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5월에 읽었던 책을 다시 한번 읽었다. <있는 그대로의 연습>이라는 저자의 책을 읽고 그의 생각이 궁금해 연결 지어 읽었던 책이다. 아쉬운 건 그때는 책을 읽고 글로 남기는 습관이 없던 시절이라 책의 내용과 그것을 받아들였던 내 맘이 잠재의식 속에 가라앉아 버린 것 같다. 물속을 휘저으면 가라앉은 침전물이 떠오르듯이 다시 읽으면서 떠오를 뭔가를 기대하며 다시 일독했다. 단기성의 기억을 다시 한번 깨달으며 그냥 처음 접하는 책처럼 읽었다.
일본의 명문대인 동경대 출신의 젊은 스님의 사색과 정진 법이 당연히 세간의 이목을 끌 만 했을 듯하다. 그의 전작 <있는 그대로의 연습>에서 여자 친구와 싸운 일화와 자신이 스님이 되어 번뇌를 다스리는 법에 대해 세련되게 글로 표현했던 기억이 난다. 도심 속에서 살아가며 매일 일요일 아침 한두 명씩 방문하는 자신의 작은 집도 인상 깊었었다. 세속에서 떨어진 숲 속 어딘가에 있는 공간 즉 절이라는 공간이 스님에게 필요하다는 편견을 없애준 그의 수행법은 젊은 엘리트 다운 발상이었다.
책 중 '몸과 마음을 조정하는 법'이라는 소제목은 실제 생활에 적용해 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얻을 수 있도록 도울 아이디어가 많다. 책은 '인간은 생각하기 때문에 무지하게 된다.'라는 다소 강한 반어법적인 표현으로 시작된다. 사람의 3가지 번뇌인 분노, 탐욕, 어리석음이 생각에서 비롯될 수 있다. '우리 마음은 새로운 자극을 얻기 위해 부정적인 방향으로 생각이 가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사고병 즉 생각병이다.' 저자의 핵심 생각이 담겨 있는 문구다. 그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통해 번뇌를 버릴 수 있다면 삶이 바로 천국이 될 것 같다.
마음을 관리하는 법으로 팔정도를 이야기한다. 인간이 바르게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여덟 가지 길로 정사유(바르게 생각하기), 정어(바르게 말하기), 정업(바르게 행동하기), 정명(바르게 생명 유지하기) 1단계를 이야기한다. 2단계인 정정진(마음을 정화시키기)과 정정(집중하기)을 지나 3단계인 정념(마음의 센서 닦기)과 정견(깨닫기)이 바르게 살기 위해 자신을 갈고닦아나가는 단계별 목표다. 한꺼번에 산을 뛰어 넘기는 어려우나 하나씩 계단을 쌓아 올라간다면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으리라. 그 첫 계단이 나를 다스리는 생각이다. 바르게 생각하기를 통해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몸과 마음을 조정하기 위해서는 말하기, 듣기, 보기, 읽기와 쓰기 등의 구체적인 방법들을 소개한다. 말하기의 경우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목소리와 상대가 듣는 내 목소리가 다르다. 저자가 이야기하듯이 자신의 목소리를 관찰하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높지도, 낮지도 않게 지혜롭게 이야기하는 방법을 염두에 두어야겠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화나 분노가 말이 되어 고슴도치의 등가시처럼 세상을 향해 날아갈 수 있다. 화는 불과 같아서 한번 나면 그 크기가 확대되고 더욱 나쁜 건 습관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화에 따옴표를 붙여 보라고 한다. “화가 치민다”라고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라는 하나의 관점과 의견을 받아들이는 제삼자의 관찰법은 습관적인 반사 반응을 막아 줄 것이다.
말을 하다 보면 남의 이야기, 의미가 없는 이야기, 듣는 사람의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 자기 자랑, 몰라도 되는 정보 이야기, 지나친 칭찬이나 연예인 가십거리 같은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쓸모없는 정보는 마음을 오염시키고 생각의 잡음을 증폭 되게 한다고 한다. 말하는 사람 또한 쓸데없는 사고가 마음에 깊이 새겨져 기억이 혼란스러워진다고 하니 말의 소재 선택도 중요함을 알 것 같다. '말을 신중하게 하다 보면 기품이 있는 성격으로 변하고 사용되었던 탐욕과 어리석음이라는 번뇌 에너지를 유익한 일에 쓸 수 있다.'
