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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oon Apr 22. 2022

지나간 시간과 선택에 대하여

그리고 나누고 싶은 영화들에 대하여


01.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

02. 에릭 로메르 <몽소 빵집><수잔느의 경력><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03. 누벨바그 <몽상가들><이마 베프>

04. 장 뤽 고다르 <여자는 여자다><국외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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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알랭 레네

<히로시마 내 사랑>

<히로시마 내 사랑>, 알랭 레네 (1959)


히로시마에서 모든 것을 보았다는 그녀는 그곳에서 과거의 느베르를 마주했다는 뜻일 것이다.


알랭 레네 감독은 히로시마와 느베르의 기억과 공간을 병치시키고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을 다녀가며 지나간 것이 아닌 모두 살아있는 것으로 남기려 한다.



단순히 기억을 과거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닌 기억의 한 부분을 무작위로 가져와 보여주는 비연속적인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히로시마에 남은 병패와 전쟁이 프랑스 느베르 시골 여자에게 남긴 아픔을 자연스럽게 두  도시와 거리들의 이미지를 함께 나열하여 보여주어 마술처럼 하나로 어루만진다. 두 공간이 하나가 되고 두 상처가 어우러지려한다. 히로시마에서 느베르의 과거를 생각하며 현재를 도피하는 여자를 남자는 묵묵히 따라간다.


그럼에도 전쟁을 겪지 않은 나는, 전쟁 이후의 남겨진 마음들을 보여주는 영화로 간접적인 체험을 하고 있는 관객들은 영화 속 대사처럼 아무것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의 상흔들과 기억들은 그저 이렇게 바라봄으로써 묵묵히 위로될 수 밖에 없나보다.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2012)


프랑스 좌안파의 대표 감독 중 하나인 알랭 레네 감독작의 첫 감상이었고 시간과 공간과 사람을 엮어내는 구성은 내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앞으로도 그의 작품에 손이 갈 것 같다. 미카엘 하네케 <아무르>의 엠마누엘 리바 배우의 젊은 시절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출연작 장 피에르 멜빌 감독 <레옹 모랭 신부>도 보려 한다.





02.

에릭 로메르

<몽소 빵집>

<수잔느의 경력>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몽소 빵집>, 에릭 로메르 (1963)


<몽소 빵집>에서 한 남자는 거리에서 자주 마주치는 여자에 흥미를 갖고 궁금해한다. 기회를 잡아 만나자는 약속을 하였지만 이후 거리에서 마주치지 못하게 되고 남자는 빵집에서 시간을 때우다 점원과 시간을 보낸다. 며칠이 지속되고 점원과 약속을 한 남성이 빵집을 나온 순간 우연히도 거리의 여자를 만난다. 남자는 순간 선택을 하고 거리의 여자와 사라진다.


<수잔느의 경력>, 에릭 로메르 (1963)


<수잔느의 경력>에서는 남자의 친구는 자신에게 호감을 표하는 자유로운 여자를 귀찮아하며 주인공인 남자에게 떠넘기듯 한다. 그리고 계속하여 궁지로 내몬다. 선입견을 가지고 동정의 시선으로 여자를 바라보던 남자는 훗날 잘 지내는 그녀를 보고는 열패감에 사로잡힌다. 오만함에서 열등감으로 이어지는 남자의 배려는 결국 끝없는 자기합리화로 이어진다.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에릭 로메르 (1969)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은 앞서 설명한 첫 번째, 두 번째 도덕 이야기의 소스를 가져와 만든 세 번째 도덕 이야기이다.

<수집가><클레오의 무릎><오후의 사랑>까지 에릭 로메르 감독의 여섯 개의 도덕 연작은 한 선택에 있어서의 남자의 도덕적 관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교회에서 한 여자에게 반한 남자가 친구의 초대를 받아 찾아간 집에서 만난 다른 여자와의 관계 속 선택을 다룬 이야기이다.



