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살다 1. 받아들이다
"엄마 57초 98XX, 그러니까 57초야"
82년 엄마사람인 나는 그 시절의 누구나 처럼 부모의 기대를 한껏 받았다.
하지만 나는 (초롱초롱 반짝 거리는 눈으로 모든 일에 샘을 가지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길 바라는) 보모의 기대와 정반대의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으며 목소리가 아주 작은 (그러나 키는 남들보다 곱절은 큰) 아이로 자랐다. 자라면서 큰 사고는 치지 않았지만 공부와는 거리가 먼 아이, 지금 생각해 보면 모범적이지도 성실하지도 못 한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사회적 준거 틀 안에서 교육자의 모습으로 학생들에게 성실성과 삶의 태도를 운운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부모의 기대는 눈곱만큼도 하지 않고 자랐으면서 나의 J에게는 온갖 삶의 잣대를 들이밀며 최고의 모습을 발휘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모두에게 특별한 아이로, 모두의 관심을 받으며, 그러나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며 떳떳하게, 그리고 겁 없이 세상을 향해 질주해 나갔으면 한다. 그리고 깨달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면에는 부모의 가치관과 삶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나의 결핍이 투영된 대상이 J라는 사실도 말이다.
다 알면서도 아들이 시합 결과를 듣으면 나의 속상함을 가슴속에 눌러 담아본다. 나보다 훨씬 성실하고 건실한 J. 잘하고 싶어 하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고 있다. 수영을 시작하기로 한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헛으로 쓴 날이 없다. 졸업식날, 12년을 산 동네에서 흔히 말하는 불알친구들과 소소한 작별의 시간도 가지지 않고 제주도 합숙 훈련에 참여할 정도로 나이는 어리지만 심정만큼은 다 큰 J이다.
자유형 하는 형들과 2명의 출전권을 놓고 벌인 자체 선발전. 종전 100M 공식적 기록이 1분 1초대. 학교 수영장이란 환경을 고려한다 해도 58초 대는 나오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자신의 PB-3초. 비록 100M 출전권을 따지는 못했지만 잘 싸웠다. 비공식적 기록으로 PB-1.5초 일 듯하다.
8개월간 쉼 없이 부산, 서울을 오가며 받은 렌슨들과 코 부상으로 쉬었던 시간들을 스쳐 지나갔다. 수영연맹 사이트에서 다른 선수들의 기록들도 찾아보았다. 멀리 길게 바라보아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새겨 보았다. 물리적 제반을 동등하게 맞춰주면 짠하고 변할 줄 안 나의 무지에 화가 나는 건지, 아님 지극히 평범한 J의 재능과 운동신경에서 오는 곤란함 때문인지 J의 결과를 쉽사리 받아지진 않았다. 내 감정을 솔직하게 누군가에게 말하는 게 못난 엄마라고 생각할 것 같아서 더 답답했다. 스스로도 J를 믿어주지 못하는 속물 같은 내가 속물 같아서 싫었다.
어제오늘, 지인과의 대화 속에서 평정심을 찾고 지금에서야 평범함을 받아들인다.
아주 아주 보통의 J가 주는 소중함을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극강의 모순이 늘 함께해서 힘들 뿐이다.
소중한데 쓰라리고, 편 온한데 시린, 오늘도 매운맛으로 기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