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삶에 대한 정의를 발견한 책이다. 철학책을 수도 없이 펼쳐 보았다. 한결같이 어렵고 지루하고 재미를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꾸준하게 시도해 보고 있다. 분명 우리글임에도 불구하고 글자들이 어울려 만들어 내는 문장이 내 문해력을 넘어서 있다. 난해한 철학책을 읽어 내기 위한 준비 운동으로 청소년을 위한 철학서를 먼저 읽어 보라는 조언을 이제야 알 것 같다. 저자 황진규 씨의 쉽고 핵심을 제대로 간파한 글은 그가 21가지 키워드와 함께 소개한 21권의 인문철학 도서를 읽어보고 싶은 욕심을 불러일으킨다.
21개의 키워드는 청소년뿐만 아니라 철학하는 삶을 원하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다시 한번 정리하고 그 정의를 내릴 수 있도록 도울 제목들이다. 나, 노력, 다름, 변화, 부, 카메라, 콤플렉스, 폭력, 희망, 중동, 침묵, 욕망 등등...... 생각의 주머니들 속에 철학책이 보여주는 답을 하나씩 꺼내 읽다 보면 어느새 한 권이 훌쩍 읽어진다. 저자는 철학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고수다. 그것도 이해하기 쉬운 예가 한층 책을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공부에 대한 두 가지 즐거움을 이야기한다. '왜 공부하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질문이다. 앎의 즐거움 즉 작은 즐거움을 주는 게 공부라고 한다. 그렇다면 큰 즐거움을 주는 공부의 이유는 바로 '나의 생각을 갖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나의 생각을 조금씩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철학은 작은 즐거움(앎)을 통해 큰 즐거움(나의 생각)으로 가닿게 해주는 공부다.'라는 저자의 명쾌한 정의가 공감이 된다. 타자의 생각이 아닌 내 본연의 생각을 갖기 위해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가끔, 내가 가진 생각과 태도가 과연 나의 생각인가에 대한 질문을 만날 때마다 머뭇거림이 생긴다. 요는 내 생각이 너무도 오랫동안 사회와 가정의 틀에서 물들어 있기 때문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야 내 생각이 온전한 내 것이라 확신할 수 있다고 하는데 그럴 수 없지 않은가. 대신,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온전한 내 생각을 하나씩 만들어 가야 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강요에 대한 키워드는 '내 세계의 주인으로 살아가기'에 대해 말한다. 노예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고, 주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옴베르토 마투라나 <있음에서 함으로>의 철학책은 강요당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가는 법에 대한 해답 중 하나를 제시해 주고 있음을 저자는 보여 준다.
나는 나를 아는가? 내가 나의 마음을 모르면 삶이 불행해진다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프로이트의 '이드(욕구), 자아(조절), 초자아(금지)'의 예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알아 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나의 마음을 알고 싶다면 욕구의 이드와 금지의 초자아를 알아야 한다. 나의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금지시키는 초자아가 지금도 내 삶에도 정당한지를 질문할 때 우리는 진정한 마음을 만날 수 있다고 한다. 사회 속에서, 가정 속에서 초자아의 기준이 형성되었기에 그 금지와 내 욕구는 상충할 수 있다. 나를 안다는 것은 나의 내면 욕구를 이해하고 그 욕구를 억누르는 초자아를 알 때 나의 자아는 더욱 자유로워질 것이다. 책 중간에 소개된 자크 라캉의 <에크라>에서 '인간의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다.'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노력에 대한 키워드를 설명하기 위해 소개된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야기한다. 대상을 규정하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실천이라고 이야기한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같은 실천의 역사에 의해 유럽의 성이 호텔이 되었다고 한다. 개인의 실천이 만들어 내는 역사에 의해 대상이 규정되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 역사 유물론의 핵심이라 이야기한다. 평준화된 파리 대학은 함께 살아가려는 공존의 혁명이고, 경쟁을 통한 대입제도는 '우리의 노력이 타인을 밟고 일어서는 과정'이라는 말에 의문이 들었다. 왜 서열을 나누는 대학 입학제도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지 못했을까? 노력을 한다고 삶이 달라지지 않는 다면 그것은 노력의 양이 문제가 아니라 노력의 종류를 고민하라고 하는 저자의 말은 긴 울림을 준다. 우리의 노력이 어떤 노력이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는 말에 다시 한번 당연시되었던 것들에 대해 의문을 갖는 연습이 필요함을 느낀다. 철학은 이렇게 우리 삶에 물음표를 던지는 역할을 하는 학문이다.