한 가지 선택을 하기까지 수 많은 말이 오가고 남자는 자신의 도덕적 관념을 지키려 노력한다. 그는 순간의 감정에 이끌리지 않고 자신의 이상형에 가깝고 가톨릭적 신념이 비슷한 여성을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이 선택한 여성(도덕성)이 뜻 밖의 진실을 고백하자 남자는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거짓말을 뱉어버리게 된다. 마지막 장면 해변에서 또 다른 진실을 알게 되는 남자는 자신의 가정을 위해 다시 자신의 도덕성을 넣어두게 된다.





사람은 그렇게 개인의 도덕적 관념에 따른 순간의 선택들로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마주하며 본인을 끝없이 분석하고 이해해 나간다. 때로는 상대방을 기만하고 자신을 배반하는 언어와 행동을 선택하여 본인을 합리화하며 고통받기에 결국 내면의 양심과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타협하며 나아가게 된다.


<아무르>, 미카엘 하네케 (2012)


에릭 로메르 감독의 도덕 연작 중 가장 흥미로운 영화였고 지금껏 본 그의 영화 중에서도 내게 가장 뜻 깊게 다가온 영화였다. <히로시마 내 사랑>의 엠마누엘 리바와 함께한 <아무르>의 장 루이 트랭티냥 배우의 젊은 시절 대표작 중 하나 아닐까. 그는 <남과 여><순응자> 등으로 유명한 누벨바그 대표 배우 중 하나이다.





03.

누벨바그

<몽상가들>

<이마 베프>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1960)


그럼 대체 누벨바그는 어떤 것일까. 이는 1950년대 말 프랑스 영화계에서 일어난 ‘새로운 물결’이라는 뜻의 프랑스 말이다.

프랑스 영화 평론지 [까이에 뒤 씨네마] 출신들을 필두로 한 영화 감독들은 이전 기성 세대에서 탈피하고자 자유, 해방, 비정치적, 틀을 벗어나는 것, 엉성함 등의 스타일로 내러티브 구조의 파괴를 보여주었고 소위 작가주의 스타일의 연출들을 선보인다. 1950년대 말의 <네 멋대로 해라><400번의 구타><미남 세르쥬><사촌들><히로시마 내 사랑><사형대의 엘리베이터> 등이 대표적이다.​


고다르 감독의 <네 멋대로 해라>의 점프컷, <400번의 구타>의 기성세대와의 단절, <히로시마 내 사랑>의 비연속적 시간 구성 등의 표현은 그들의 반항이자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었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아녜스 바르다 (1962)


누벨바그 감독과 그 영향을 받은 감독 하면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루이 말, 아녜스 바르다, 자크 드미,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등과 잉마르 베리만, 루이스 부뉴엘 감독이 생각난다. [까이에 뒤 시네마] 출신과 기록 영화 출신의 좌안파로 구분되는 이 시기의 감독들은 60년대 중반까지 여러 작품들을 만들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게 된다.


시위 현장에서 성명서를 읽는 배우 장 피에르 레오


알제리 전쟁, 드골주의, 마오이즘, 프라하의 봄, 문화대혁명, 베트남 전쟁 등의 영향으로 1960년대 중후반 격동하는 세계적 상황과 프랑스의 국내 상황을 만난 프랑스와 누벨바그 역시 68운동으로 이어진다. 영화 클럽이자 영화 기록원인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의 대표 앙리 랑글루아의 해임에 대한 사안에 대한 시위가 그 시작이었다. 이때 <400번의 구타><남성, 여성><중국 여인><아메리카의 밤> 등으로 고다르, 트뤼포의 사랑을 받은 장 피에르 레오 배우가 성명서를 읽은 것이 유명하다. 시네마테크의 자유와 억압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된 시위는 대학생 시위, 반체제 저항 운동, 노동자 총파업의 68혁명으로 이어진다.


