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제목이 꼭 나를 부르는 듯해 구입한 책이다. 몇 년 전 미니멀 리이프를 실천해보자는 즉흥적인 결심으로 책 10박스를 버리면서 대학 때 번호표까지 붙이면서 모아두었던 시집 150권도 함께 떠나보냈다. 그땐 삶이 복잡해서 단순하게 살고 싶었었다. 그래서 버리면서도 아쉬움이 없었는데 정재찬 교수의 책 제목이 그 버린 시들에 대한 나의 마음이 삭막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책의 서두는 영원한 마음의 스승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교수의 말을 소개한다. '의술, 법률, 사업, 기술 이 모두 고귀한 일이고, 생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지만, 시, 아름다움, 낭만, 사랑, 이런 것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이란다.'
책은 30편이 이상의 아름다운 시와 그리고 그 시들을 닮은 노래로 대중에게 알려진 글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마치 연예인들 가십거리를 궁금해 읽듯이 시와 함께 우리가 몰랐던 시인들의 삶을 소개하고 있다. 읽으면서 마음 아픈 시인의 삶이 더 많았던 건 그런 아픔이 아름다운 글로 승화되는데 한 몫했으리라.
진달래 꽃으로 유명한 시인 김소월은 문학 활동에만 전념할 수 없는 여건 속에서 가업을 물려받고 광산업과 동아일보 지국의 사업 실패로 33살의 짧은 생을 스스로 정리했다는 내용에서 안타까웠다. 좀 더 살아 남아 보석 같은 삶의 진리들이 그의 생각의 틀을 거쳐 후손들에게 큰 선물을 안겨 주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것은 사랑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라고 했던 시인 유치환의 20년간의 사랑 이야기는 아찔하다. 결혼 한 남자가 20년간 부인이 아닌 다른 여인 '이영도'에게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서 보냈다.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힘으로 제주도에서 불륜의 이름을 가지고 살고 있을 때 시인의 부인이 두 사람을 위한 한복과 먹을 양식을 가지고 찾아갔다고 한다. 이에 도저히 자신만의 사랑만을 고집할 수 없어 이영도 시인은 유치환과 결별하고 그 이후 20년 간 서로 서신만 주고받는 사랑을 해 온 것이다. 그녀의 시 또한 가슴 아프다. 어느 위치에 있건 여인의 삶이 가슴 시렸을 것이다. 몸 만 소유한 남자와 사느냐 정신만 소유한 남자와 사느냐의 선택에서 온전히 갖겠다는 건 욕심이었을까?
천상병 시인의 '이 세상 소풍 끝나고 돌아가리라'라는 말은 하늘에서 내려준 말이 아닐까? 친구의 옛 동독 방문에 의해 빨갱이라 오인받아 전기 고문과 감옥살이 후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이성을 잃게 된 시인의 운명은 정신병원에서 마감된다. 그는 진정 이 세상이 소풍이었을까? 개인의 가치가 이렇게 쉽게 짚밝힐 수 있는 시대를 그는 살아 내었다. 그래서 시인의 삶의 여정을 이해할 때 시를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다.
황순원 소설가의 아들 황동규 시인이 고 3 때 쓴 '즐거운 편지'는 그 나이에 쓴 시라고 볼 수 없을 만큼 세련되고 조숙한 글귀가 몇 번을 읽게 만들었다.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맬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시인의 삶 중에서 특히 아내를 먼저 보낸 김춘수 시인의 아내 정성을 그리워하는 시 '강우'는 문득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나게 했다. 점점 연로해지시는 부모님이지만 서로 의지하고 오랫동안 행복한 노년을 사셔서 우리 곁에 오래오래 머물러 주시길 바란다.
'어제와 늘 같이 오늘을 살면서 내일이 변화되길 기다리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라는 저자의 말을 다시 한번 새겨 본다. 살아가는 목적을 잊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시와의 만남을 가져야 한다. 덕분에 류시화 시인의 '지금 내가 알고 있었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시집을 오랜만에 구입했다.
시와 문학이 삶과 접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가면서 우리는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잃지 않는 삶을 그려 낼 수 있는 것이다. 시를 잊은 우리는 삶의 목적을 잃고 현실이라는 바퀴를 쉴 사이없이 돌리고 있는 건 아닐지 다시 한번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삶의 창을 열고 자연이 들려주는 노래에 귀를 기울일 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