다름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헤라 클레이 토스(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 견해를 소개한다. 우리가 다름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가 어딘가에 나와 '같음'이 존재할 것이라는 허황된 믿음 때문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변해서 같은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라는 책은 변화에 대한 본질을 이야기한다. 가방, 연필, 책의 존재는 결코 본질을 벗어날 수 없다. 뭔가를 담을 때 가방은 그 본질에 의해 실존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에 대해 답을 할 수 있는 대자적 존재이기 대문에 본질보다 실존이 앞선다. 인간만이 과거 자신의 모습과 거리를 두고 성찰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새로운 본질을 만들어 내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존재는 본질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유일하게 인간만이 탈존이 가능하다고 한다. '인간은 그 어떤 개념으로도 정의되기 이전에 존재하는 하나의 존재'라고 한다. 어렵게만 느껴졌던 용어와 개념을 쉽게 풀이해 주는 저자만의 강점이 부럽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고 즐기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이전의 본질을 벗어나 새로운 본질을 만들어 가는 탈존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통해 부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여 준다. 부를 크게 경제적인 부와 실질적인 부로 나눈다. 경제적인 부란 소유하고 있는 자산의 정도가 기준이 된다면 실질적 부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시간 이외에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용 가능한 시간 즉 자유시간이 기준이 된다. 즉 돈이 많은 사람보다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이 부자다. 마르크스는 이 자유 시간을 가처분 시간이라 불렀고 부의 척도는 노동시간이 아니라 가처분 시간이라고 이야기한다. 가처분 시간이 많은 내 삶이 부유한 삶임을 깨닫게 해 준다.
진정한 대화를 하고 싶다면 상대방의 언어 규칙을 파악하는 것부터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비트 게 슈타인의 <논리, 철학 사고>에서 말하고 있는 침묵에 대한 견해도 도움이 된다. 자연과학이나 수학적인 것은 명쾌한 대상이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있으나 윤리적인 것 종교적인 것, 개인 취향이나 정서 상태 등 인간 내면에 관련된 것은 말할 수 없는 것이라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하라고 한다. 사랑한다, 고맙다 등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말로 하지 말고 그 마음을 보요 줄 수 있는 행동을 보여 주라는 말에 공감이 간다. 행동은 침묵의 다른 이름이라고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콤플렉스를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에서 언급한 방법은 가장 낮은 것까지 긍정하는 것이 콤플렉스 극복의 기본임을 보여 준다. 패러다임이라는 생각의 틀을 바꾸고 싶다면 생각 자체에 눈을 떼고 세상의 변화에 주목하라는 말도 조언이 된다. 폭력에 대한 정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모리스 메를로퐁터의 <휴머니즘과 폭력>의 사상도 새로운 관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누군가의 죽음을 먹고 산다. '인간 존재 자체가 이미 폭력적이다'라는 말은 겸손하게 삶을 대하는 자세가 왜 중요한지를 알려 준다. 폭력대 비폭력의 대립이 아니라 약한 폭력대 강한 폭력의 대립이라는 이야기도 새로운 시선이다. '폭력을 행사하는 자들에 대해 폭력을 자제하는 것은 그들의 공모자가 되는 것이다.'라는 말 또한 여러 생각을 불러들인다. 불확실이 주는 슬픔을 공포라고 할 때 희망과 공포는 동전의 양면이라는 견해를 보여 주는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의 <에티카>에 대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든다.
타인들의 생각에 맞춰 사회에 맞춰 내 삶을 살아가는 '편하지만 슬픈 삶'을 선택할지 나답게 '불편하지만 기쁜 삶'을 살아갈지 생각해 보라는 저자의 질문이 긴 여운을 남긴다. 불편하지만 기쁜 삶을 살아가야 함을 알기에 아직도 넘어야 큰 산들을 본다. 어떻게 나답게 넘을지를 고민하고 그 방법을 찾는 과정 중에 이제는 철학이라는 사색의 도구를 일상에 불러들여야 할 시점이라는 걸 깨닫게 도와준 책이다. 철학의 바다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 조금 쉽게 설명된 철학서 들로 충분히 준비 운동하고 들어간다면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은 자기 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기본 공부라는 것을 알려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