제차 몰고 와서 정말 멋지게 나한테 오면 내가 받아 줄게, 지금 너 모습 지질해 그만해"


다시 와도 안 받아 줄 거지만 이후 나는 남자를 만나면, 여자친구 있냐는 말에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지만 '아내가 있나요? 애가' 있어요? 질문을 하는 이상한 여자가 되었고 누구든 대답에 멈칫하면 과감하게 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관계가 깊어져도 다른 사람 눈에 흘리게 하면 나중에 내가 피눈물 흘리게 된다. 그냥 이런 쓰레기는 갖다 버려야 한다.



안부

천안에서 타지 생활 할 때 친구도 없고 내 또래도 없었다. 동료 교사들은 다들 40대, 50대 아주머니 선생님들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어울리는 친구 또래가 없었다. 그때 대학 친구가 추천해 줬다.


"하영아 자동차 동호회 들어가! 재미있을 거야!"


그렇게 나는 동네 친구를 만들기 위해 자동차 동호회를 들어갔다. 그 당시 내 눈에 들어온 그놈은 채씨였다.

순박한 녀석이었다. 순수했고 거짓말도 진실처럼 믿었고 웃더라고 조용히 입 꼬리만 올라가고 말을 하기보다는 듣고, 나서지 않고, 조용히 가만히 있고, 소심하고, 낯도 가리는 순박한 남자였다. 직업이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들 커피 마시러 동호인끼리 카페에 모이면 땀에 절어서 늦게라도 끝물에 참여했고 오면 모든 사람들에게 음료를 사줬다. 진짜 지갑이 정말 잘 열리는 '호구는 뭐지?' 싶은 남자였다. 그렇게 저녁에 종종 모이는 남자였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분식집을 운영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머니랑 이모랑 셋이서 장사를 하고 가게는 너무 잘돼서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어서 저녁까지 종일 튀김을 튀기고 떡볶이를 만들고 김밥도 만들며 메뉴가 다양했다. 이후 일주일에 2번은 동회인들 다 같이 분식집에서 야식을 먹었고 자연스럽게 이모님과, 채씨 어머니와 친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착한 호구'는 우리 집 앞으로 매일 저녁마다 이쁜 작은 호수의 케이크와 빵을 사서 주고 갔다. 정말 매일 케이크를 들고 왔다. 덕분에 매일 나와 우리 동료 선생님들은 질리게 케이크를 먹었다. 그렇게 보름 동안 받기만 하기 미안해서 밥을 사줬다. 그날 그렇게 서로 마음을 확인하고 연인이 되었다. 채씨 사장님과 연애를 하면서 여행도 다니고 정말 행복하고 즐거운 연인다운 연인 사이였다. 어머니는 나를 너무 이뻐하셨고, 주변 사람들도 너무 나를 잘해 주셨다. 그렇게 연애 한지 6개월쯤 될 때 분식집 옆 가게 빵집에 일하게 되어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줄 알았다.


"우리 엄마, 감기가 1월부터 시작해서 3월인 지금 까지 기침이 멈추지 않아 각혈도 하고"


그렇게 정밀 검사만 3개월이 더 걸려 여름이 들어가는 시기에 알게 되었다. 채씨 사장의 어머니가 폐암 말기에 온몸에 혈관을 타고 암이 번져 있었고 수술을 하는 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많이 편찬아 지셨다. 그렇게 채 씨는 분식집을 혼자 운영해야 했고 일은 많아지고 정신은 없어지고 나를 생각할 자리는 사라졌고 '데이트 하자'고 말하는 건 곧 '너희 엄마 죽고 이제 나를 봤으면 좋겠어'라는 말이랑 같은 뜻이었다. 1년 연애 동안 제대로 된 데이트는 6개월 정도였고 이후 가까이 있지만 서로 안부는 물으며 밥 먹는 건 사치가 되었고 연인 사이였지만 연인이 아니었다. 서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왜냐 하면 이 시간에 무엇을 할지는 뻔이 알고 있었고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으니깐. 그렇게 자연스럽게 우리는 이별 통보 없이 이별을 하게 되었다.


결혼하자라고 말했었고 정말 행복했고 서로 여행 다니고 놀러 다니며 우리 결혼하면 아이랑 오자고 하고, 서로 부모님 생일이면 축하해 주고 가족 행사도 참여하고, 부모님이 옷도 사주고 같이 쇼핑도 다니면서 예비 며느리 소리 들으며 정말 행복했던 기억과 추억은 어디 갔는지 모를 정도로 정말 조용히 계절이 변하서 옷을 정리하듯 자연스럽게 남이 되었다.


