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하지 못한 엄마를 그리며
엄마, 오늘까지야
한 학기 등록금만 내주면 나머지는 알아서 다닐게
나 4년 제도 안 가고 2년제 교대 갈 거야
(안 믿기겠지만 내가 대학을 가던 그때는 교대는 2년제였다)
(서울 교대는 벅찼고 집에서 통학 가능 한 인천 교대가 내 목표였다)
돈이 없다니깐, 왜 사람말을 안 믿어
엄마는 단호했고, 그야말로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출근준비를 마친 언니가 무심히, 아주 무심히 아무 소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듯 나를 스쳐 지나갔다.
무심한 잔인함
어차피 고3 여름방학 보충수업이라 조금 늦어도 큰 문제는 없었다
4교시가 끝나자 담임선생이 교무실로 불렀다
22번 너 왜 그러니?
왜 대학을 안 가?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굳게 다문 채 담임의 꾸중을 듣고 집으로 갔다.
그사이 학교는 썰물 빠지 듯 텅 비어 있었고, 나는 학교가 있는 은평구에서 집이 있는 신촌까지 2시간 반을 아침도 굶고, 점심도 굶고,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채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를 갔다.
체력장 원서비 850원을 엄마는 기어코 주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졌어도 대학 등록금 한 학기 줄 형편은 되었음에도 요지부동, 철벽 수비
그리고 원천봉쇄
그 당시 대학 입학제도는 9월엔가 체력장을 치르고 다음에 11월엔가 예비고사, 그다음에 본인이 가고 싶은 대학에 원서를 넣고 가는 그런 방식이었다
후에 엄마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는 걸 들었다
아유 쟤야 어디든 넣으면 붙지
지 위로 ㅇㅇ이 (오빠) 있지, 밑으로 ㅇㅇ이 (남동생) 있는데 셋은 무리야
상대방이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주지, 지가 알아서 다닌다는데..
엄마 왈, 쟤가 사주에 권 (權)이 세 개가 들었어
위아래 오빠, 남동생 이겨 먹을 사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