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지, 지금은 알지,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겪었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대개 연인 관계나 가족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것이 학교 안에서, 그것도 교사와 교사 사이에서 벌어졌다고 하면 쉽게 믿지 못한다.
나는 한때 그녀만의 온실 속 화초였다. 충분한 관심과 보호를 받으며 자라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돌아보니, 나는 영양분을 흡수한 것이 아니라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겪었고, 탈모라는 신체적 신호까지 얻었다. 학교를 떠나고 몇 개월이 지나서야, 나는 비로소 그 관계가 비정상적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었다. 지금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시 그 이름을 마주친다면 손이 떨리고, 식은땀이 나며,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질 것만 같다.
그녀는 부장이었다.
내가 우연한 계기로 학교에 들어오게 되었을 때, 그 기회를 만들어 준 인물과 비교적 가까운 관계에 있던 것으로 보였다. 입사 전부터 “부장님께 인사 잘 드려라”라는 말을 여러 차례 들었고, 나는 그 말 그대로 예의를 다하며 성실하게 관계를 맺으려 했다. 처음 만난 그녀는 이상적인 선배 교사였다. 나를 따로 불러 학교 안에서 조심해야 할 인물들, 학과 행사 운영 방식, 사립학교의 암묵적인 규칙들을 상세히 알려 주었다. 학교 생활이 처음이던 나에게 그것은 큰 도움이었고, 나는 그녀를 좋은 선배이자 보호자처럼 여기며 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단둘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거의 음식을 먹지 않은 채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웃었을 뿐인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결혼해서 딸을 낳았다면, 아마 선생님처럼 예쁜 딸을 낳았을 거야. 선생님 정말 눈부셔.”
그녀는 40대의 미혼이었고, 종종 사연이 있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나는 그것이 부담스러웠다. 부담스러움이 어느 정도였냐면, 그녀가 직접 “나는 여자 안 좋아해. 남자를 좋아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 말은 안심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관계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었다. 교무실의 누구나 그녀가 나를 각별히 아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대놓고 챙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관심의 대가로, 나는 다른 교사들과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2년 차가 되던 해, 나와 비슷한 나이의 기간제 교사들이 새로 들어왔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먼저 다가갔고, 몇 차례 함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무렵, 그녀가 나를 다시 불렀다.
“친해지고 싶으면 친해져도 돼. 다만 물들지만 마.”
그녀는 그것이 내 선택이라며, 자신은 왈가왈부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을 깊이 해석하지 않은 채 흘려들었다. 얼마 후, 또다시 호출을 받았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그녀는 내가 변했다며, ’그것들’과 어울리더니 물들었다고 말했다. 두 시간이 넘도록 이어진 질책 속에서, 그녀는 내 앞에서 그 교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래서 기간제 것들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예요. 선생님, 정신 차리고 일하세요.”
전화를 끊자마자, 그녀는 태도를 바꿔 이렇게 말했다.
“방금 ’기간제 것들’이라고 한 말에서, 너는 제외야. 나는 너를 정교사처럼 생각해.”
나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정교사와 기간제 교사라는 구분 자체가 낯설었고, 교사가 교사를 꾸짖는 이 장면은 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립학교란 원래 이런 곳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밀려왔다.
그때는 몰랐다.
이것이 관계의 균열이 아니라, 통제의 시작이라는 것을.
이것은 나르시시스트 교사가 행한
첫 번째 가스라이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