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Apr 28. 2024

유학 준비생의 연애

꿈을 꾸거나 사랑을 꿈꾸거나

연인의 존재는 유학 준비 과정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물론 솔로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솔로인 경우에는 안심하고 유학을 준비하면 될 것 같다. 고민거리가 하나 줄어든다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러니 연인이 있는 유학 준비생들이라면 적어도 한 번은 꿈과 사랑을 저울질하는 심판대에 오르게 된다.






유학을 준비하는 한국 학생들 대다수는 석사를 한국에서 하고 그 후 박사 유학을 가려고 한다. 장점은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충분한 연구 경험과 스펙을 쌓아 좋은 학교로 박사를 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데 있는 반면, 단점은 시간이다. 박사유학을 갈 때쯤에는 조금 이르지만 결혼적령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에 유학과 결혼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을 유학 커뮤니티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유학을 떠난다는 것은 인생이 한번 크게 바뀌는 경험이다. 유학길에 오른 사람은 분명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국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안정적인 자원들을 희생하고 가는 만큼 커다란 변화와 부딪친다. 연인관계에 있어서도 선택을 해야만 한다. 한국에 남아 안정적으로 관계를 지킬 것인지, 불확실해지더라도 꿈을 향해 도약할 것인지.






주변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커리어와 사랑의 기로는 꼭 유학이 아니더라도 급격한 커리어의 변화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게 되는 것 같다. 실제로 많은 연인이 헤어지는 시기가 신분이 바뀔 때라고 하지 않던가. 예컨대 대학생에서 수험생이 되거나, 취업 준비생/직장인이 될 때를 말한다. 대학생 때 만나서 좋은 인연을 이어가던 커플 중 한쪽이 대학원생이 되자 다른 쪽이 대학원생의 생태를 이해하지 못해서 사이가 소원해지고 끝내 헤어진다는 이야기도 자주 들었다.


신분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은 곧 가치관의 변화를 뜻한다. 개인이 지어야 하는 책임과 기대가 달라지면 우선순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막연하게만 꿈꾸던 미래가 구체화된 상태로 눈앞에 놓이면 그에 따라 내가 가지고 있던 것들이 재배열된다.


무조건 빨리 결혼하겠다던 사람은 입사하고 나서 결혼은 천천히 하겠다고 생각이 바뀌기도 하고, 꿈과 사랑 중 주저 없이 사랑을 택하던 사람이 막상 선택의 기로에서 커리어를 선택하기도 한다.

유학을 고민하던 사람들도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눈앞에 마주했을 때의 마음가짐은 많이 달라진다고 한다.






지금의 연인과 사귈 때 나는 처음부터 유학을 갈 생각이 있음을 밝혔다. 그는 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고, 자신도 미국에서 직업을 구할 용의가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현실은 마음 같지만은 않아서, 경력 없는 학생이 바로 미국에 취업하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한국에서 경력을 쌓은 이후 다시 회사에 이력서를 넣어보겠다고 했지만 그 말이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둘 다 알고 있었다. 나는 그제야 남들이 다 하는 꿈이냐 사랑이냐 하는 고민에 빠졌다.


본디 나는 일과 사랑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망설임 없이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었으나, 현 연인을 만나면서 가치관이 거의 송두리째 바뀌어버렸다. 내가 누군가와 미래를 함께해야 한다면 이 사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과 사랑을 둘 다 가지고 싶어 죽겠는 나는 걱정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기본적으로 유학과 안정적인 결혼 생활은 tradeoff (상충) 관계에 있는 것 같았다. 아무리 안정적인 커플이라도 자주 만나지 못하면 소홀해진다는 게 정설인 마당에 심지어 시차까지 있으면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는 양쪽 다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한쪽이 군대를 가거나 교환학생만 가도 힘들어하고 헤어지는 사람이 많은 마당에 기본적으로 시차도 있으면서 5년 이상이 걸리는 박사과정을 오롯이 기다리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결혼 확신이 들었던 상대와 서먹해지기에 차고 넘치는 시간이다.






결국 나는 판단을 유보하는 대신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끝끝내 어느 한쪽을 잃게 되더라도 절대로 후회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헤어질지도 모르는 젊은 시절의 연애 때문에 유학을 포기하는 것을 누군가는 안타깝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도 있는데 지금의 감정에 휩쓸려 더 좋은 조건의 커리어를 포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영혼의 짝을 만나 여생을 함께하는 것은 많은 경우 삶의 목표 중 하나이며 행복의 주요 조건 중 하나이다. 워커홀릭에게도 커리어보다 중요한 게 생길 수도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사실 옳은 선택이란 없다. 어떤 선택이 옳다/그르다는 것은 지금 알 수 없을뿐더러, 고민해 봤자 그다지 소용이 없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도 현재 연인과 잘 만날 수도 있는 거고, 한국에 남아도 헤어질 수 있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간에 저마다 행복을 찾아 선택했을 뿐이다.  누구도 비난할 자격이 없다. 다만 이 선택에 책임을 지는 것은 오롯이 자기 자신이라는 것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무엇에도 후회하지 않고, 선택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숙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디펜스와 연구계획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