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천년의 독서] - 전병국

by 조윤효

제목의 비장함이 좋다. 더불어 서문의 글은 더욱 매력적이다. '우리 인생에 르네 상스가 없는 이유는 책을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읽었는데도 변화가 없는 이유는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구나 자신의 르네상스를 꿈꾼다. 하지만 이를 맞이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할 뿐이다. '고전은 모두가 읽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아무도 읽지 않은 책'이라고 마크 투 웨인은 말한다. 고전을 어떻게 읽어야 우리 삶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저자만의 해안이 담긴 책이다.


우리 인생에 르네상스가 없는 이유, 마음을 인도하는 세 가지 등불, 인생의 책을 찾아서, 천년의 독서를 만나는 방법과 그 실행 방법에 대한 실행 록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저자의 수년간의 사색과 노력 그리고 실천 방법이 녹아난 책 같아 소중함이 느껴진다. '인생에는 뜻이 있다. 타인과 비교하지 마라. 비교는 자신에게 주어진 뜻과 자신의 오늘을 비교할 때만 의미가 있다.'라는 말이 인상 깊다. 나의 의미를 찾아 인생의 뜻을 알아내는 것 또한 성공적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뜻은 씨앗으로 주어진다. 인생은 그 뜻을 가꾸고 열매를 맺는 발걸음이다. 가장 위대한 뜻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 뜻이 찬란하게 꽃필 때 드러난다. 존재의 본질, 존재의 이유가 꽃핀다. 탁월함이 꽃핀다..... 그 뜻이 인생에 꽃피는 날, 그 뜻이 시대에 꽃피는 날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또 얼마나 경이로운가?'


고전 읽기가 없고 고전에 대한 책 읽기가 난무하다는 저자의 말에 잠시 반성해 본다. 여전히 고전을 완독 하기는 어려움이 있다. 아직 책을 완전하게 흡수하고 싶은 간절함과 시간의 에너지를 온전하게 쏟지 못하기 때문이란 걸 안다. 하지만 서서히 책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것 같은 느낌은 있다.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텍스트와 씨름하는 몸부림이 근원으로 돌아가는 독서다.' 텍스트와 씨름한 적이 있는지 돌아본다. 어려운 부분은 넘어가기도 하고 심지어 책을 덮어 버리기도 했었다. 한 권의 책이 시대의 텍스트에서 한 인간과 만나던 교차로 지점을 이야기한다. 개인의 르네상스가 시대의 르네상스를 불러일으킨다. 시인 윤동주가 <맹자>를 만나 시대의 텍스트 안에서 자신의 르네상스를 역사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낸 예를 보여 준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익숙한 시이지만 윤동주의 르네상스가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이탈리아의 시인 페트라르카는 해발 1920미터 빙 투산 고지에서 어거스트 <고백록>을 소리 내어 읽었다고 한다. '가장 위대한 인간의 영혼을 두고, 인류의 스승들이 그렇게 강조했는데, 나는 어디를 보고 있었던 것인가!' 이렇게 인문 주의자가 태어났다. 그날 인생의 르네상스가 역사의 르네상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 한 권의 책을 만나기 위해 수천 권의 책을 수년 동안 읽어 오고 있는지 모른다. 더러 그 한 권을 만난 사람도 있고 여전히 그 한 권의 책을 찾아 열독하고 있는 사람도 있으리라!


책을 통해 영원한 지혜와 기쁨을 얻으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고 한다. 첫째, 좋은 마음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좋은 책을 찾아야 한다. 셋째, 책의 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오스트리아계 유대인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26살 나치 독일의 영향 속에 불안한 일상을 보낸다. 일자리도 구하기 힘들었고 시시각각 유대인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을 느끼던 시절 독일 어린이를 위한 영문 책 번역을 맞게 된다. 그는 결국 자신만의 <어린 독자를 위한 세계 역사 이야기>를 쓰게 된다. 하지만 그의 책은 금서가 된다. 너무나 폭력적 이어가 아니라 너무나 평화로워서 금서가 된다. 모든 사람은 세계관이 있다. 책은 하나의 세계이며 우주다. 시대의 세계관과 맞서는 곰 부리 치의 책은 당연히 당시 서로 다른 세계관의 충돌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곰브리치와 나치의 충돌'이 일어난 것이다.


