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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pr 10. 2022

머핀 뚜껑(?!) 따먹기와 축의금 먹튀

고맙지만 안 고마워! 안 미안해서 미안해!(1)

<커버 이미지-어느 해 생일, 친구가 생일선물을 담아 준 종이백>

‘대체 나한테 왜 그래?’라는 문구를 보고, ‘얘가 대체 나한테 왜 이러지?’ 하며 흠칫했는데, 백을 반대쪽으로 돌렸더니 손가락 하트와 함께 ‘사랑에 빠지겠어!’라고 쓰여있었다. 친구의 센스와 종이백의 유머러스함에 웃었다. 그런데 살다 보니 이 종이백의 한 면만 잘라서 피켓처럼 들어 보여주고 싶은 순간들을 연출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존재했다.






(*지금부터 소환해 보려는 에피소드들은 J 사회생활 중에 직접 경험한 것들이며, 과대/과장 각색은 하지 않음을 알려드립니다. 소상히 밝히는 이유는, 절친한 친구들과 수다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가 에이 설마, 진짜로 그런 사람이 있어?’라며 좀처럼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머핀 뚜껑(?!) 따먹튀


입사 시점 내가 들어간 부서에는 부서장과 나의 사수, 둘 뿐이었다. 알고 보니 부서장은 본인이 부서를 신설하고 자리를 스스로 만들어 앉은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만큼 성격이 강했고, 욕심도 많았다.


내가 입사하기 전 홀로 그런 상사와 부서 업무들을 오롯이 감당하던 사람이 내가 존경하는 첫 사수다. 나의 사수가 부서 후배로 들어온 나를 특히 더 반기고 아껴주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대장과 단 둘이 근무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대체 ‘저 사람이 미친 건지 내가 미쳤는지’를 의심하게 될 만큼-그야말로 미쳐버릴 것 같은 때가 많다는 걸, 나도 막내이자 비서 역할을 하면서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다.



당시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탕비실에 아침마다 요깃거리를 제공했다.

도넛과 머핀 등이 준비된 어느 날 아침, 먼저 출근한 선배님은 커피 한 잔과 머핀을 자리로 가지고 오셨다.

그런데 그 몇 초 후, 높은음 ‘솔’ 음성으로


“굿모닝~”


하며, 대장이 막 출근을 했다.

그리고, 그녀가 당신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선배님의 머핀이 그녀의 눈과 마주친 모양이었다.


“어머~ 맛있겠다! 얘, 좀 나눠먹자.”


라는 그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그녀는 머핀에 손을 뻗어 봉긋하게 솟은 윗부분을 싹 따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갑분싸’라는 말이 있지도 않던 시절이었는데, 그 순간은 정말 갑분싸였다.

나는 내가 대신 사과하고픈 표정을 지으며 말없이 사수를 바라봤고, 어이가 없어 잠시 얼음이 되었던 선배님의 얼굴에는 곧 불쾌감이 번졌다.

그깟 빵조각,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기엔 옆에서 보기에도 정말 기분이 상하는 걸 넘어 화가 치미는 행동이었다.


유별나기로 소문난 부서장을 수년째 견디고 있다고 다른 팀 동료들에게 ‘돌부처’라 불리던 선배님은 그런 품성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윗동이 댕강 잘린 채 밑동만 떨렁 남은 머핀은 곧바로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기분 좋게 시작한 새 아침에 갑자기 당한 불쾌함을 던져 버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기적인 대장은 본인의 굿-굿모닝을 위해, 우리들의 굿모닝을 배드 모닝으로 한 순간에 바꿔놓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한참 사람들 사이에서 ‘치킨을 시켰을 때 닭다리를 혼자 다 먹는 연인’에 대한 논쟁이 일었을 때, 나는 십수 년 전 머핀 사건이 떠올랐다.

닭다리나 빵 한 조각이 뭐가 대수라고! 하며 그냥 넘어가기에는 어쩐지 저 깊은 속에서 묵직한 불쾌감이 올라오는 종류의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걸 상대에게 따져 말하기엔 또 내가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 같고.


대수롭지 않은 작은 행동이 그 사람의 성향과 마음가짐을 훤히 드러냄이 분명하다는 걸 시간이 가면서 더 잘 알게 되었다. 함께하는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나타나는 그런 사소함은 대부분 한 사람의 됨됨이와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난 아직도 머핀만 보면 지독히도 자기밖에 모르던 당시 부서장의 ‘머핀 뚜껑 따먹튀’ 장면이 떠오른다. 직접 당하지도 않은 내가 이렇게 오래 기억하는 걸 보면, 결국 그 행동은 작지만 결코 가볍지 않았음에 틀림없다.


