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인어사냥] - 차인표

by 조윤효

『언젠가 우리가 같은 별을 바라본다면』이라는 책에 이어 배우 차인표가 아닌 작가 차인표를 만났다. 작가가 된다는 것은 섬세함과 상상력, 그리고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어야 가능하다. 작가는 완벽한 인간을 꿈꾸는 게 아니라, 부족하고 어리석을 때도 있지만 인간 그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작가는 신의 눈을 닮아야 하는 직업이다. 어른이 아이를 보듯이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한 줄 한 줄 조각하듯 책에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머릿속 상상력이 손끝을 통해 글로 살아나는 과정은 마치 신이 한 인간을 만들어내는 과정 같다. 작가 차인표의 머릿속에 떠돌던 상상들이 형상화된 책은 읽기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다. 기대 없이 가볍게 산행하다가 낯선 산 절경에 빠지는 것처럼 넋 놓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된다.


인어라는 소재가 호기심을 불렀고, 전설 속 인어를 한국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표현했는지 관찰하는 재미가 있다.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고 팔다리가 있다. 몸에는 수영할 수 있는 지느러미가 붙어 있고, 어린 인어들은 호기심이 많아 사람의 피리 소리나 호두 같은 작은 물체에 쉽게 유혹당한다. 어린 인어 새끼가 인간에게 잡히면, 어미 인어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아이를 찾아 나선다. 인어 새끼가 내는 울음소리는 거리와 상관없이 어미 인어가 듣는다. 오직 성인 여자 인어만이 생명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다. 그 생명 주머니로 인어들은 죽지 않고 1,000년을 산다니, 쉽게 병들고 죽는 인간들이 탐낼 만하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가 오가는데, 그 속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욕망은 비슷하다. 결국 인간의 삶은 제자리걸음이다. 세상에 태어나 욕망과 권태 속을 오가며 늙어 가고, 다시 우주로 돌아간다. 영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인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손에 넣어야 할 존재다. 인어를 달여 먹은 기억에 사로잡혀 1,000년을 살고 있는 공 영감의 난폭한 영혼과, 그 위험성을 알리는 서 씨 할머니, 엄마 잃은 남매를 키우는 덕무는 딸을 살리기 위해 인어가 필요하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인어를 대한다.


결국, 부성 가득한 덕무가 인어 남매를 잡아 온다. 고립된 섬에서 사는 영실과 영득에게는 인어 남매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다. 인간이 내는 소리를 따라 낼 수 있어 누나 인어에게는 찔레, 동생 인어에게는 짱아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어떤 대상에 이름을 붙이면 그때부터는 그 대상이 특별한 존재의 의미를 갖게 된다. 어린 남매가 인어 남매와 서서히 깊은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과, 남매 인어 엄마를 기다리며 벌이는 맹목적 탐욕을 보여 주는 공 영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덕무의 심정이 잘 그려진다.


소설은 물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그 과정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게 마무리된다. “엄마가 없는 아이는 울지 않는다. 왜냐하면 들어줄 사람이 없으므로…” 영실이 인어 남매가 울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의 아버지 덕무를 설득하며 한 말이다. 엄마 없는 새끼 인어들을 살리려는 영실이는 어리지만 이미 엄마의 마음을 가진 아이다.


영생의 의미가 있을까? 공 영감처럼 홀로 살아가는 삶에서 생존 자체가 꿈일 수 없다. 50년의 삶과 100년의 삶이 다를까? 아인슈타인이 말했듯이 시간은 절대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그 길이를 다르게 느낄 수 있는 개념이다. 하루를 집 안에 굴러다니는 동전 대하듯 사는 사람이 1년 시간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길 수 없다. 1년 시간의 가치를 못 느끼는 사람이 10년 시간인들 소중할까. 10년 시간을 훌쩍 보낸 사람이 100년 시간이 주어진 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부분은 “주어진 시간에 부족함을 탓할 게 아니라 내가 가진 시간의 질을 높여 그 길이를 늘이는 게 현명하다”는 것이다. 한 달을 1년 대하듯 살아가는 것이다. 새해가 되면 결심하듯 매달을 1년이라 생각하고 새로운 결심으로 가치 있게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 한 달 뿐이겠는가? 한 주를 시작하는 일요일도 가능하고, 하루를 시작하는 새벽도 가능하다. 쉽게 잊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이렇게 잘게 잘라 매일 큰 시간 다루듯 결심한다면, 100년의 삶은 1,000년의 삶을 닮게 된다.


인어라는 소재를 통해 보여주는 삶의 유한성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끝이 있기에 그 과정이 더욱 값지게 느껴지는 것이다.
한국형 인어가 독창적이다. 이 소재로 영화를 만들어도 좋을 작품 같다. 이성의 뇌로 접하던 책들 속에서 날 선 의식이 감성을 불러오는 소설 덕분에 한결 부드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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