아무리 사랑해도 관심이 사라지고 무엇을 하는지 뻔히 알고 있으니 안부를 묻지 않는 사이가 되면 그냥 남이 되는 것이다. 나는 이후 나에 대해 안부를 묻지 않는 사람을 만나면 곧 이별하겠구나 불안에 떠는 사람이 되었다.




집착녀

2소(2종 소형 면허)를 한 번에 따고 R3라는 일제 오토바이를 사서 타려는데 혼자 타는 건 위험하니 동호회를 들어갔다. 거기서 적극적으로 나의 바이크 연수를 도와주는 김씨와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더운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당연히 200만 원 가까이 되는 보호장구는 무겁고 두꺼웠고 필수였다. 수고해 주고 고마워서 나는 이열치열 누룽지 삼계탕을 사줬다. 배부르게 배를 채운 후 동호회 급벙에 참여하였고 둘이 붙어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김씨가 고백하여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바이크를 타며 강원도, 경기도 파주, 등등 여행을 다녔고 맛있는 명물 음식과 행복한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서로 우린 너무 잘 맞아라고 생각하며 지내는데 느닷없이 이별 통보를 받았다.


"너는, 너무 집착해 내가 내 생활을 할 수가 없어, 스트레스받아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져"


정말 어이없어서 멍해졌다. 집착? 나는 너 하고 싶은 거 하게 하고 너 친구 만나고 형 만나고 무엇을 하든 다 승낙해 줬는데 무엇이 문제지? 정말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변명인가? 헤어지고 싶은데 이유를 굳이 만든 건가? 정말 어이가 없다는 말만 떠올랐다. 이별의 아픔보다는 나의 문제를 파악하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우선이다. 정말 난 T발 C다.


서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 안부를 묻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사람은 그게 집착이라고 한 것 같다. 심심할 때 통화 하루에 3번 정도 걸었고 그 3번도 거의 2분 이내 뭐 하냐 하는 안부였지 수다가 아니었다. "형들이랑 있어"라고 하면 그 자리가 끝났나 싶어서 몇 시간 후 묻는 문자를 보내면 김씨는 "아직 같이 있어"라고만 단답형으로 대답이 왔다.


연애란 어렵다. 연락이 없으면 나의 관심이 떨어졌나 이대로 이렇게 암묵적인 잠수 이별인가 싶고 관심을 주면 집착이라고 한다. 내가 먼저 굳기 전에 연락을 주는 사람은 없는 건가? 난 이렇게 이별할 것 같은 분이기도 눈치도 모르게 '집착녀'라는 이유로 버려졌다.



협박

아주 옛날 나 중학생 때 짝사랑했던 오빠가 있었다. 성인이 된 24살 때 잠깐 한 달 정도 후 잠자리를 가졌고 그 주 주말에 연락이 두절되었다. 일본 간다고 했는데 일본 가면서 나를 버린 거였다. 정말 화가 나고 정말 쓰레기라고 생각하고 욕두문자 카톡을 보냈다. 숫자 1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게 잊혀졌다. 그렇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우연히 카톡 업데이트되면서 최근 프로필 변경한 인물이 상단에 뜨면서 그 이박사도 뜨게 되었다.


"살아있냐?"


라고 카톡을 보냈는데 곧장 답장이 왔다 그것도 장문으로, 내용은 네가 연락을 줘서 너무 고맙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너랑 데이트하고 일본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노트북, 핸드폰 전부 잃어버렸고 복구를 하는데 시간이 걸렸으며 복구 후 메시지를 보니 나는 이미 쓰레기가 되어 있어서 연락을 할 수 없었다는 변명을 아주 멋지게 장문으로 나에게 보냈다.


우연히 내가 카톡을 보낸 시기는 이박사가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다 마치고 한국으로 귀국하기 3일 전이었다. 연인으로서 감정은 없었지만 중학생 시절 같이 학생 캠페인, 환경보호 운동, 봉사활동 하던 성실한 사이였기에 옛 감정을 생각해 밥을 먹으려고 만났지만 다시 연인 관계로 까지 이어져 갔다.

