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
오락가락, 횡설수설, 중언부언하는 술 취한 친구의 주사(酒邪)처럼 질척거리며 내리는 비.
이맘때쯤 되면,
눅눅한 공기가 온몸을 휘감으며 스토커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끈적거리기 시작한다.
새로 깐 이부자리의 뽀송함도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섬유 올 사이사이에 습한 공기 입자와 몸에서 삐져나온 땀의 입자가 뒤섞여 꿉꿉함을 더해 가는 계절이다.
잔뜩 찌푸린 하늘을 습관처럼 바라본다.
들판의 늙은 농부야 논물관리 하느라 애타는 심경으로 하늘을 본다지만,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흙 한번 밟지 않는 도회인이 그런 심경으로 하늘을 볼 리 없고, 다만 갑자기 닥칠 불편함을 조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의식의 고착화 때문에 생긴, 생채기 난 마음의 방어적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여유로움을 잃어가는 경직된 마음의 치유를 위해, 기억을 되돌려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으며 골목을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본다
일찍 철이 들어버린 탓에,
망가져 찌그러진 우산조차 쉽게 버리지 못했던 궁핍한 살림살이를 눈치채고는, 노란 우의를 차려입은 친구를 부러워하면서도 사달라고 투정 한번 부리지 않았던 아이는 커서 슬기롭게 장마철을 보내고 있을까?
여러모로,
후덥지근한 날씨에 늘어가는 뱃살을 추스르며 힘겨운 복식호흡을 이어가는 가난한 아버지들의 여름 나기에서
장마철 쏟아지는 장대비는
흠뻑 젖어 버려 우산이 별 소용없음을 깨닫는 순간, 요란한 빗소리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묵은 마음의 응어리를 씻어 낼 수 있는 치유의 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