세계관을 보기 위해 4가지의 질문을 이야기한다. 세계는 어떤 곳인가? 인간은 어떤 존재 인가? 문제는 무엇인가? 열쇠는 무엇인가? 나치의 세계관은 세계는 양육 강식의 세계였고, 인간은 오로지 우수한 아리안족(독일) 그 밖의 인종으로 나뉜다. 문제는 유대인과 장애인 같은 열등한 사람들이고 열쇠는 이들을 파괴하는 것이다는 나치의 세계관은 섬뜩하다. 책은 개인에게 세계관을 던진다. 그래서 책은 무기가 될 수도 있고 세상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안전망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신이 인간에게 주는 소명 중 하나가 세상의 책들을 통해 스스로 발전시키는 힘을 찾도록 하는 건 아니까? 그리고 인간은 후손들을 위해 자신이 발견한 진실들을 책을 통해 남겨 두는 것이다. 남겨진 물질은 세월의 흐름 속에 쇠퇴하지만 책 속에 담긴 정신은 찾고자 한다면 수천 년 수만 년 동안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책을 대함에 있어 마음을 다하고 있는지 책을 읽으며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품고 있는지. 책을 대할 때 이해하는 마음을 갖고 있는지. 작가가 그리는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곳에서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문제와 열쇠를 찾아내는 독서를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책을 읽고, 질문하며 읽고, 큰 그림을 읽는다면 별다른 독서법은 필요가 없다. 그 마음과 그 길이 때에 맞게 스승들이 찾아와 열어 줄 것이다.... 간절함이 없으면 열어 주지 않고, 절박함이 없으면 터뜨려 주지 않는다.'


'이 시대는 두 얼굴을 지녔다. 정보의 홍수 시대가 될 수도 있고, 지식의 단비 시대가 될 수도 있다. 홍수는 모두를 죽이지만 단비는 생명을 자라게 한다.... 같은 세상을 살아도 누구는 지식의 단비로 과수원을 일구고 누구는 정보의 홍수로 난민이 되는 것은 전적으로 지식의 보물을 구분할 줄 아느냐에 달려 있다.' 책 속에 지식의 보물이 숨겨져 있다. 필독 목록이 아니라 책을 고르는 기준과 안목을 배우라는 저자의 조언이 감사하다. 조선의 르네상스를 만들어 낸 정조처럼 당시 죄인의 아들 즉 사도 세자의 아들로 왕이 된 그는 즉위 동안 생명의 위태로움을 느낄 만큼 정적의 신하들 속에서 살아냈다. 그는 시대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자신만의 규장각을 세웠다. 당대 최고의 인재들을 신분에 상관없이 발탁했고 양서들을 모으고 관리하며 더 큰 개혁과 부흥의 그림을 그리고자 한 성군의 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대학 때 읽었던 정조의 소설이 생각난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를 암살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소설에 소개되어 있었다. 위태로운 삶에서 자신만의 규장각을 만들라는 저자의 은은한 권유가 마음속으로 들어온다. 배우려는 열망과 아이 같은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 '방향이 있어야 속도에 의미가 있다. 철학이 있어야 첨단 기술이 빛난다. 가치를 판단한 후에 우물을 파야 한다. 아침의 묵상이 있어야 한낮의 수고가 길을 잃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삼중 독서법을 이야기한다. 3명이 독서하는 독서 공동체를 제안한다.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홀로 독서가 아니라 제자들과 같이 진리를 발견하는 독서 공동체였다고 한다. 천천히 반복해서 3번 읽으라고 한다. 첫 번째는 관찰하고 개관하고 기억하는 문법적 읽기를 권한다. 마치 아이처럼 읽으면 된다. 두 번째는 따지고 분석하고 재구성하는 시간을 갖는 논리적 읽기를 권한다. 학자처럼 읽으라고 한다. 세 번째는 평가하고 사색하고 재창조하는 시간을 갖는 수사적 읽기를 권한다. 마치 시인처럼 읽으라 한다.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것이다. 노력 없이 빨리 얻고 싶어서 요령만 피우기 때문에 발전이 없는 것이다. 말은 꼭 필요하다고 하면서 전부를 쏟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한 인간의 탁월함은 전부를 쏟을 때 피어난다. 요령으로는 들어갈 수도 없고, 볼 수도 없는 세계다.' 저자의 마음이 담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독서를 대하는 자세를 생각해 보게 된다. 지식의 홍수가 아니라 삶의 단비로 책을 끌어낼 수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르네상스를 더 나아가 시대의 르네상스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B135.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Gesture 영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