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인생은 짧다 카르페 디엠]-로먼 크르즈나락

by 조윤효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와 '오늘이 내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두 가지 정신이 형제처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마치 삶의 죽음과 탄생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되어 굴러가듯이 두 형제는 결국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표현들이리라. 스티브 잡스와 아우렐리우스는 '인생의 마지막 날이다'라는 마음으로 삶을 이끌어 갔다. 닮은 두 가지 모형 중 뭔가 새로운 결심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는 '오늘이 내 인생의 첫날이다'라는 표현이 더 가슴에 와닿을 것 같다.


책은 마치 알갱이가 가득 찬 옥수수 같다. 작가의 알찬 생각들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다시 한번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잡아 준다. 작가 로먼은 런던에 '인생학교 The school Life'를 2008년에 설립했고, 세계 최초로 '공감 박물관'과 디지털 '공감 도서관'을 설립한 사람이다. 그는 고대 로마 아우구스트스 황제 통치 시대에 살았던 서정 시인 호라 티우스의 시 '송가 4번'에 나온 글귀인 '카르페 디엠'에 관한 역사적 흐름을 이야기한다. 2500만 개의 인터넷 검색 결과를 생성하고 있는 '카르페 디엠'은 '세월은 빠르게 흘러간다. 내일을 위해서는 되도록 적게 남겨 두라'라는 호라 티우스의 말 한마디기 오래도록 살아 남아 존재 방식과 이유에 대한 근원적 질문들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죽지 않는 글귀들이 있다. 죽기보다는 오히려 계속 존재가 강해지는 글귀들을 통해 우리는 작가와 연결되는 것이다. 내 컴퓨터 모니터에 라틴어로 '카르페 디엠'이 자리 잡고 있다.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 잊었었는데 이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난다.


카르페 디엠은 서구 철학의 역사에서 가장 오래된 명제들 중 하나라고 한다. '오늘을 붙잡아라 Seize the day'라는 의미인 카르페 디엠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각도로 조명되었고, 그 해석으로 인해 삶의 방향까지 결정하도록 이끈 글귀다. 책은 도둑맞은 카르페 디엠에 대한 이야기와 인류가 오늘을 붙잡을 수 있는 다섯 가지 발견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카르페 디엠의 도둑들로 소비문화, 효용성과 시간관리 정신, 주 7일 진행되는 디지털 오락 그리고 마음 챙김 운동의 부작용을 범인으로 지목한다. 마음 챙김이 범인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랬다. 마음 챙김의 부작용으로 세 가지를 이야기한다. 자아에 너무 집중한 나 먼지 윤리적 토대가 취약해질 수 있다. 현재에 충실하게 존재하는 것을 강조하는 과정 중 인류가 미래의 의미 있는 목표를 위해 노력하면서 번창해 왔다는 것을 간과하게 한다. 현재에 충실한 가치는 존재 방식(흥, 몰입, 경이, 집단적 환희)을 잊게 만들어 현존만으로 충분하다는 의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현존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마음 챙김이 현재의 생각과 감정을 더 뚜렷하게 알아차리도록 도울 수 있으나 우리가 선택하고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항상 과거의 경험과 미래의 목표 또는 포부에 기반한 이정표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한수 배웠다는 말이 튀어나온다.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에 균형 있게 머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카르페 디엠이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서 기회 포착, 쾌락주의, 현존, 즉흥성, 집단의 정치로 그 모양이 변화된 과정을 보며 저자의 통찰이 뛰어남을 알 것 같다. 책은 누구나 쓸 수 있지만 한 가지 주제로 사색과 공부를 엮어 또 하나의 새로운 의견으로 탄생시키는 엄청난 작업은 아무나 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우리의 과제는 카르페 디엠 본연의 모습인 인류 문화유산을 다시 찾아야 한다고 한다.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선택을 한다'는 사실에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선택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우리는 카르페 디엠의 참된 의미를 선택해 삶의 길잡이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카르페 디엠을 통해 알베르 카뮈는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라. 그러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라는 표현을 탄생시켰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을 통해 알려진 카르페 디엠은 그 모습이 천차만별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 낸다. 역사적으로도 수많은 모습으로 변형되어 왔지만 앞으로 어떻게 변해가면서 인간의 지성을 흔들어 놓을지 그 존재감이 대단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카르페 디엠이 '살아 있음'의 극대화된 표현이라 이야기 했다. 그는 '깊이 있게 살면서 인생의 정수를 빠짐없이 흡입하는 것'임을 깨달은 사람이다.

니체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거의 모든 것을 이겨낸다.'라는 말을 카르페 디엠의 큰길에 강한 돌탑을 세운다. 죽음을 알아차리며 사는 사람과 의식적 노력으로 삶의 유한성을 자각하는 사람은 차이가 있다. 존재의 혼수상태를 깨우고, 삶의 우선순위를 재평가시켜주는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을 알아차리도록 도와주는 게 카르페 디엠일 수 있다.


