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리스본] -박종호

by 조윤효

풍월당 문화 예술 여행이라는 책 표지 글귀가 호기심을 자아낸다. 옛말에 '풍월을 읆다'라는 정서를 모태로 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풍월당 아카데미 강의를 하며 정신과 전문의이자 오페라 평론가라는 그의 이력이 눈에 들어온다. 여행은 걷는 독서라고 하는데 여행자가 누구냐에 따라 여행의 맛과 깊이 그리고 방향이 달라진다.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의 책을 읽어 봤다.


포르투갈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게 축구 강국이고, 교과서에 언급돼 된 식민지 정복자라는 강인한 인상의 나라다. 유럽의 끝이라고 표현한 저자의 말처럼 그들은 그 끝자락에서 육지가 아닌 바다의 시작으로 세상을 향한 더 큰 꿈을 꾼 민족이다.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의 여행기는 저자의 <러시아 하우스>의 영화가 그를 이곳에 인연의 발을 닿도록 이끌었다고 한다. 리스본에서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며 집을 지어가는 한 남자의 삶이 누군가를 인생의 한 장면을 추가하는 결정을 내리게 한다. 삶은 그래서 알 수 없다. 수없이 다가오는 책들 영화 그리고 만남을 통해 추억의 장들이 다른 빛깔을 띠게 되는 것이다.


리스본은 좋은 항구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항해 시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되는 곳이자 떠난 자들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끝이 만나는 곳이다. 우리나라의 '한'과 비슷한 의미의 '사우다드'라는 정서를 가진 나라다고 한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그리움, 바다로 떠난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지친 가슴에 남은 심정을 사우다드라고 부른다고 한다. 포르투갈의 친절을 '그들의 웃음과 미소는 슬픔과 울음을 삼키고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라고 저자는 표현한다.


과자점이 많은 나라, 아이들처럼 신중하게 과자를 고르는 신사들의 자연스러움이 있는 곳이다. 파스테이스드 벨렝 과자점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수녀원 가까이 자리한 이 과자점의 유래가 재미있다. 수녀들은 희고 빳빳한 캡 옷을 위해 달걀흰자를 사용했다고 한다. 남은 노른자를 수도사가 소진하기 위해 만든 과자가 타르트라고 한다. '리스본에 가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파스 테이드 벨렝의 과자를 먹는 것입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록 이 과자의 명성이 대단하다고 한다. 수도원 옆에 자리 잡은 이 과자점의 레시피는 오직 3명 많이 알고 있고,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3명이 함께 여행도 하지 않고 그의 자손이 대대로 운영해 오고 있는 독특한 역사를 지닌 곳이다.


책은 마치 그날의 관광 일정을 손에 쥔 안내자가 건물들의 역사와 특징들을 하나씩 짤막하게 안내해 주는 느낌이다. 책을 통해 보는 건물들은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이국적인 정서가 물씬 드러난다. 바닷가 근처라 건물의 부식을 막기 위해 '아줄레주'라는 타일을 벽에 붙이는 방식의 건물들에 대한 소개도 나름 독특하다.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나라 대중 목욕탕의 안을 밖으로 뒤집어 놓은 듯한 건물들에 대한 이야기와 타일 박물관 소개도 흥미롭다.


책들 사에에 소개된 포르투갈의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결국, 삶은 물리적 공간과 그 삶 속에서 정신적인 이상을 펼쳐낸 인물들이 있었기에 공간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집이라는 공간에 삶을 영위하는 인간의 정서가 하나의 완성작품이 되어 따뜻한 가정을 이루듯 인류 역사를 빛낸 사람들이 머물던 나라들이 나름의 아름다운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인물들이 살았던 프르투갈이라는 나라에 가보고 싶은 맘이 들게 하는 것 같다.


