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야기
달리려고 그곳에 간 것은 아니었다.
작년 3월, 보자마자 탄성이 나왔던 치앙마이 대학의 앙깨우 호수는 미세먼지 탓으로 아름다움을 모두 발산하지 못했다. 그때의 아쉬움이 남아 다시 찾아간 것이었다. 늦은 오후, 맑은 하늘 아래 보이는 호수의 자태는 역시 대단했다. 희미했었던 산의 풍광은 사라진 미세먼지 덕분에 선명하고 늠름했으며 호수에 비친 산 그림자는 아늑했다. 곧 호수 위 드넓은 하늘은 주황색 노을로 물들었고 호숫가 언덕 위는 흘러가는 아름다움을 잡으려는 사람들의 몸짓으로 넘쳐났다. 그 순간 머릿속에 섬광이 지나갔다.
아, 여기에서 아침에 달리면 되겠구나!!
아침 6시 어둑어둑한 숙소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앙깨우 호수에 도착했다.
이제 막 해가 뜨고 있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호수가를 달리고 있었다. 역시 이곳은 치앙마이 러너들의 달리기 성지였다. 달리기라고는 학교에서 체육시간에 달린 것이 고작인 내가 분위기에 취해서 달리기 인생을 시작하려는 순간이었다. 첫 도전은 500m 정도에서 숨을 헐떡이며 끝났다. 전력으로 달린 것도 아니었지만 몸이 무겁고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깅화를 갖추지 못했다는 적절한 변명도 곁들이면서 첫날은 시작에 의미를 두었다. 이날부터 하루 일과는 호수에서 시작되었다.
이른 아침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탁 트인 호숫가를 달리면 나도 모르게 괜히 우쭐해진다.
숨 가쁨의 고통을 의지로 이겨내고 있는 내가 한없이 자랑스럽다. 첫날 500m에서 달리는 거리를 조금씩 늘리면서 마침내 목표였던 3km가 되었다. 어떤 날은 발목이 시큰거리고, 어떤 날은 무릎이 아파서 걷기도 힘들었다, 그럴 때는 하루, 이틀 쉬어가며 몸을 살펴주려고 노력했다. 3km는 달리기를 꾸준히 하는 러너들에게는 몸풀기 거리이지만 나에게는 꿈의 기록이었다.
달리기의 가장 큰 기쁨은 달리기를 마친 직후이다.
몸 전체로 퍼져나가는 짜릿한 혈액의 흐름이 느껴지는 순간 몸전체가 더워지며 갑자기 온몸에서 땀이 솟아난다. 미션을 완수했다는 만족감과 함께 발끝손끝까지 전해지는 뜨거움을 즐기며 천천히 호수를 걷는다. 이제는 여유를 가지고 아침공기를 흠뻑 마신다. 스쳐 지나는 러너들의 거친 숨소리와 탁탁 땅바닥을 치는 발바닥 소리를 마음으로 응원한다. 30분의 달리기와 30분의 걷기를 마치면 호수가 바라보이는 야외 카페에 앉을 차례이다. 이 순간이 오늘 아침의 두 번째 행복이다. 과일과 그래놀라가 듬뿍 올려진 요거트와 라떼로 아침 식사를 한다. 눈앞으로는 러너들이 여전히 각각의 모습으로 달린다.
천천히 또는 전력을 다해 각자의 아침을 연다.
치앙마이 한달살이가 러닝의 경험을 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앙깨우호수가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호수 위 드넓은 하늘과 울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호숫가 언덕 그리고 길 위를 달리는 싱그러운 기운들이 몸치인 나도 달리기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쉼과 느긋한 일상을 기대한 여행에서 달리기는 덤으로 얻은 행복이었으나 차차 하루의 중심이 되어갔다. 달리기를 한 날은 뭘 해도 하루가 꽉 찬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