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을 500페이지의 책으로 요약한 책이다. 숨 가쁜 삶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읽을수록 생각이 깊어지는 책이다. 어떻게 살아 냈을까? 저자는 1920년 폴란드에서 태어나 2013년 독일에서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1960년에서 2000년까지 40년 동안 8만 권의 책을 비평한 비평가로서 삶을 살다 간 저자는 작가를 위해 글을 쓴 것이 아니라 독자를 위해 글을 쓴 사람이다. 그는 취미와 잘하는 일, 직업 그리고 좋아하는 일이 일치했기에 가능한 일을 해냈다. 그의 지론은 '글은 쉽고 명료한 언어로 투명하게 핵심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를 일러 '문학의 교황'이라 했다고 한다. 책에 대한 글의 평이 작가들에게는 마치 무서운 시어머니 같았을 것 같다. 그래서 그의 장례식에 독일 대통령을 포함한 각계각층의 수많은 사람이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책은 일관되게 하나의 긴 통으로 연결된 것 같다. 그 삶의 통 안에서 문학과 시 그리고 음악이 흘러넘쳤기에 역사의 휘 용돌이 속에서도 안전하게 그의 정신이 보호된 것 같다. 폴란드에서 태어났지만 아버지의 사업능력이 변변치 못해 어머니의 고향인 독일로 이민을 간다. 독일에서 학교를 다니며 만난 문학들이 서서히 그의 인생으로 걸어 들어온다. 2차 전쟁이 끝난 후 독일 작가의 당돌한 질문, '당신은 대체 정체가 뭡니까? 폴란드인 입니까, 아니면?'에 대한 저자의 답변이 기억에 남는다. '절반은 폴란드인, 절반은 독일인 그리고 온전한 유대인입니다.'
1차 대전 이후 폴란드인들에게 지배적인 독일 배척 분위기와 유대인들에 대한 적대적 사회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저자의 형이나 누나의 독일식 이름은 학교에서 왕따를 불러들일 충분한 소재였다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인들을 극진히 대접하고 특권을 허락했기 때문에 유대인들은 그에 대한 보답으로 아들이 태어나면 알렉산더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기에 그나마 저자의 형은 놀림을 덜 받았다는 일화도 새롭다. 유대인들에게 회당은 신과 대화하기 위한 장소이기도 하지만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기 위한 클럽 같은 곳이기도 하다.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그들이 당연히 서로 돕는 구조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가족 모두 독일로 이민을 가지만 그곳에서 조차 유대인들에 대한 냉대가 합법화되어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마치 아이들이 물고기를 한 곳에 몰아 서서히 고기의 영역을 좁히고 한꺼번에 잡기 위한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학교 생물학 시간에 인종학 수업을 넣고 두개골 측정으로 아리아인이 우월하고 유대인들이 열등한 민족임을 보여주고자 한 수업 시간은 슬프면서도 우습다. 우수한 두개골을 측정한 결과 반에서 1명뿐이었으며 그것도 유대인이었다는 저자의 일화를 통해 서서히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유대인 몰이를 하는 부분에서는 나도 모르게 긴장감이 들었다. 하지만 유대인계 아이들이 똑똑하고 예의가 발라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인간적 모멸감을 받은 경험은 없었다고 한다. 결국,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군은 유대인들을 모두 폴란드의 도시 바르샤뱌에 집단 거주 지역인 '게토'를 만들고 독일과 폴란드에 살고 있는 그들을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가둔다.
유년시절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은 <올리버 트위스트>와 <로빈슨 크루소> 같은 청소년 편집용 책과 백과사전이었다고 한다. 그의 생애에 만나는 문학들이 서서히 그를 보호하기 시작하는 듯하다. 또한, 나치당들이 금서로 정한 빨간딱지가 붙은 책들은 저자가 무슨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표시가 되었다고 한다. 누나가 치는 피아노를 통해 바흐의 음악과 쇼팽을 접했고, 그의 아버지가 소유한 전축에서 오페라를 만나고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를 평생 사랑하게 만들어 준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문학 이야기가 공통적으로 들어 가 있다. 그리고 간간히 음악에 대한 저자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돈을 아껴 오페라를 관람하고, 중고 서점에서 빨간딱지가 붙은 책들을 사서 아껴가며 읽고 있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아름답다. 이민을 가는 한 화학자가 저자에게 가져가고 싶은 만큼 책을 가져가라는 말에 큰 여행용 트렁크 가방에 책을 가득 싣고 낑낑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소년의 모습이 떠오른다. 반 유대주의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독일을 떠나는 화학자가 어린 소년에게 들려주는 이야기가 인상 깊다. '이 책은 자네 한데 선물하는 게 아니네. 실은 빌려주는 거야. 지금 이 세월을 자네가 빌려 쓰고 있듯이.'
