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고싶은 영화
지난주 일요일 오후였다. 내가 다소 무료하게 보였던지 아이들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하였다. 영화 ? 요즘 볼 만 한 것이 있느냐고 하였더니 국산영화라고 하면서 요사히 잘 나가는 배우가 있다고 한다. 이름하여 마동석, 하여간 그의 영화는 무조건 재미있다고 한다. 극장은 코로나 방역해금으로 인하여 많이 바빴다. 영화의 첫 도입부는 낯익은 베트남의 호치민 市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배경이나 소품 모두 친숙한 만큼 먼 세상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 그리고 재작년에 이곳 중국을 떠나 베트남에 새로 자리를 잡은 업체가 내가 알기로도 열 社가 넘는다. 특히 혜주에 있던 삼성전자가 하노이로 옮긴 후부터는 그와 관련된 전자업체는 거의 모두 중국을 떠났다. 심지어 붐볐던 여행객의 발자국도 끊어지다보니 광동지역은 당분간 한국과는 옛날같이 친밀한 관계는 끊어진 셈이다.
순진한 경찰, 마동석, 그는 한국판 스티븐 시갈이다. 우람한 체격의 그에게 힘과 싸움에 관한 한 그에겐 적수가 없다. 그가 베트남에 온 것에 발맞추어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그는 우연치 않게 그 사건에 휩쓸리게 된다. 그러나 그는 체재 기간이 만료되어 한국에 돌아오게 되고 한편 살인자도 또 다른 살인을 위해 한국에 오게 된다. 결국 그들은 한국에서 다시 만나게 되고 마동석은 베트남과 한국,중국을 오가며 밀입국 사업으로 재미를 보던 XX와 함께 그 조직을 일망타진하게 되고 결국에는 살인자를 붙잡게 된다.
영화는 개봉을 한지 이십여일만에 50만을 넘는 관중들이 다녀갔다고 하며 지금은 천만이 넘었다고 한다.주인공 형사 마동석에 대한 관중들의 '애정'이라는 포인트와 쉽지않은 지금의 현실을 보면 왜 이 영화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마동석의 단순무식함, 그는 단순하다.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른 것이다. 말로서 어렵게 머리를 돌게 만들거나 장난을 치지 아니한다. 그리고 그는 그냥 평범한 아저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내면적으로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차 있다. 그는 타인의 굶주림과 아픔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떻게든 이해타산의 눈치를 돌려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그들의 아픔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체격에서 보여준 우람함은 시청자들에게 안도감을 안겨 주고, 단순무식한 폭력앞에서는 적수가 없다는 것이 스트레스를 날려준다.
영화적인 측면에서 보면 우연성의 남발, 다소 과장된 연기로 결코 잘 된 작품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우리모두는 평론가가 아니지 않는가. 극본에 억메이지 말고 그저 가볍게 보면 볼만한 영화였지만, 나에게는 정작 영화 외적인 요소가 한층 기억에 남는 시네마였다. 내가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본 것은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 손에 이끌려서였다. 그러던 내가 이번에는 자식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간다 ? 세월이 흘렀는가. 인생이 기억이고 추억이라면 나는 영화와 가족에 관한 한 조금도 그런 기억을 만들지 않았었다. 불평만을 이야기 했었다. 극본을 보고 따지기조차 했었다. 그리고 혁명과 내전의 와중에서 피어난 개인의 애틋한 사랑이 국가라는 단체와 체제의 소용돌이 아래에서 어떻게 스러지고 말았는지, 그것도 가슴아프게 그려낸 영화나 글에 관심을 쏟았었다. 가령 소설 “광장”에서 낙동강까지 진출한 이명준이 간호병으로 지원한 은혜와의 밀회장면은 지금도 가슴을 아련하게 한다. 그리고 은혜가 마지막으로 한 말 “우리 죽기전에 자주 만나요.”에 이르러서는 나이 육십을 넘은 지금도 가슴이 뭉쿨하고 눈에 이슬이 맺히곤 한다. 그러고 보니 내가 눈물을 흘렸던 또 하나의 영화 그리고 장면을 꼽으라면, 그것은 영화에서 '지바고'가 적군 파르티잔에 한동안 억류되어 있다가 탈출에 성공한 후 '라라'로 부터 그의 가족의 소식을 듣는 장면이다. '지바고'의 부인 '토냐'는 프랑스로 망명을 떠나기 전 유리아틴에 있는 '라라'를 찾아와 마지막으로 그간의 소식과 편지를 전한다. 말하자면, 그녀는 남편 '지바고'와 '라라'의 관계를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뇌리에 뚜렷하게 남아있는 마지막 장면, '라라'는 지바고의 장례를 지낸 뒤 헤어진 딸을 끝내 찾지 못하고 남쪽으로 떠난다. 지바고의 형 '예흐도프'에게 작별인사를 하며 건너편 도로에서 손을 흔드는 그녀 그리고 가벼운 그녀의 옷차림 과 뒤로 보이는회색빛 큰 장벽이 혁명과 전쟁에 휩쓸려가는 개개인의 운명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고 보면 영화는 곳곳에 앞날과 당시의 심정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영상으로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어지러운 혁명 그리고 적군을 피해 에 온 '지바고'가 성읍 에서 '라라'를 다시 만나는 장면은 바람에 휩쓸려가는 낙엽으로 대신하고 짧은 봄, 흔들리는 '지바고'의 마음은 수선화와 떨어지는 꽃잎으로 그들을 대변하고 눈 덮힌 시베리아 새벽의 고독은 늑대의 울음소리로 대신한다. 그러고보면 영화는 차라리 한편의 시이다 '예흐도프'의 회상이 맞는다면 그녀는 흑해연변의 남쪽지방, 우크라이나로 떠난다. 그리고 세월이 지났다. 그 후로 그녀의 소식이나 생사를 듣지 못하였다.' 지바고'가 '라라'를 처음 본 혁명전야의 크리스마스 파티 그리고 전선, 재회의 반가움으로 충만한 유리아틴, 시베리아 동부의 도시의 낭만이 애상적이라면, '지바고'가 적군에게 납치되고 다시 '라라'를 찾아온 후 식구들과 생이별을 한 것을 알게되고 '라라'와 시한부 사랑을 하게 되는 것은 자뭇 현실적이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젊음과 늙음이 겹친 '지바고'가 지나가는 '라라'를 발견하고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하는 그의 삶 또한 애상적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지바고'처럼 때때로 잊었던 옛 추억 속에 늙고 죽어가는 지도 모른다. 과거와 미래는 그저 반짝이다가 사라지는 하나의 점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시간이란 공간에 대립되는 의미는 아니다. 시간은 흘러가도 기억에는 또렷히 남아 있으니까..... 살아있는 동안의 모든 사실은 같은 한 시간위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마동석을 통해 알게되는 시대의 아픔 과 가려움, 그리고 거대한 국가와 혁명의 소용돌이에 묻힌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가슴을 흔든댜. 우리도 충분히 그러한 사회적 혼란을 겪지 아니하였는가. 이명준과 은혜의 못다한 사랑이 지금도 가슴속에 쏴아안 감정을 일으키는 것처럼 랴는 영화는 나의 하고픈 무의식적 욕망의 투영이 그대로 비쳐져서 가슴에 남아있는지도 모른댜. 2022.0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