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좋았던 여행
비엔나는 정말 엄청난 도시였어요. 벌써 비엔나를 다녀온 지 9개월이 지났네요. 여행의 감동은 꽤 오래갔고, 덥석 글을 쓰기 어려울 만큼 잔상이 많이 남았어요. 짧은 시간 동안 보고 느낀 게 너무 많아 뒤죽박죽 상태로 정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비엔나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생각하던 도시였어요. 그냥 대충 쓱 스쳐 지나가기만을 몇 번 하여 아쉬운 마음이 컸어요. 꼭 한번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천천히 보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드디어 2025년에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5월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3주간 머물면서 비엔나 구석구석을 다녔습니다. 이 도시의 역사와 깊이에 비하면 고작 이십일의 경험이었지만, 음악 미술 건축이 삶 속 깊숙이 스며들어 일상과 분리될 수 없이 도시 전체에 녹아있고 역사가 살아있음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엔나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몇 가지 팁을 드리는 글로 비엔나 예술여행의 기록을 시작해보려 합니다.
우선, 비엔나 여행을 계획하신다면 여름은 피해서 가시기를 강추합니다. 이유는, 에어컨이 설치된 건물이 잘 없습니다. 2차 세계대전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도시는 이후에 재건되면서 매우 튼실하게 건축되었어요. 비록 냉난방 시설이 부실하지만, 건물 자체는 아직도 한참 더 쓸만하다는 얘기지요. 또한 폭격을 견뎌낸 장한 건물들은 문화유산으로 관리받고 있어서 작은 공사하나도 허가 없이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기에 에어컨은 언감생심이에요. 물론 요즘같이 이상기온이 있기 전의 여름은 그렇게 덥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기투숙을 위하여 아파트를 렌트하는 경우에는 선풍기 한대가 비치되어 있으면 감사한 일이고, 그마저도 없다면… 시내에서는 가전제품 판매하는 곳 찾기가 어려워서 구매하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비엔나에 거주하고 있는 후배한테 물어보니, 선풍기 파는 곳이 있긴 있는데 시내에서 많이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해요. 후배는 견디다 못하여 최근에 자택 내부에 스탠드형+벽걸이형 LG 에어컨을 설치하였는데 거의 천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고 해서 기함했습니다. 에어컨을 구매한다고 해서 설치까지 해주기를 기대하면 오산이라고 해요. 에어컨 설치기사를 개인이 직접 수소문하여 찾아내고 설치하는 과정이 고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것이 이해 갔습니다. 5월 중 잠깐 며칠 동안의 기온이 28도까지 올라갔는데 선풍기 바람으로만 지내려니, 에어컨에 익숙한 저로써는 좀 힘들더라고요. 한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고 식힐 곳이 마땅치 않아서 여행이 고될 듯합니다.
비엔나는 깊은 역사와 문화유산으로 가득 채워진 도시로 정신적인 갈급함은 풍요롭게 꽉꽉 채워지는데 비하여 현실에서의 음식은 좀 부실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식당을 찾아가도 즐길 수 있는 메뉴가 몇 개 없거든요. 흔히 우리가 말하는 돈가스, 그리고 스테이크를 물에 담가서 익힌 요리가 대표 음식이에요. 어느 식당을 가도 미식을 즐기는 한국인으로서 만족할 만큼의 포만감을 채우기 어려웠고, 다만 분위기만으로는 양껏 취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대도시와는 다르게, 이국 음식도 다양하지 않았어요. 결론은 이곳 사람들은 먹는 거에 큰 관심이 없는 듯했습니다. 지리적으로 내륙에 위치하기도 했고, 전쟁도 많이 겪어서 그런가 싶었습니다.
토종 비엔나 사람과 결혼한 친구에게 이곳 사람들은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사는지 물어보니 돌아온 답은 간단했습니다. 미식을 즐기는 우리에게 비하면 이곳 사람들에게는 먹는 즐거움이 별로 없다고 해요. 저녁도 아주 간단하게, 식전 와인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나서 메인 와인 한잔을 곁들여서 그야말로 이것저것 손으로 집어먹는 정도로 끝나는 날이 많다고 해요. 아침식사도 대충 간단히 하고, 점심은 회사와 학교에서 해결.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 후 배의 시댁식구들은 음식 만드는데 공정이 많이 들어가면 재료낭비 노동력 낭비라고 생각한다네요. 우리나라 음식처럼 고기가 빠지지 않고 많이 들어가면 고기를 왜 이렇게 자주 많이 먹냐고 영양 과다라고 깜짝 놀라고, 은근 알뜰하지 못한 며느리라 생각한다고 해요.