<몽상가들>에서 시위 현장을 재현하는 장 피에르 레오


영화 <몽상가들>은 프랑스 68혁명 속 젊은이들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는 자국의 역사 이야기인 <순응자>에 프랑스 배우 장 루이 트랭티냥 배우를 기용하였고 21세기로 넘어와 프랑스 시네마테크와 누벨바그에 대한 헌사인 <몽상가들>을 만들었다. 누벨바그 영화들과 이전 영화들의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삽입되며 프랑스 영화와 시네마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특히나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무쉐뜨>의 삽입 장면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걸 넣어버리다니 하는 느낌으로.. 그러나 아쉽게도 후반으로 갈수록 그 의미는 단순한 기능으로만 남게 되어 옅어져 아쉽다.



<몽상가들>,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2003)


시네마에 대한 관심과 찬사, 고다르 <국외자들>의 세 사람처럼 루브르 박물관을 뛰어다니는 모습, 당시 상황에 대한 정치적 떠듬, 세 사람의 성적 호기심이 뒤섞인 이 영화는 내가 너무나 흥미롭게 집중하여 즐길 수 있는 것이었지만 이전에 봐왔던 베르톨루치 감독만의 특징은 남아있지 않아 아쉬웠다. <순응자><거미의 계략>과 같은 작품에서의 깊고 묵직한 쇼트들은 어디로 갔을까…

세상을 잘 알 것처럼 떠들던 세 사람은 집으로 도피하고 다시 거리로 도피한다. 68혁명 시위에 몸 담는 것이 아닌 부적응이다. 결국 이에 질린 매튜만이 무리를 빠져 나온다.



<이마 베프>, 올리비에 아사야스 (1996)


시간이 지나 프랑스 감독 올리비에 아사야스(<여름의 조각들><퍼스널 쇼퍼> 감독)가 만든 <이마 베프>에서 장 피에르 레오 배우는 한 철이 지난 감독 역을 맡았다. 그는 누벨바그 시대의 감독이었을 것이며 그의 스텝들은 68혁명을 겪어온 사람들이다. 늙은 감독은 누벨바그 시대를 넘어 지나간 프랑스 시네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고 과거의 영광을 잡으려하듯 무성 영화 <흡혈귀들>(1915)을 리메이크 하려 한다. 이에 엉뚱하게도 8-90년대 당시 세계 영화 시장에 격동을 일으킨 홍콩 영화의 액션 스타 메이(장만옥)를 프랑스 무성 영화에 캐스팅 한다.

영화 속에서 프랑스 인터뷰어는 홍콩 영화가 최고고 프랑스 예술 영화는 쓰레기라고 말한다. 예술 영화는 보는 사람들만 보는 쓰레기일뿐이라고. 홍콩 영화 액션 영화 장 클로드 반담과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야 말로 예술이라고 말한다. 반대로 홍콩 배우 메이가 프랑스 영화를 두둔한다



누벨바그 시대가 저물고 시간이 흘러 변한 시대에 프랑스 예술가들의 상업 영화에 대한 부러움과 사라져가는 예술 영화에 대한 개개인의 시대적 관념들이 뒤섞여 드러나는 이 영화에서 아사야스 감독은 그럼에도 마법 같은 순간들이 존재하여 시네마가 이어진다고 말한다. 영화 마지막, 손톱 자국들과 낙서들로 뒤덮어져 표현되는 무너져 가는 한 사람의 가편집본이 괴이하고 섬뜩하다가도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지는 것과 같이 말이다.

프랑스 무성 영화, 누벨바그 대표 배우 장 피에르 레오, 홍콩 대표 배우 장만옥이라니.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와 시대의 만남일까. 기대를 보답하듯 장만옥의 자연스러운 얼굴과 몸짓을 아름답게 담아내고 당시 프랑스 영화 제작 환경의 실태와 문제점 까지 보여주는 작품이다. 조이 역으로 나온 나탈리 리차드 배우가 궁금해졌다.






04.

