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북유럽 그림이 건네는 말] - 최혜진

by 조윤효

'읽으면서 물든다'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책이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푹 빠지는 느낌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그 좋아하는 가치가 생활 전반의 형태를 바꾸게 한다. 저자 최 혜진 씨는 글을 쓰는 기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림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녀 삶의 스케치 상담 부분이 그림과 연계된 것들이다. 2005년 도서관에서 만난 아동용 도서<태양을 훔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그녀를 눈물의 격정을 쏟아 내게 한다. 결국,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을 가게 되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만들어 가게 된다. 그 이후 10년 동한 세계 50개 미술관에 자신을 던지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낸 것 같다. 그래서 그녀의 서두 글이 이해가 된다. '누가 뭐라든 나답게 내속 도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후반부에 뭉크의 내면세계 이야기를 들으며 왜 북유럽 그림들이 저자에게 삶의 힘을 주는지 알듯 했다. 30살부터 나타난 그녀 삶에 초대받지 않은 무례한 손님인 척수의 다발성 종양은 육체적 고통과 그로 인해 생기는 심리적 불안감을 달래주는 게 그림이었을 것이다. 가끔 아플 때 엄마의 손길이 어루만져 주듯이 자신의 삶의 무게가 힘겨울 때 위안을 받는 것들을 찾아낸다면 삶의 수레를 제법 힘차게 끌어갈 용기를 얻을 것이다. 그녀가 그림을 만난 게 다행이라는 생각과 그녀가 감상하는 그림의 느낌을 덕분에 조금이나마 얻는 것 같아 감사하다. 익숙하지 않은 북유럽 화가들의 이름과 그림들을 보면서 사회의 요란한 성공보다는 가정의 따뜻함에 시선이 많이 가 있다는 게 보였다. 그러기에 행복 지수가 높은 거였다. 거창함이 아닌 소박함, 사회적 성공보다는 가정의 행복이 우선시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단연 그림들의 주제가 가사를 하는 아낙, 놀이에 집중되어 있는 아이들 그림이 많다. 사회적 성공을 위한 자기 착취가 아닌 개인의 삶에 만족하는 자기 돌봄을 깨닫게 해주는 그림들이다.


'빈센트 반 고흐의 무덤에서 돌아온 뒤론 길에서 스치는 행인, 버스 기사님, 식당 이모들이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도 누군가의 한 사람일지 몰라 생각하며 그의 가족이나 저녁상 같은 걸 상상하게 됐다. 단절된 섬 같던 세상이 연결된 관계로 보이기 시작했다.' 고흐를 만나고 온 그녀는 따뜻한 시선을 갖게 된다. 고흐와 동생 테오의 이야기를 통해 '계속 살아낼 힘을 내기 위해 많은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1인분의 사랑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림을 통해 삶의 지혜를 하나씩 생의 바구니에 담아 가는 그녀의 여행이 만족감을 준다.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덜란드의 미술관에서 만나는 화가의 생애와 그림들은 '소리를 그리는 그림을 만난다'라는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게 해 준다.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하메르스회이는 북유럽 근대 미술의 세계로 그녀를 푹 빠져들게 한 화가다. '북유럽 화가들이 그린 인물이 보여주는 독특한 몰입의 에너지 역시 매혹적이었다.' 아름다움이 도처에 있다고 외치는 그녀의 책은 미술관에 직접 찾아가 화가들의 생의 소리를 듣고 그리고 생의 마지막 소리를 느끼고자 화가들의 무덤을 찾는다. 그림 속 일상적 행동을 통해 자기 안으로 깊이 침착해 들어가 본 사람만이 뿜어낼 수 있는 끌어당김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그녀의 힘이 대단하다.

19세기 노르웨이 화가 크리스티안 크로스의 '생존을 위한 분투' 그림은 빈민 문제를 극히 일부 사람들의 일로 치부하는 사회 계층에 대한 소리 없는 외침을 보여 준다고 이야기한다. 글뿐만 아니라 그림도 이렇게 날카로운 무기기 될 수 있다. 잠들어 있는 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무지를 일깨워 줄 수 있는 힘이 그림이 되기도 한다.