내가 알고 있던 이박사는 엄청난 사람이었다. 중학생 시설 이박사는 똑똑하고 공부도 잘하고 키도 크고 피아노도 엄청 잘 치고 대단한 인물이었는데 성인이 된 모습은 그냥 평범한 백수 남자였다. 이박사는 일본에서 탄소나노튜브 연구한 최연소 박사라고 했지만 나에겐 이제 갓 졸업한 취준생이었다. '박사'라는 타이틀도 사실 나의 직업이 연구하는 일이라 박사가 너무 넘쳐 났고 교수와도 인연이 깊어 높은 학력은 더 이상 나에겐 어필 요소가 될 수 없었다. 정말 그냥 평범한 백수였다.


그렇지만 그의 끈질긴 구애 끝에 내가 좋아서 만난 사이가 아닌 그 사람이 나를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연인 관계가 되었다. 하지만 그는 백수였고 돈이 없었기에 모든 식대 데이트 비용은 내가 다 내야 했다. 카페조차도 들어가면 자기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나만 주문하고 계산도 내가 했다. 편의점에서 우유 한번 사 먹은 적도 없다. 지나가다 맛있어 보이는 과일이 있으면 '난 과일 안 좋아해'라고 하며 그냥 지나갔다. 그렇게 돈을 아예 쓰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너도 좀 편의점에서 반지 사탕이라도 사 오면서 '오다 주었어 너랑 자 어울릴 것 같아' 같은 멘트도 할 줄 모르냐 소리쳤다.


그다음 주에 자기가 쏜다고 먹고 싶은 거 말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족발"이라고 말했더니 기다리라고 하더니 끙끙 거리며 핸드폰을 한참을 20분 이상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왜?"

"이거 정부지원금으로 사주려고 했는데 이게 한정 금액 이상 주문해야 할인을 받을 수 있어 그런데 계좌에 돈이 없어서 지금..."

"됐어, 그냥 내가 살게"


이런 식으로 4개월 동안 나는 30이라는 부족한 용돈으로 데이트 비용까지 혼자 감당하려니 결국 또 비용 관련해서 소리쳤고 이후 이박사는 점심을 집에서 먹고 데이트하고 저녁밥 먹기 전에 집에 들어간다고 말을 했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나도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다. 4개월 동안 수많은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고 그 많은 회사들 중에 자기가 원하는 연구가 아니 거나 급여가 맘에 안 든다고 번번이 취소했다. 취직을 할 때까지 기다려 보자 했지만 결국 내가 헤어지자고 했다.


"너의 감정에 앞에서 그렇게 말하지 마, 너 후회해 나중에 내가 얼마나 잘되고 돈도 많이 벌고 너 풍족하게 행복하게 네가 나가서 일하지 않고 너 하고 싶은 것만 하게 해 줄 수 있는데 지금 이 감정 때문에 나랑 헤어지면 안 돼 생각 잘해!"


나 에겐 협박이었다. 모르는 미래를 가지고 현재 힘든데 이 힘든 건 참고 헤어지지 말라는 건가? 나는 현재가 중요 하단 말이야. 지금 이렇게 못 해주는데 돈을 떠나서 감성도 유머도 없는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미래를 위해 헤어짐을 다시 생각하라고??


'힘들지 미안해'가 아니었다.


난 처음 미래를 걸고 지금을 후회할 거라는 말을 들었고 그렇게 내가 이박사를 버렸다. 이박사 에겐 엄청 큰 상처 일 테고 자존심이었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노력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너무 당당했고 제일 큰 건 현재가 아닌 미래를 걸고 협박하는 모습에 나는 쌍년이 되었다.

이젠 미래 가치를 가지고 협박하는 사람은 만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지도

회사를 이직하면서 자리도 잡았고 가족관계도 경제적인 부분도 안정기가 찾아와 남자친구 말고는 모든 게 채워진 상태였다. 그 남자친구 다들 어디서 만나는지 나에게도 짝이 있는가 싶은 생각으로 살던 중 친구의 소개로 8살 연상의 벤츠남을 만나게 되었다. '돈 없는 남자는 만나지 않아'라고 생각했던 나에겐 호기심을 유발을 안 할 수 없는 남자다.