감사에 대한 의견은 독특하다. 감사하는 마음 없이 입으로만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게 되어 마음이 비뚤어질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 행복하게 살기 위한 네 가지 감정으로 자(살아 있는 사람과 사물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 비(가엽게 여겨 괴로움과 고통이 벗어나게 해 주려는 마음), 희(다른 사람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는 마음), 사(분노와 어리석음을 벗어나 평상심을 유지하는 마음)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감사에 해당하는 마음이 없다고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원하거나 노력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획일화된 감사의 말 대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써보라고 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정형화되지 않은 말을 선택해서 표현하게 되면 독창적인 생각이 떠오르고 머리가 맑아져 다양한 표현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한다. 그저 입으로만 '감사합니다'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00을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음식을 대접받고 난 후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마음을 전달하는 다양한 표현법으로 이야기하라는 말 같다.
'세계에 귀를 기울일 수 있으면 세계가 변한다'라는 듣기에 대한 의견도 도움이 된다. 주변의 모든 소리들은 각각의 인연에 의해서 연결되어 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 때문에 서로 연관되어 발생한다고 한다. 소리에 세뇌되어 있지 말고, 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해 보는 연습을 통해 각각의 소리들이 별자리를 이루는 별들처럼 서로 연계가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세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소리가 청각을 자극하고 있는데 지나지 않아'라는 말이 칭찬에도 들뜨지 않고, 비난에도 낙심하지 않는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한다. 소리에 즉시 반응하는 패턴에서 빠져나오면 누구에게 어떤 소리를 들어도 빨리 대처하게 된다고 한다. 칭찬과 비난속에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힘을 가질 때 감정의 주도권을 자신이 확실하게 갖게 될 것 같다.
'보아도 보는 게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저자는 이야기한다. 자극이 강한 영상은 번뇌를 키우기 쉽다고 한다. 휴대전화 메시지, 월급 명세서, 적금 통장 등 자신의 가치를 혹은 자존심을 자극하는 것들은 최소한 적게 보는 습관을 가져 보라고 한다. 대신 눈앞에 풍경을 주의 깊게 관찰해서 늘 지루할 수 있는 환경을 벗어나게 되어 집중력이 커져 인지력과 주의력이 커지고 마음이 명석해진다고 한다.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힐 수 있는 것들로부터 시야를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시로 튀어나오는 휴대폰 광고가 떠오른다. SNS 매체가 흔한 일상에서 원하지 않는 정보들이 수시로 내 시야로 들어온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그 유혹에 빠져 다양한 사건 사고들을 보는 경우가 많다. 그런 일들이 번뇌를 키울 수 있는 일이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 부처처럼 눈을 반쯤 감고 시야를 차단하고 자기 마음의 음직임에 집중하고 호흡에 의식을 집중해보는 연습도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잘하고 싶다는 욕망에 쫓겨 가슴이 두근 거리는 일이 없을 것 같다.
'받아들여지고 싶다'는 욕구가 고통을 부르고, '번뇌는 구하면 구할수록 증가한다.'라는 저자의 말에 글을 쓰며 자신의 마음 바라보기가 왜 중요한지 알 것 같다. 무엇인가를 원하고 그것이 없을 때 불안하고 부족함을 느껴 괴롭다는 생각이 피어난다. 그것을 갖고서도 끝이 나는 게 아니라 욕망의 업이 쌓여 마음에 괴로움이 생겨 시야를 가리게 된다고 하다. 소유물이 적으면 마음이 안정되고 마음속을 들여다 보기가 쉽다고 한다. '정말 필요한 것을 적게 산다'라는 마음이 욕망을 다스리게 할 것이고 양심을 지키며 살기 쉽게 한다고 한다.
불교 용어로 '선우'라는 말은 서로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둘도 없는 친구를 말한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온화하게 맑아지는지 아니면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지를 관찰하고 서로 마음을 맑게 해주는 관계를 만들어 가야 삶이 즐거울 것이다. 역으로, 타인의 잠자는 욕망을 깨우는 사람이 아니라 이해받는 시선을 선물하고 서로의 마음을 온화하게 만들어 주는 사람이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 만나는 사람도 밤하늘의 별처럼 하나의 별자리가 될 수 있다. 서로의 자리에서 빛이 나게 해 줄 때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더없이 아름다워질 것 같다. 지금 이 순간이 이 공간이 천국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