장 뤽 고다르

<여자는 여자다>

<국외자들>

<여자는 여자다>, 장 뤽 고다르 (1961)


<네 멋대로 해라>(1960)로 누벨바그 시대를 확고히 하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준 고다르는 발랄한 영화로 돌아온다. 불규칙적으로 튀어나오는 노래와 싱그러운 뮤지컬 같은 밝은 색상, 동선, 몽타주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여자다>는 그의 영화 중 가장 가볍게 보일 수도 있지만 실험적인 연출들로 큰 인상을 남겼다.



인물의 얼굴 앞에 위치하던 카메라가 180도 회전하며 화면 위에 텍스트화 되어 나레이션이 나오는 연출이나 고다르의 인장 같은 점프 컷, 툭툭 끊기며 나오는 엉뚱한 음악들, 형식을 벗어난 장난스러운 배우들의 몽타주, 주변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고 나오는 대사들 ..​


누벨바그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고다르의 뮤즈 안나 카리나, 대표 배우 장 폴 벨몽도, 장 클로드 브리알리 그리고 잔느 모르까지 나온다. 고다르의 초기작, 실험적 연출, 엄청난 배우진까지 누벨바그를 좋아한다면 꼭 보고 가야하는 영화 아닐까.

영화 속에서 트뤼포 감독의 <피아니스트를 쏴라><쥴 앤 짐>, <베라 크루즈> 같은 동시대의 영화들 언급도 소소히 찾아볼 수 있다.


<국외자들>, 장 뤽 고다르 (1964)

<국외자들>은 먼저 유명한 장면들부터 설명해야겠다. 앞서 이야기했던 <몽상가들> 주인공들이 따라한 장면인 루브르 박물관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뛰며 시간을 재는 것, 세 사람이 춤추는 장면, 1분 간 침묵을 하는 장면이 그것이다. 카페에서 침묵하는 장면에서는 순간 주변 사운드를 배제하여 세 사람의 이미지만을 남겨 놓는 연출을 선보인다.



영화 초반 클로드 바르소가 수업에 들어와 안나 카리나를 쳐다보며 서로 말 없이 미묘한 감정을 교류하는 시퀀스, 후반부 두 남자에게 감정적으로 무력한 그녀를 위시하여 무방비한 폭력과도 같이 집으로 침입하는 장면, 그 위로 덮어지는 고다르 본인의 나레이션 .. 세 사람의 서로 다른 마음들, 안나 카리나 배우의 매력, 두 남자의 코믹하면서도 뒤틀린 개그들, 불편한 상황에 동조하게 되는 여자의 심정, 달리기 춤 자전거 등으로 느껴지는 미성숙해보이는 청춘적 매력들 ..



부잣집에 살고 있는 안나 카리나를 이용하여 대담하게도 그 집에서 강도짓을 벌이고자 하는 두 남자는 그녀에게 접근하고 마음을 흔들어 결국 집에 침입해낸다. 세 사람의 감정 상태나 사고가 혼란스러워 보여 흥미롭게 느껴지는 영화이다. 발랄한 <여자는 여자다>와 반대에 놓인 이 영화는 또 다른 매력을 보여주며 그 불편함에서 오는 마력을 뿜어낸다. 순간 끝나버리는 영화의 엔딩에서 고다르의 나레이션이 주는 쿨한 느낌을 잊기 어려울 것 같다. ​


오프닝 씬의 배우들의 얼굴 위로 하나씩 등장하는 타이틀 텍스트나 도로 장면부터 이어지는 두 남자의 자동차 씬도 인상적이다. 개인적으로 <비브르 사 비><미치광이 피에로>보다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영화를 만나고 고다르가 더욱 좋아졌다니 .. 이전에 생각했던 다소 고루한 그의 이미지는 잊혀졌다. 앞으로도 열심히 챙겨볼 것이다.



마침 올해 2월 개최됐던 세자르 영화제 포스터의 주인공이 고다르 감독작 <미치광이 피에로>의 안나 카리나와 장 폴 벨몽도였다. 작년 벨몽도의 타계를 기리기 위한 선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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