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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Jan 25. 2024

졸업이 한 달 남은 사람의 근황

백수인 듯 아닌 듯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딱히 이유는 없다. 아, 사실 오늘 오랜만에 커피를 두 잔 마셨다.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근에는 전혀 각성이 되지 않은 상태로 지냈다. 햇살처럼 쏟아지는 나른함에 온몸을 맡기고 마냥 즐기고 있었다. 공격적으로 카페인을 섭취하다가 이제 모든 것이 끝났으니 잠깐 각성 상태를 멈추었다. 굳이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할 수 있는 분량의 일을 처리하고 있다. 백수다 거의.


그래도 최근에는 과제가 마무리에 들어서서 종료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는데, 팀원들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졸지에 내가 책임자를 맡게 되었다. 오래간만에 커피를 마신 것도 이 때문이다. 꼼꼼한듯하지만 어딘가 허술한 자신을 잘 아는 나는 또 혼자 전전긍긍하다가 뻗어버렸다. 작은 것에 의미 부여하는 버릇은 정말이지 고쳐야 한다.


짧게나마 졸업을 알리는 게시물을 올리고 읽어주시는 분들의 축하를 받았다. 그 김에 내가 이제까지 써온 글들을 읽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상당히 분위기가 다크 해지는 것이다. 그냥 막 제목만 봐도 생기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 사실이 상당이 웃겼다. 당연하지. 한 학기 차와 졸업준비생은 눈빛부터가 다르다. 나는 그동안 반짝반짝하던 열정은 살짝 잃었고 대신 체중과 피로와 다크함을 얻었다. 그 와중에 꾹꾹 진심을 눌러써서 읽기만 해도 그때 내 마음이 어땠는지가 기억이 났다.


버텨내 주어서 감사했다. 감사의 대상은 모든 사람들. 단, 내 졸업을 힘들게 했던 것들은 아직 원망 중. 하지만 또한 술안줏감이 같다. 나는 이런 내가 힘들었던 일들은 꽤 빠르게 미화시키곤 하니까.






건강이 드디어 정상 궤도에 올랐다. 의욕이라는 게 생기기 시작했다!!


졸업이 걸려있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조급함이 사라졌다. 그래서 최근에 그냥 막 쉬었다. 그런데 마냥 쉰 건 아니다. 아팠기 때문이다. (약간의 msg가 없다고 하진 않겠다.)


그래도 여전히 나는 뭔가 "하고 싶어서 안달"인 상태긴 하다. 최대한 그 마음을 누르고 있다. 제대로 쉬지 않으면 나는 분명 욕심을 낼 거고, 그건 이 건강 상태로는 안 될 말이다. 적어도 내 연인은 내가 야근이라는 단어만 말해도 연구실에서 끌고 나올 거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아무튼 졸업은 이제 한 달 남았다. 나는 3월부터는 자유의 몸이다.


완전한 자유는 아니다. 나는 내가 거의 3년 동안 진행한 논문을 투고할 것이고 저널에서 revision 요청이 오면 당연히 추가 분석을 진행할 것이다. 과제에서 또한 아직 논문화 해야 하는 연구도 남았다. 이건 이전 연구원이 맡아서 하던걸 내가 넘겨받은 것이다. 사실 여기서도 하고 싶은 게 정말 많았는데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서 꾹 참고 있다.


지도교수님께서는 내가 6개월 더 연구원으로 고용되어 연구를 진행하기를 바라셨다. 나는 이게 지금까지도 은근히 고민이 된다. 힘든 기억이 가득한 그 좁은 공간이 진절머리 나면서도 뭔가 연구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동시에 든다.


이것은 열정인가 아니면 그저 관성인가.

조금씩 할 일이 생기니까 귀찮고 기쁘다. 왜 그런지 생각해 봐야겠다.


이왕이면 좀 쉬면서 생각해보려고 한다. 쉬고 난 다음에 다시 하고 싶으면 그때 가서 생각해 봐도 될 것 같다. 이게 열정이면 좋지만 실은 관성일 가능성이 더 높다. 나는 떠나보내는 걸 자주 망설이니까.


아무튼 지금을 즐기고 있다. 잘 먹고 잘 잔다. 나를 소중히 다루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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