술을 참 좋아하는 사람이다. 좋아함을 넘어 알코올 중독이다. 술을 먹으면 어머니와 아버지를 학창 시절 잃었던

아팠던 과거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하는 불쌍한 사람이다. 본인은 운이 없는 사람이다 라며 매번 내 앞에서 울었다. 참 안타깝다. 마치 내가 히어로가 된 것 같이 '이 사람을 내가 변하게 해야지'라는 욕심을 생겼다. 그렇게 매번 서럽게 울 때는 다독였고 '너를 버리지 않아'라고 말했다. 어느 날 그 벤츠남이 말했다. 10년 동안 한 회사를 다니면서 착실하게 모은 돈이 아니라 버는 도는 다 쓰고 입사 당시 구입한 자사주로 대박을 쳐서 벤츠를 구입한 거였고 현재 살고 있는 집고 전세였으며 풀 대출이었다. 엄청 큰 현금 부자는 아니었지만 그냥저냥 평범한 카푸어 30대 남자였다.


만남 전부터 결혼 전제를 약속한 사이 여서 만난 지 8개월 차 되었을 때 결혼 이야기를 꺼냈다. 벤츠남은 브랜드 30평 아파트 아니면 결혼하기 싫다고 말을 했다. 나는 속으로는 '나랑 결혼하기 싫은 건가?' 싶었다. 그 말하기 무섭게 10년 다닌 회사를 그만두었고 이유는 말 같지도 않은 동생 결혼 하는데 부모가 없으니 본인이 5천만 원 정도 결혼 자금으로 주고 싶어서 퇴직금을 받았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지금 이 시점에 회사를 그만둔다고? 너 나랑 결혼할 생각이 있니?"

"사실 가지고 있던 주식이 폐지돼서 돈을 다 날렸어, 나 거지야."

"괜찮아 우리 젊잖아 나도 벌고 있고 하나씩 하면 돼"


나의 말은 벤츠남 귀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날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는 우리 집에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침대 매트가 축축했다. 보니 벤츠남이 내 침대 위에서 지도를 그린 거다. 그 사실을 알자 민망한 듯 씻지도 않고 눈곱이 가득하고 이제 막 깬 그 벤츠남은 도망가듯 우리 집에서 도망처 나갔다. 뒷정리를 다 하고 "괜찮아 고의적인 게 아니잖아" 그 말을 했지만 수치스러웠는지 조용해졌다.


눈치껏 시간이 조금 흘러 다시 이야기를 꺼냈다.

"내가 아파트 20평 신축 정도는 구할 수 있어 우리 그 집에서 시작하자"

"아니야, 나 아직 혼자가 좋아"


연애 이전 먼저 결혼 이야기를 꺼낸 건 벤츠남이었고, 나 또한 그를 만나 너무 힘들고 지쳤지만 그래도 결혼을 목적이 남아 있어 만남을 이어간 거라 싫다고 말하니 난 더 이상 이 남자를 만날 이유가 사라졌다. 안 사랑 한건 아니다 좋아했다. 매일 술만 먹으면 울고 침대에 지도를 그리는 게 잦아졌고 나는 뒷 처리 하고 매번 마음을 달래기만 하고 백수가 돼서 집에만 있고 일을 구하거나 창업을 할 생각을 하지도 않고, 나가지도 않고, 피폐해지는 그를 보면서 정이 조금씩 떨어졌고, 차라리 본모습을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다 생각했다.


"너네 집에 있는 짐 다 가져갈게 무슨 의미 인지 알지?"

"응 알아, 나 때문에 힘들었지? 나 사실 너랑 결혼 생각은 없었어 그냥 네가 너무 착하니깐 헤어지자고 말을 못 한 거뿐이야 잘 가"


나는 그렇게 버려질 뻔했던 나를 내가 버릴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나는 그렇게 울보 오줌싸개를 버렸다.

착해서 말을 못 했다니. 이렇게 나는 착한 트리우마가 생길 것 같다.

아무리 사랑하고 좋아했던 감정이 있어도 나의 전성기를 이런 놈에게 질질 끌려갈 수는 없었다.



다음

다음의 사람은 과연 나의 미래를 같이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전에 남자들처럼 별 같지 않는 이유로 나를 버리거나 내가 버리거나 하지 않을까?

완벽한 사람은 없는 거 알지만 재미로 연애가 아니라 정말 나와 같이 미래를 같이 꾸려갈 남자를 만날 수 있을까? 경험이 많을수록 조건을 늘어가고 연애를 하고 있으면서도 같은 레퍼토리가 느껴지면 똑같은 이유로 이별을 할까 봐 두려운 건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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