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지 못 한 엄마를 그리며
호텔 로비에 들어서니 층고가 높은 천장에선 실링팬이 돌아가고, 호텔 직원이 물 두 잔과 차가운 물수건이 담긴 라탄 쟁반을 내려놓고 싸와디캅 하며 두 손을 모으고 수줍은 미소를 보내고 사라진다.
손을 닦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니 호텔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온통 풀로 인테리어를 해서인가 풀 숲에 들어온 느낌이 난다.
동남아라고는 해도 머그컵 만한 포트에 벼를 심에 벽에 촘촘히 채워 놓은 게 눈에 들어왔다.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느닷없이, 갑자기 엄마가 떠 올랐다.
친정엄마라면 눈물부터 차 오르는 대부분의 딸과 달리 나는 덤덤했다.
겨울을 보내고 난 봄에 마트 과일 매대에 주먹만 한 참외가 봉지에 담겨 있으면 어이구 살아 계셨으면 좋아하셨겠다 하며 카트에 툭, 담으며 잠깐 떠올리는 게 전부인데.....
사실은 지난 이틀을 묵고 사흘 째 옮겨 온 호텔이다
먼저 호텔은 온갖 꽃이 피어 있어 눈과 코가 즐거웠다.
혼잣말로 여기 모셔 왔으면 엄청 좋아하셨겠네 라며 아침 먹으러 오고 가는 길, 수영하러 가는 길
꽃을 들여다도 보고 코에 대고 냄새도 맡으며 아주 오랜만에 십여 년 전 돌아가신 엄마를 떠올렸는데
옮겨 온 호텔은 지난 호텔보다 더 다양한 풀과 꽃으로 호텔을 꾸며 놓았다.
엄마가 누워 있거나 손을 쉬고 있는 걸 자라면서 본 적이 없다.
항상 바쁘고 뭔가를 하고 계셨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막내며느리이지만 80세가 넘으신 시어머니에, 중학교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딸, 아들에 심심찮게 묵고 가는 시골 사시는 먼 친척들 일손을 도와주는 언니가 있었다고는 하나 , 작은 공장을 운영하셨던 아버지의 자금줄 노릇에(주로 계를 서너 개씩 해서 감당하셨던 것 같다) 두 살 아래 남동생의 병원 치다꺼리까지 동생은 백일 지나고 소아마비에 걸려 엄마는 서울을 넘어 경기도권 까지도 침을 맞히고 약을 지으러 다니셨다. 지금처럼 교통이 좋지도 도로사정이 좋지도 않았을 때이다
나는 엄마 안중에 들어갈 틈이 없었다.
눈치껏 알아서 순했나 보다.
병치레도 별로 안 하고 위탁 아동 자라듯 북적대는 그 속에서 커 나갔다.
나중에 엄마랑 섭섭했던 게 터져 대들었던 적이 있었다.
엄마가 해 준 게 뭐 있냐고, 나는 나 알아서 컸다고.
눈물, 콧물 쏟으며 대드는 내게 엄마는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아이고 지 혼자 큰 줄 알아요 너 천연두 앓아서 보름을 밥 하는 언니와 엄마 등에서 24시간을 업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흉터 없이 얽은 자국 없이 해 놨더니 아이고 원 하며 고개를 돌리셨다
아 이러면 정말 깨갱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