그러니 누구든 혹시 다른 이와 머핀을 나누어 먹을 일이 있다면, 머핀 뚜껑만 똑 따서 자기가 먹는 만행(!)은 절대 하지 말았으면 한다. (그런 사람 아마 더는 없겠지… 내가 봤던 그가 세상 유일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 닭다리도 하나씩 나누어 먹자. - 상대가 원래 닭다리를 싫어해서 나에게 극구 양보하지 않는 이상.


<머핀의 진미는 뚜껑! Copyright-dreamtime>






축의금도 먹튀가 있네요


나는 회사 입사 3년여 후 즈음 결혼을 했다.

내가 날을 잡고 난 후 업무적으로 접촉할 일이 종종 있었던 타 부서 친구가 내게 먼저 청첩장을 주었다. 나이도 나와 동갑이었고, 결혼도 단 보름 간격으로 그녀가 신혼여행을 다녀오면 내가 곧 식을 올릴 상황이었다.

그 동료의 결혼식은 서울이 아니고, 나도 결혼 준비로 다른 일정이 있던 날이라 직접 참석이 어려웠다.


그녀의 결혼 전 마지막 출근날, 나는 정성스럽게 결혼 축하 편지를 한 장 써서, 축의금 봉투를 가지고 다른 층에 있는 그녀 자리로 찾아갔다.

직접 가서 신부 얼굴 보고 축하를 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결혼식 잘하고 행복한 신혼여행 다녀오라는 인사를 했다. 그리고,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이 나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고 내 청첩장을 건넸다.



누가 강요하거나 필수적인 건 아니지만,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경조사 후에 축하나 위로를 전한 동료들에게 다시 감사를 표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그런 것은 그만두고 잘 다녀왔다는 간단한 전화나 이메일 인사도 없었다. 신혼이라 정신이 없나 보다 하고는 나도 다른 층에 있는 그녀를 만나러 가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 결혼식 날짜가 다가와도 그녀의 축하는 없었고, 결혼식도 역시 불참했다.


결혼식 전후로 얼마나 바쁘고 힘든지 나도 모르는 바 아니어서 그냥 이해하려기엔 서로 청첩장을 나눈 때와 결혼 날짜들이 너무 가까웠다. 그 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마주친 그녀는 마치 모르는 사람같이 내게 데면데면하게 굴더니 그냥 눈인사만 했다.


<축의금도 먹튀가 있단걸 직접 겪고야 알았다. Copyright감성아지트>


나는 식을 마치고 돌아와 넉넉하게 준비한 답례떡을 전사에 나누었다. 먹는 건데 다 같이 나눠먹어야지 싶어 청첩장을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뒤늦게 결혼 소식을 전하고 인사했다.


“축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떡 위에 붙인 스티커가 무색하게, 내가 결혼을 축하해 주었던 그녀는 결국 나의 결혼은 축하해 주지 않았다. 그녀는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그저 사무적인 동료가 됐다.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해 미안하다 말한 내가 과연 미안해야 하는 입장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고맙지만 안 고마워!’

‘안 미안해서 미안해!’


라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은 실제로 있었다.





종족 이론 


상대가 내 마음 같지 않아서 생기는 서운함은 서로 잘 알고 익숙한 가족이나 친구사이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그러니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들과는 오죽할까.

사람들의 그런 행동은 불시에 튀어나와 나를 당황시키거나 심지어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경험하며 점점 더 많이 알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교훈을 얻고, 조심하려 노력한다. 혹시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어쩌면 나와 다른 사람이 나 같기를 바라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은 이미 나와 ‘같은 종족’이기 때문에 가까운 것이었다. 비슷한 종족끼리는 서로를 끌어당기고, 편안함을 느끼면서 더욱 가깝고 오랜 관계가 될 수 있는 거였다.

그런데 세상에는 다양한 종족들이 흩어져 살고 있으니, 어떤 종족인지를 알려면 오직 부대끼며 경험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인간관계에 이런 종족 이론이 적용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어른이 되면 다 아는 줄 알았는데, 내가 다양한 종족들과 세상살이에 새로이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들은 끝없이 이어졌다.



*다음 편에 시트콤 같은 ‘고맙지만 안 고마운’ 에피소드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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