관광객으로써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먹는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다 보니, 여행 후 체중이 빠져있는 기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식탐의 자리를 정신적인 것으로 채우는 거 같았어요. 음악 미술 철학… 그리고 와인 한잔, 커피 한잔. 특히 오스트리아산 화이트 와인을 재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비엔나커피>라는 대명사가 있을 만큼, 여행의 즐거움은 카페 투어였어요. 1800년대에 생긴 카페들이 지금까지도 그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영업을 하고 있었어요. 그간 큰 전쟁도 겪었고 세월이 가면서 주인도 바뀌었고 인테리어 공사도 있었겠지만, 장소마다 역사성을 보존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모차르트가 초연했던 카페, 슈베르트가 공연을 가졌던 카페, 말러가 매일 오던 카페, 에곤쉴레가 클림트를 만나려고 매일 앉아서 기다리던 카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비운의 황후 씨씨가 좋아하던 사탕을 팔던 카페, 황제가 요청하여 개발한 디저트를 지금까지 판매하는 카페, 비포 선라이즈 영화에 나왔던 카페 등등 이 도시에 머무르면서 매일 한두 곳의 카페를 방문했어요.
카페가 너무 많기 때문에 기준을 잡았지요. 설립된 지 최소 100년 이상 된 곳 중에서 리스트를 뽑았더니 이십여 군데로 추릴 수 있었어요. 최근에 생긴 카페도 너무 멋진 곳이 많아서 다 가볼 수가 없었거든요. 음식은 풍요롭지 못했지만, 커피의 종류와 디저트는 다채롭습니다. 특이점은 제게는 무척 달게 느껴지는 케이크가 그들에게는 아침식사가 된다는 거였어요. 그리고 카페에서는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 카페에 비치된 종이 신문을 읽거나 책을 보고 있었어요. 너무나 색다르고 그립던 광경이었습니다. 비엔나에서는 카페 문화를 꼭 즐겨보시기를 권합니다.
미술관. 미술관과 예술가들에 대해서는 글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난감할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3주 여행의 경험으로 어떻게 감히 그들의 문화를 언급할 수 있을까 싶네요. 그래도 집중적으로 몰아서 본 결과 핵심은 느껴졌습니다. 왜 <비엔나 1900>이라고 하는지와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으로 너무나 풍요로운 예술을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미술도 미술이지만, 떼어낼 수 없는 건축 또한 비엔나의 매력에서 빠질 수 없지요. 예술가와 건축가는 서로서로 협력하여 대단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특이한 점은, 겉에서 보았을 때 그저 웅장하고 멋지구나 싶었던 건축물들은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황홀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들의 자랑스러운 역사와 정신은 건축물로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저는 음악보다 미술품을 좀 더 사랑하고 알고 싶어 하는 편이지만, 비엔나에서는 클래식 음악 그 자체를 느낄 수 있었어요. 고전주의와 낭만파 음악 거장들 중 비엔나를 안 거쳐간 사람이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음악 도시지요. 길을 걷다가 무심코 건물을 올려다보면, 하이든이 살았던 집, 쇼팽이 머물렀던 집, 모차르트가 마술피리를 초연했던 자리, 비발디가 살았던 곳이었다는 문패가 돌에 새겨져 있었고요, 음악가들의 묘지만 따로 모아 둔 추모공원이 있을 정도로 이 도시에서는 음악을 피해 갈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남긴 곡들, 인간이 어떻게 작곡이란 것을 할 수 있었을까, 이 이상 더 큰 신의 축복이 있을까 싶은 클래식 음악을 밤마다 공연장을 찾아 감상할 수 있었어요. 공연장도 장르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전부 다 가볼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지만, 대표적으로 국립오페라 극장인 빈 슈타츠오퍼 (Wien Staatsoper), 빈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본거지인 무지크페라인 (Wiener Musikverein), 빈심포니의 본거지인 콘체르트하우스 (Wiener Konzerthaus)등 이 세 곳에서는 세계 최정상의 공연이 거의 매일 밤마다 열립니다.
허리도 못 필 정도로 연세가 드신 분들도 정장을 갖춰 입고 지팡이를 짚고 공연장을 찾으시고, 인터미션 때는 샴페인 한잔 드시면서 주변에 앉아있는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건배를 청하던 할아버지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일상이자 소소한 행복인 음악 공연으로 도시는 매일 밤이 축제였습니다. 미리 세심하고 부지런히 계획한 덕분에 세계 최정상의 공연들을 감상하며 귀호강을 했습니다. 매일매일이 더없이 아름다운 밤이었어요.
비엔나를 추억해 보니 오페라하우스 주변의 밤거리가 아련합니다. 천천히 비엔나의 예술가들의 스토리를 찾아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