유독 여성 화가들의 이야기가 끌린다. 그림을 통해 사회적 분위기를 꿰뚫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이 갔다. 18세기임에도 불구하고 여성 화가들이 그림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허용된 사회. 남유럽의 그림 속 여성들은 여신이라는 허울 속에서 관능미를 품어 낸다면 북유럽의 그림 속 가사 일을 하는 여성들은 삶을 꾸려나가는 소박한 모습을 보여 준다고 한다. 남유럽 그림 속 여성들은 유혹에 빠지는 남성들이 문제가 아니라 유혹하는 여성이 문제인 듯한 인상을 준다면 북유럽 속 여성은 남편과 동등하게 삶을 이끌어가는 동반자의 위치다. 그래서 세계적으로 가장 남녀평등이 잘 이루어진 나라들이 된 사상의 기반이 아주 오래전부터 사회 깊숙이 흘러 오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난함이 주는 안정감보다 피비린내 나는 자유를 선택한 여성 예술가를 발견할 때마다 심장이 뛰고 마음이 끌린다.'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그녀가 소개한 3명의 여성 화가들의 삶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는 법을 가르쳐 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천재화가 남편을 둔 마리쿠뢰위 에르는 남편의 광기를 피해 딸을 데리고 다른 사랑을 찾아 사랑에 모든 것을 건 여자였다. 반면, 덴마크의 여성 화가 아나 안 셰르는 관습과 싸우며 예술가로 살 리를 선택했던 여성화가였다. 결혼 전 살림에 집중하기를 바라는 주의의 권고를 뿌리치고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을 끝까지 지킨 그녀는 1850년 남편과 나란히 덴마크 지폐에 얼굴을 드러내게 된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는지가 그의 생애의 범위를 결정한다고, 우리는 결국 믿는 만큼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끌어낸 위의 두 여성을 그림에 담은 '스카겐 해변의 여름 저녁'의 그림도 인상에 남는다. 자신의 성을 바꾼 화가 '릴리 엘베'는 원래 남자 화가였다. 부인의 그림 속에 우연찮게 여성 복장을 입고 모델이 되는 계기가 남성이었던 그가 성전환 수술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19세기에 이런 일을 감당해낸 부부가 대단해 보인다. 결국, 성전환 수술 후 죽게 되지만 여성의 모습 릴리 엘베는 그녀의 부인(?) 게르다 베게 네르 그림 속에서 요염함을 맘껏 뽐내고 있었다.


'북유럽 화가들은 망막에 남은 인상보다 마음에 느껴지는 감정 표현에 더 관심을 보여준다. 보편성을 염두에 두고 주관성을 추구 함에도 차가운 관념의 덫에 걸리지 않는다.' 그림을 통해 나를 보고 내가 속한 사회를 보는 눈을 가질 수 있다는 걸 보여 준다. 그녀는 이야기한다. 집요할 정도로 자기만족을 허락하지 않는 한국 사회와 너무 쉽게 자족하는 만족을 순한 그림을 통해 북유럽의 생각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고. 그래서 휘게(덴마크: 안락함)와 라곰(소박함 예찬, 작은 성취를 축하)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의 팽팽한 긴장감을 조율하는 단어로 자주 등장한다.


한때 세계의 부를 끌어 모았던 네덜란드 상인들은 그들의 삶 속에 칼뱅교를 심는다. 덕분에 풍요 속에 망가질 수 있는 향략대신에 당시 그림 속에서 보여주는 정물화처럼 정돈된 삶의 균형을 유지한다. 삶은 허망임을 잊지 않게 해 준 칼뱅교는 영혼의 보호막이 된 듯하다. 직업 소명, 노동 윤리, 청렴, 높은 도덕 수준에 대한 메시지를 구교의 종교적 상징 대신 일상적 사물로 대체한 그들의 그림 속에서 또 다른 배움을 얻을 수 있다.


'단순함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든다. 매일 쓰는 물건에서 군더더기를 없앤다'라는 디자이너 핀 율의 이야기도 매력 적이다. 화가인 빌헤름 룬 스트룀의 영향을 받은 그의 가구들은 대를 물려 사용해도 질리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물건을 만들어 낸다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한다.


에드바르 뭉크의 대한 저자의 이야기는 '그림은 화가가 스스로를 위한 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천재적 화가 반열에 올랐지만 그의 삶은 다른 천재들처럼 일그러짐이 아니라 삶의 피해자로 자신을 두지 않고 그림으로 자신을 그려내고 이해하고 납득을 통해 극복하는 삶의 주인 다운 태도를 보여 준다. 5년 간의 친척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버려지고, 집착하는 연인 툴라와 헤어지는 과정에 자신의 왼손에 총을 쏘는 광기, 30년의 자발적 고립 선택으로 유화 1000여 점, 판화 1만 8000여 점, 수채와 화 드로잉 4500여 점, 셀 수 없이 많은 편지와 원고를 통해 그의 승화된 삶을 보는 듯하다. 조금씩 다르게 반복해 그리는 그림을 통해 당하는 피해자가 아닌 의미를 부여하는 주체의 삶을 살았기에 81살까지 삶을 잘 살아 낸 건 아닐까.


'안에서 답을 찾고, 안을 가꾸고, 안에 만족하며, 안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그림을 통해 '삶의 거든 모든 영역에 위계를 만들어 놓고 건강, 외모, 부, 사회적 성취 가지 무엇이든 하기 나름이라고 노력만 하면 뭐든 성취할 수 있다고, 목표를 높게 잡으라고 쉬이 만족하지 말라고, 그렇게 자기 착취를 하라고 속삭이는 목소리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지난 시간의 내가 떠올랐다.'라는 저자의 말이 나를 흔들었다. 왜 북유럽 그림인가에 대한 답을 찾은 것 같다.

'어둠을 몰랐다면 내 곁에 맴도는 빛의 축복을 알아채지 못했을 것이다.'라는 저자의 끝맺음 말이 인상에 남는다. 그림도 삶의 배움터에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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