그의 매형이자 친구인 게르하르트 뵙의 조언인 '삶이 먼저, 철학은 나중에'라는 표현을 통해 유년기 저자의 삶이 문학에 얼마나 빠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청년기에 영향을 준 소설을 통해 평범함이 주는 행복과 진부하지만 매혹적인 삶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해 준다. 그의 삶의 균형을 깨기도 하고 발란스를 마쳐주는 저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 아돌프 히틀러와 대표적인 반체제 소설가인 토마스 만에 대한 이야기는 독일의 양면 즉 두 가지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저자는 느낀다. 인터뷰 대상자였던 토니오 크뢰거의 인용 말이 저자의 마음을 잘 보여 준다. '인간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일을 묘사하느라 때론 죽을 만큼 힘들다. 그의 탄식은 내 마음 깊은 곳에 와닿았다. 문학 속에서만 사느라 인간사에 배제되었다는 두려움, 달리 말해 주위에 펼쳐져 있지만 도달할 수 없는 아름답고 푸른 초원에 대한 동경이 한시도 나를 떠난 적이 없었다. 이 두려움, 이 동경이 내 삶의 주요 모티브이다.'
게토에서 삶은 매일이 두려움의 연속이었다. 수시로 잡혀가는 유대인들 그리고 결국 매일 6000명씩 이주라는 이름으로 각출되어 가스실로 가야만 하는 상황까지 다가 오지만 그 속에서도 음악과 문학에 대한 저자의 관심이 꽃처럼 피어난다. '예술은 무엇을 남길까? 예술에서 남는 것은 변화한 우리이다.'라는 말로 위안을 삼은 건 아닐까. 게토에서 아내 토지아를 만나고 결혼하는 과정 또한 마치 일제강점기에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급하게 이루어진 결혼과 닮아 있다. 가스실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도망쳐 나와 아내와 함께 폴란드의 농가에서 숨어 지낸 이야기는 막막하다. 유대인을 숨겨주는 사람도 처형을 당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목숨을 걸고 그들을 지켜준 폴란드 농부 부부의 마음은 자비와 인간다움이라 이야기한다.
폴란들에서 다시 살게 되면서 그들의 말과 글을 배우며 폴란드 시의 구슬 프로 음울한 색조에 깜짝 놀랐다는 저자의 말에 그들의 시가 궁금해졌다. 폴란드 시의 재치와 풍자에도 꺾이거나 사라지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그들의 시를 찾아봐야겠다. 폴란드 사람들이 유럽 예술에 선사한 가장 아름다운 선물로 쇼팽의 음악과 더불어 시를 들 수 있다고 까지 말한다. 한 언어를 제대로 마스터했을 때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즐거움 중 하나가 그들의 문학을 온몸으로 느낄 때일 것이다.
결국, 소련이 독일을 굴복시키고 공산당에 우연히 가입한 저자는 전쟁 후 다시 파괴된 베를린을 방문한다. 그리고 28살의 나이로 40명을 거느린 최연소 영사로 영국에서 잠깐 살게 되지만 세계 시민 주의자로 낙인찍혀 다시 폴란드로가 사임 후 독방에 갇히는 과정을 밟는다. 그 혼란스러운 폴란드를 보고 '폴란드인은 전쟁에서 이겼지만, 젠장, 독일은 평화를 얻었군.'이라는 한 줄의 글이 당시의 상황을 보여 준다. 유대인은 '성서'가 휴대용 조국이라면 저자에게 있어서 독일 문학이 휴대용 조국이었다고 한다. 폴란드의 이념적 경직성은 다시 저자를 서독으로 이민하도록 이끌고 결국, 독일에서 삶의 마지막 배경을 갖게 된다. '성공은 시기를 자아내고 명성은 의혹을 불러일으킨다.'라는 말처럼 저자의 성공 뒤에 따라오는 그 어두운 그림자 또한 문학의 힘이 저자를 지켜 내 준 것 같다.
음악을 역사상 가장 매혹적인 창녀라고 표현한다. 사람은 음악을 이용해 신에 대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고 애국심을 일깨우고, 우리를 싸움과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한다. 노래는 집단 수용소 수감자만 불렀던 것이 아니라 그 속 파수꾼도 불렀다고 한다. 바르샤뱌 게토의 좁은 방에서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사장조를 함께 들은 젊은 이들은 모두 가스실에서 사망했지만 저자는 살아남았다. 음악과 도덕이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는 말은 그저 아름다움을 간직한 소망에 지나지 않으며 어리섞은 편견에 불과하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이해가 간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슈베르트가 세계를 변화시킬 수 있었는가에 대한 저자의 대답은 '물론'이다. 기존 세계에 그들의 작품을 더했다는 것과 음악이 막아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 주기 때문에 위안이 된다고 한다. '작가들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그들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저자의 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문학은 그에게 피난처였고, 음악은 그의 안식처였을 것이다.
'민족은 사랑하지도 말고 증오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니체의 금언이 마음에 든다.'라고 말하는 저자의 심정이 충분히 공감이 간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은 스스로 정할 수밖에 없다. 살아낸 자들이 겪는 그 깊은 슬픔 속에서 그들이 아닌 그가 살아낸 이유에 대한 그 깊은 질문을 평생 가슴에 달고 살아간 삶이 아름답다. 그 답게 한 생을 잘 살다 간 사람을 통해 지금 내가 가진 최고의 조건들에 대해 감사함이 절로 든다.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최고의 시대에서 최고의 삶을 살아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