특히, 인상에 남는 인물들이 있다. 파두 음악의 여왕 '아말리아 호드리게스'는 포르투갈의 음악을 세계적인 음악 장르가 될 수 있게 기여한 가수이다. 가장 낮은 계급에서 가장 높은 계급으로 급 신분 상승한 그녀의 다양한 시도에 대한 이야기들은 흥미롭다. 파두는 2~3개의 악기로 반주되던 노동자들의 노래였다. 그녀는 오케스트라를 이용해 반주의 영역을 넓혔고, 포르투갈의 많은 시인들의 시를 노래화 시켜 음악과 문학을 융합시킨 변화를 만들어 낸 가수다. 파두는 그 독특한 리듬과 가락 그리고 사우다드라는 한의 정서를 가진 노래다. 200년 정도에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포르투갈의 배가 바다 건너서 닿은 세계 각지의 음악이 섞인 것이다. 회환을 적절히 그려낸 시어 이루어진 가사나 노래를 부르는 창법 역시 독특하다'라는 저자의 평이다. 파두가 유네스코 세계 무형 문화유산이라고 한다.


우리에게도 우리의 한을 노래한 판소리가 있다. 초기 파두와 유사한 면이 있다. 판소리에 우리 문학이 담겨 있고, 우리 가락의 뒷 배경이 되어 주는 가야금이나 북, 아쟁은 서양 음악의 수십 개나 되는 음들과는 그 색 자체가 단조롭다. 한류가 대세인 요즘 누군가 판소리를 세계적인 음악으로 알리는 독특한 발상을 시도하고 있을 것 같다.


약간 찰리 채플린의 분위기를 닮은 '페르나두 페소나'라는 작가는 흥미롭다. 살아생전 1편의 작품만 대중에게 소개되었으나 사후 80명의 다른 이름으로 쓰인 그의 문학 작품은 하나의 깜짝 선물이었을 것이다. 1913년부터 20년 동안 단어나 공책에 기록한 단상을 모은 고백록을 엮어 '불안의 책'이라는 책이 사후 출간되었다. 시대의 사색들이 잘 녹아 있을 것 같아 읽어 보고 싶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이렇게 책의 인연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가장 잘 보여준 포르투갈의 거부 '칼 루스트 굴벤 키안'에 대한 이야기도 교훈을 준다. '많은 민족과 국가와 문화의 경계인으로 살았던 굴벤키안은 나라 없는 민족, 소수 민족까지 포함하여 모든 인류가 동등하게 행복을 누려야 한다는 신념으로 평생을 보냈다.'

그는 20세기 초 포르투갈 작품을 중심으로 1만여 점에 이르는 현대 미술품을 소장한 박물관, 음악당, 도서관 그리고 야외 공연장이 갖추어진 아름다운 공원을 시민들에게 선물한 거부다. 그는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사상이 지상에서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을 주고 있다. 의미 있는 인생을 살다 간 그의 동상을 보고 자연스레 존경의 마음이 드는 것일 것이다.


세계 어디든 아픈 역사를 극복한 이야기는 후손들에게 용기를 준다. 리스본 여행기에서 1755년의 대지진에 대한 그들 선조들의 이야기가 사이사이 언급되어 있다. 진도 8.5~9.0의 지진으로 사상자만 3만 ~10만 명이 났었고 시의 80% 이상이 파괴된 역사상 가장 최악의 사건 중 하나라고 한다. 18세기 사회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고 한다. 신 중심이었던 사회가 그 이후 유럽의 문화와 철학을 인간 중심으로 바꾼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지진 후 폼발 후작이 재정비 사업을 주도했고 내진 설계가 적용된 최초 사례와 계획된 시가지를 가장 완벽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럽 도시를 이루어 낸 도시란다.


극복되지 못할 시련은 없다. 시련을 통해 삶의 지혜를 얻어낼 수 있는 인간의 가장 고귀한 능력을 보여 준다. 리스본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 같다. 바다를 마주한 도시의 집들이 언덕 위에서 넓은 바다를 향해 인간의 소망을 노래하듯이 배열되어 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 같다. 소박하지만 화사한 도시 전경이 푸른 바다를 향해 유럽의 끝자락에서 삶을 노래하는 도시를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을 들게 한다. 포르투갈의 길거리 파두 음악을 들으며 한 손에 맛있는 과자를 들고 거리를 걸어 보고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Gesture 영문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