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이방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의 무게 - 파친코 [Pachinko]

by 조윤효

인간의 삶은 시대를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고, 어디에서 사는지도 중요하다. 가끔 TV에서 나오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가난한 삶을 보고 있노라면 우리가 가진 많은 풍요가 미안하다. Pachinko는 선택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내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원서이다. 오래전부터 들어왔던 책이지만, 인연의 끈이 이제야 맺어졌다.


일제강점기 부산 영도에서 선자는 엄마와 함께 뱃일을 하는 사람들의 하숙집을 운영하고 있다. 불구였지만 자신의 딸을 끔찍하게 사랑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고난한 삶을 살아가는 선자에게 나타난 일본 야쿠자의 사위인 한수. 그는 선자를 임신시킨다. 한수의 후처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 선자에게 일본에 선교사로 가기 위해 선자 집을 찾아온 결핵 환자 이삭은 임신한 선자와 결혼해 일본으로 가게 된다.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에서 받는 차별 속에서도 생존을 위한 사람들의 삶이 잘 그려져 있다. 한수의 아들 노아와 이삭의 아들 모자수를 길러내면서 이삭의 형과 그의 부인 경희는 선자의 삶을 지탱해 주는 울타리 같다. 생존을 위한 타협이 지속되고, 일본인도 아니고 조선인도 아닌 삶 속에서 가족 간의 유대관계는 강하다. 일본 천황을 향한 우상숭배를 거부한 교인 한 명 때문에 결국 이삭도 감옥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죽기 직전에 집으로 돌아왔다. 노아의 눈에 비친 이삭의 묘사는 기괴하다. 식민지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겪었을 그 험난했던 세상을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와 시대가 주어진 틀이 되어 개인의 삶은 버텨내는 삶이었으리라. 일본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당연한 차별 속에서 생존을 위한 개개인의 삶은 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듯하다. 그 긴장감을 견디다 못해 술과 도박에 빠져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망쳐버리는 이들도 있다. 돼지를 집 안에서 키울 수밖에 없는 삶, 늘 냄새나는 옷을 입고 하루하루 먹거리를 걱정하는 타향에서의 이방인의 고달픈 삶을 엿볼 수 있다.


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조선은 해방되었지만, 일본에 있는 수많은 조선인들은 이미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정체성의 혼선을 겪게 된다. 돌아갈 수 없는 조선, 일본에서는 불청객 같은 대우를 받는 뿌리 뽑힌 한인들의 역사를 보여준다.


건전한 직업이 아니라 오락과 도박을 합친 파친코 일을 통해 모자수는 성공한다. 그의 실리주의적 사고와 정반대의 느낌을 주는 노아는 명예주의자다. 한수의 도움으로 대학을 다니다가 자신의 일본인 여자친구로 인해 한수가 친아버지임을 알고 학교를 중퇴한 뒤 사라져 버린다. 수년간 가족과 떨어져 일본인으로 숨어 살아가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가정을 이룬다.


신앙의 힘으로 화상을 입은 남편을 끝까지 지켜낸 경희, 한수와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선자, 한수의 도움으로 영도의 숙박집을 접고 일본으로 건너온 선자의 어머니, 자신의 친아버지가 일본 야쿠자의 사위라는 것을 알고 일본 최고의 대학을 다니다 사라져 버린 노아, 파친코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모자수. 주어진 틀 같은 시스템 안에서 완전히 무력하지 않은 개인들의 삶을 보면서 잘 살아내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파친코는 어쩌면 인생의 비유를 말하는 것 같다. 인생은 공정하지 않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계속 공을 튕기는 것이다. 살아내는 삶이 아니라 누리고 살 수 있는 지금의 삶에서 무엇이 부족하겠는가.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답답함은 자유로운 창공을 활활 날아오르는 꿈을 가진 개인들의 머리 위로 쳐진 그물 같은 느낌 때문이리라. 선자의 모성애적 희생, 이삭의 종교적 신념, 나약해 보이는 지식인 노아의 도피, 그리고 부모의 선택이 그 후손들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들을 볼 수 있었다. 삶이란 멀리서 바라보면 그 기복이 크지 않은 듯하다.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한 게 인생이지만, 그 사이사이 만나는 작은 행복들이 그래도 삶은 경험하고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 어디에 있든지…. 파친코의 상징성은 인생의 운과 구조, 그리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개인 선택에 따른 변화가 얼마나 예측 불가능한지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책 속에서 기억할 만한 문구를 만나는 일도 원서를 읽는 재미를 준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배신했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Living everyday in the presence of those who refuse to acknowledge your humanity takes great courage.”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No one can escape their past.” 누구도 자신의 과거를 벗어날 수 없다.
Shame was like a heavy coat.” 수치는 무거운 코트와 같았다.
Life was not a straight line.” 인생은 직선이 아니다.

제목 없음.png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루 한 권 독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