괴테는 치명적 병으로 삶의 끝을 선고받았으나 7년 동안이나 '파우스트' 2부를 원고를 마감하기 위해 삶의 의미로 죽음까지 유예시켰다고 한다. 마치 사마천이 궁형 후 사기를 쓰기 위한 사명으로 치욕적인 삶을 견뎌 낸 것처럼 괴테 또한 자신의 책을 위해 견뎌 냈다.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우리 모습과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미래 목표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려는 힘겨운 노력이다.'

'인생이 너에게 주는 아름다운 순간과 작은 기쁨을 모두 알라 차리려고 노력해라'라는 말은 울림이 깊은 말이다. '우리 아이들은 딱 한번 자란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귀중한 어린 시절을 놓치고 만다.'라는 표현 또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딱 한번뿐인 하루를 우리는 매일 만나고 있는 것이다. 카르페 디엠은 한 때 쾌락 주의적 선택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그리고 버킷 리스트를 만들고 죽기 전까지 하나씩 해보는 형태로 자리 잡아갔던 과정도 이야기한다. 경험을 다 해본들 무슨 소용이 있나라는 질문에 약간의 흔들림이 생긴다. 죽음을 응시할 수 있는 건 불행이자 축복이다.


우리가 어떻게 삶의 디오니 소스적인 태도를 잃어버렸는지를 이야기한다. 중세 사람들의 삶은 풍족하지 않았지만 생동감 있는 축제로 사육제를 즐기는 문화가 있었다. 춤추는 수도사 그림은 인상 깊다. 어느 순간 삶은 기독교적인 윤리와 산업 문화의 발달로 효용성과 시간관리라는 틀 안에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고 삶의 유희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의 힘을 잃어버리게 했다. 니체의 말이 떠오른다. '그대가 굳이 신을 믿고자 한다면 춤출 줄 아는 신만을 믿어라.' 춤을 추는 신에 대한 정확한 의미를 아직까지 명확하게 이해를 못 하겠다. 독서의 길을 가다 보면 명확한 의미를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나만 빼고 모든 사람들이 소비 사회의 영향 아래에 있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에 웃음이 났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오만한 생각을 저자가 잘 집어낸 것 같다.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에서 나는 필요해서 샀다고 하나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들 대부분이 친구 집에도 있는 것을 보면 소비 틀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아를 위한 변명임을 알 것 같다. 소유하느라 존재할 시간을 빼앗겨서는 안 된다. '우리가 선택의 시대에 산다는 것은 미신에 가까운 환상이다.'라고 저자는 일침을 가한다.


즉흥성을 잃어 버린 시대를 이야기한다. '예술가란 자기 자신을 즉흥적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즉흥성은 창의적인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현상이라고 한다. 여행을 위해 미리 계획하기보다는 즉흥적으로 떠나 보라고 한다. 그 즉흥성을 삶에도 적용해 보라는 저자의 권유가 유혹적이다. 시간관리라는 틀에 얽매여 삶의 자율성을 잃기 쉬운 시대다. 즉흥성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즉흥성은 삶이 자신의 의지와 선택으로 바뀐다는 것을 시험하는 시도다. 저자는 '항상 준비하고 있어라. 오늘을 붙잡을 기회를 놓지 않도록.'이라는 말로 조용하게 설득해 나간다.


우리에게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단수형 명사가 아니라 '카르파무스 디엠'이라는 복수형 명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책의 후반부를 장식한다. 카르페 디엠을 행복의 방법으로 잡고, 그 중심에 우리가 선택하고 그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삶의 의미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단순 강력한 개념을 개인이 아닌 집단이 함께 할 때 인류는 영원한 삶의 안식처를 후손들에게 전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만이 아닌 모든 사람의 카르페 디엠을 옹호하고, 다른 사람의 카르페 디엠을 빼앗는 행동을 해서는 안되며, 다른 사람들이 카르페 디엠을 더 많이 행사하게 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라고 말한다. '카르페 디엠의 진정한 미래는 우리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려고 노력하는 데 있다. 그럴 때 카르페 디엠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귀중한 보물로 변화할 것이다.' 결국 이타성을 향해야 삶의 발전은 가속이 붙는다.


우리의 선택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며, 선택 하나하나가 어떤 결과를 낳는 것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갈 때 우리 자신을 넘어서는 곳으로 시선을 돌릴 수 있고, 그때 카르페 디엠의 잠재력이 극대화된다고 한다는 저자의 말에 긴 여운이 남는다. 옥수수 알맹이가 소화가 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듯이 그의 글들을 좀 더 충분히 소화 시키기위해는 시간을 가지고 다시 읽어봐야 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Doodle English Gramm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