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당에게 길을 묻다]- 김주영
오만 원 지폐에서 자주 만나는 사임당은 익숙한 인물이다. 이순신과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는 제법 관심 있게 책을 찾아 읽었었다. 본명 신인선, 사임당에 대한 궁금증을 왜 갖지 못했을까.
국회 도서관은 책을 대여해 주기도 하지만, 이용자들이 가져갈 수 있는 책을 따로 구비해 둔다. 책 표지의 ‘길’이라 길게 늘어지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책과 인연은 이렇게 사소하게도 맺어진다.
사임당은 글씨, 그림, 자수에 뛰어난 조선 시대 중기 여류 예술가이다. 15세기 중국 최고 성군 중 한 명인 문왕의 어머니 태임을 롤모델로 삼아 자신의 호를 사임당이라 정했다. 경전 공부와 인격 수양을 평생 동안 매진하는 ‘여성 군자’로 삶을 결심한 15세 사춘기 소녀의 꿈을 이름에 담아냈다. 예술적 재능 계발을 7세부터 삶의 마감인 48세까지 지속한 자기 계발의 선구자가 사임당이다. 책을 읽고 아쉬운 점이 많다. 만약, 이순신 장군처럼 사임당도 매일의 일상을 글로 남겨 두었더라면, 그녀 삶에 대한 궁금증으로 갈증이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여성에게 글을 가르치는 일이 드문 시절, 어떤 가정에서 나고 자랐기에 5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사임당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일까. 아버지 신명화는 다섯 딸들 모두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중 둘째인 사임당이 가장 영특했다고 한다. 안견의 <몽유 도원> 보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임당은, 아버지의 든든한 후원이 없었다면 예술의 꽃을 피워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림 그리는 사람을 환쟁이라 부르며 멸시하는 사회에서, 딸이 재능을 키워 나갈 수 있게 후원한 아버지가 오늘날까지 사임당의 존재를 가능하게 한 분이다. 딸을 위해 비싼 화선지를 사다 주고, 손님을 접대하는 방을 사임당이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배려한 아버지가 있었다. 무남독녀인 어머니가 결혼 후에도 외조부모와 함께 살았던 환경도 중요한 요소다. 외할아버지 또한 사임당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임당은 그림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해 혼과 열을 쏟아내는 정성을 훗날 자신의 딸 매창에게도 전수한다. 작은 사임당이라 불린 매창 또한 어머니로부터 그림을 배워 이름난 조선 화가로 아직까지 작품이 남아있다.
신혼부부가 결혼 후 신부 집에서 몇 년을 살기도 했던 조선시대 분위기를 만날 수 있다. 이런 풍습 덕분에 ‘장가간다’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우리나라 처가살이의 시작이 고구려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신부집 뒤뜰에 ‘서옥’ 별채를 지어 신혼집으로 이용했다고 했고, 아이가 장성하면 비로소 남편이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자신의 집으로 갔다고 한다.
사임당 아버지 신명화는 사임당이 결혼 후에도 맘 편하게 작품활동을 허락해 줄 수 있는 이원수를 사윗감으로 선택했다. 홀어머니와 변변한 재산도 없는 유순한 낙천 주의자 이원수는 사임당의 작품 활동을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장으로서 과거를 통해 벼슬길에 오를 의지가 약해 사임당 스스로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고향 강릉에서 살다가 3년 후 서울 이원수 집에서 살면서 절약을 위해 집안 텃밭을 부지런히 가꾼다. 집안일을 하면서 작품활동을 위해 새벽 3~4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 준비 전까지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 낸 사임당의 시간은 분주했을 것이다. 서당에서 아이들이 오면, 부모 앞에 다시 읽도록 하고, 사임당이 다시 그 뜻이 무엇인지 묻고 확인하면서 공부를 시킨다. 질문 화법을 통한 공부법을 지도하면서, 서당 갈 형편이 되지 않자 스스로 일곱 아이들을 가르쳤다.
사임당은 언행이 신중했고, 경전을 많이 읽어 지식과 학문의 깊이를 더했다. 고전과 역사서를 읽어 세상을 내다보는 안목을 길렀다. 그녀의 신념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훈이 된다.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어도 인격과 덕을 갖추지 못하면 그것은 한낱 재주꾼에 불과하다.’
독서를 통해 인생관을 확립하고, 경전을 읽어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담고 살아낸 사임당. 그녀의 중심 사상은 논어를 통해 깨달은 ‘뜻을 세우라’라는 것이다. 7남매의 태교 일환으로 경전을 소리 내서 읽어 주었다. 아이들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눈높이 대화를 시도한 그녀 덕분에 7남매 모두 이름난 학자와 부덕을 갖춘 인물로 성장했다. 총명한 아들 이이에게는 겸손을 가르쳤고, 첫째와 둘째 아들에게는 인내를 가르쳤다. 아이들의 의견을 먼저 듣고 자신이 말하는 훈육은 질책이난 화를 내지 않고 교육을 했다.
사임당의 자녀 교육의 기본이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강조했다. 이이가 영의정이 되어서도 형제들의 식솔까지 100명이나 되는 가족을 거느리고 먹여 살렸다는 말에 놀라울 따름이다. 평생 청렴결백하게 살면서, 관녹으로 만 100명이나 되는 식 속을 먹여 살린 이이는 어머니 사임당의 뜻을 잘 받들면서 살아간 것이다. 남편의 외도를 참 아낸 사임당은 결국 화병으로 세상을 뜨지만, 그녀가 원하는 삶을 스스로 이끌어내기 위한 부단한 노력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불의한 재물보다는 떳떳한 가난을 선택했고, 절약하되 인색하지 않은 삶을 살아냈다.
사임당의 작품은 사실적이고, 자연을 보는 시선을 넓혀 주었다고 한다. 풀, 벌레, 포도, 화초, 어죽, 매화, 난초, 산수 등 40여 종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 미미하게 자리 잡은 생명체에 대한 관찰은 조선이라는 폐쇄된 사회에서 세상을 더 넓게 보고자한 외침은 아니었을까. 작고 가치 없어 보이 것 또한 보는 눈에 따라 세상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건 아니까. 사임당의 삶과 오늘날 여성의 삶을 비교해 보면, 우리는 넘쳐나는 기회의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 주어진 기회를 어떻게 철학으로 바꾸어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