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시경]-2003 하반기 제3호

by 조윤효

중고 서적을 살려고 찾다 보니 왠지 사람들의 눈길을 받지 못할 만한 책이겠다는 생각에 인연의 끈을 만든 책이다. 중간의 3분의 1 정도는 시로 구성되어 있어 낯선 시를 통해 타인들의 삶의 빛깔을 만나는 기쁨도 누릴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첫 단락은 홍일선 시인이 백기완 통일 운동가와의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솔직히 흥미 있는 소재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금 현시점을 다루는 이야기도 아니다. 2003년에 나눈 이야기들이다. 과거를 돌아볼 수는 없지만 과게에 쓰인 책을 통해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과거가 묻어 난다. 백기완 시인 또는 교수 또는 통일 운동가라고 불러야 할지 다소 고민이 되지만 그의 거침없는 삶은 폭풍을 뚫고 항해하는 배 같다. 일제 강점기를 거쳐 이승만 정권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시대를 거쳐 오며 자신 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그 많은 풍랑들이 백기완이라는 배를 전복시키지 못했다.


살아남는 자가 승자라고 하는데, 그 거대한 권력들과 맨몸으로 부딪칠 수 있는 그의 배짱에 다시 한번 놀란다. 살아 남기 위한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있었을 진데 끝까지 자신의 빛깔로 살아낸 그 모습이 아름답다.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끝까지 거대한 불의에 맞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듯이 살아낸 이들이 있어서 후손인 우리들이 비교적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과거의 그 누군가의 아름다운 마음과 손길로 이루어낸 업적일 것이다. 지금 미얀마 또한 우리와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독재 정권에 대한 민주화 운동을 치열하게 치르고 있는 그들에게 곧 밝은 미래라는 선물을 지금은 아니더라도 그들 후손들의 손에 고이 전달해 줄 수 있으리라.


작은 힘으로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으리라. 하지만 그 작은 행동조차 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영원히 사라진다. 수십만 번의 물방울이 바위를 뚫듯이 개인들의 덧없어 보이는 희생 위에 희망의 꽃이 문득 피어난다고 역사는 말한다.


책의 중반부는 낯선 시들로 가득하다. 또한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싸워야 할 이유를 만들어 가면서 싸우는 듯한 나라들 속에서 피어나는 외국 시들을 소개한다. 이라크 시인, 반전을 향한 미국인들의 시 속에서 시는 마치 소용돌이치는 지구 역사의 흐름을 바꾸기엔 역부족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라도 쓰지 않는 다면 개개인이 어떤 희망으로 살아가겠는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 점령 뉴스가 떠들썩하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인간의 삶을 제단하고 억압하는 악의 꽃이 아프가니스탄에 다시 핀 것이다. 최근에 읽었던 소설 '연을 쫓는 아이' 때문에 작가의 고향이 또 다른 격동기를 겪겠다는 생각에 안쓰러움이 생긴다.


책의 후반부는 시평이 들어가 있다. 고교 시절 기형도의 시를 보고 눈물짓던 감수성 예민한 친구가 생각난다. 그 시절 나는 가뭄으로 갈라진 마른땅이었다면 그녀는 봄비 같은 시성으로 새싹을 만들어 내고 있었으리라.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네모난 교실에서 창문 커튼 아래 책상을 두고 공부라는 녀석을 앞에 두고 많은 사념에 잠겼었던 그 시절. 누군가는 시대의 아픔을 노래했다.


소개된 시들 중 기록이라는 종이에 세기고 싶은 것들이 제법 있다.


'돌아갈 수 없는 것들은 그대로 서서

나무가 되고 풀이되고

그러다가 자꾸자꾸 사무치면 흙이 되겠지'


시평 또한 멋진 구절을 담고 있다.

'언어는 공공의 광장으로 나아가는 유일한 방법인데, 그 언어를 쓰는 순간 모든 의도는 정치화 되고, 정치화는 본래 의도나 생각과는 많이 다르게 작동하기에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어 버린다.'


친구가 여고시절 사랑했던 기형도 시인의 시 또한 이제 이해할 만큼 성숙한 나를 발견한다.

'할머니는 이젠 상큼한 소년이 되었습니다. 젊은 날 비녀도 풀어 버리고 여자도 싹둑 잘랐습니다. 여든의 몸이 까까머리 소년처럼 훤해졌습니다. 여자도 남자도 다 버리고 해맑게 굽은 허리를 접는 할머니는 이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


공감이 간다. 어느 날 머리조차 귀찮다고 곱슬 거리는 하얀 파마머리를 짧게 단발로 만드신 어머님을 보고 마음속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었다. 여자도 남자도 아닌 죽음 앞에서 서기 위한 의식 같은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첫눈이 왔다

작년에도

나 태어나기 전에도

내렸던 눈이 매년 첫눈이라 불린다


눈에 대한 이 무자비한 오해!'


새해마다 새롭게 이름을 붙여주고 무수히 흘러가는 시간들에게 그 의미를 넣어야 그나마 마음에 위안을 얻는 인간의 삶을 생각하게 만든다.


'공사판으로 내려온 눈송이

한 일이라곤 증발하는 것뿐이었다.

.........

한 일이라곤 증발하는 일

날름거리는 불꽃의 드럼통 속으로 '


왠지 모를 서글픔이 든다. 역사의 기둥을 만들어 내는 삶 속에서 잠시 존재했다가 눈송이처럼 한일 이라곤 증발하는 일 밖에 없다고 결론지어질 삶이라 규정되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일어 난다.


시가 다시 사랑받는 시절이 오길 바란다. 긴 말속에 길들여진 내게 축약된 말들 속에 소가 되새김하듯이 읽고 생각해야 그 의미를 깨닫는 글이 삶을 좀 더 느긋하게 그리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습관을 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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