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벌한 태양의 횡포를 막아주려는 듯 신평 본향당의 퐁낭이 하늘을 향해 가지들을 쭉쭉 펼쳐내고 있었다. 본향당을 지나자, 곶자왈 입구 파란 간세문이 우리를 맞는다. 곶자왈의 안쪽은 나지막한 관목들이 펼쳐져 있고, 새들도 재잘대니 뒷동산에 소풍을 나온 것 같았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융단 같은 잔디밭 위를 뻗어가던 올레 코스가 용암이 흘러간 자국이 선명한 암반 위를 지나더니 울퉁불퉁한 현무암 돌짝길을 타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인생은 겉으로 보면 꽃길이지만 살아보면 가시밭길이라는 걸 알려주려는 것일까!
곶자왈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나무줄기들이 굵어지기 시작하고, 가지들이 하늘을 가리면서 초록 잎들이 촘촘하게 햇빛을 막아버렸다. 깊은 밤 밀림 속을 헤매이는 것 같았다. 겹겹이 자란 잎을 뚫고 내려오는 햇살은 도깨비불같이 눈을 어지럽힌다. 괜히 심장이 빨라지고 머리털이 곤두섰다. 나 같은 저시력인이 산행과 같은 야외활동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 나뭇가지다. 특히 얼굴 높이로 뻗은 나뭇가지가 눈을 찌를 경우 매우 위험하다. 이런 위험에서 눈을 보호하기 위해 보안경을 착용하는데, 눈부심을 막기 위해 착용한 검은색 고글이 문제였다. 변색 기능이 없는 고글을 벗자니 눈을 찔릴 것 같아 불안했고, 쓰자니 안 보여서 미칠 것만 같았다.
신평 곶자왈의 바닥은 구렁이만 한 굵기의 나무뿌리들이 기어다니고, 흔들거리는 현무암 돌짝길은 이끼가 껴 미끄러웠다. 간신히 등산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안전할 것 같은 흙 위에 발을 내디디면 물이 고여 질척거렸다. 어깨부터 시작하여 점차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진창길을 피해 길 바깥쪽으로 붙을라치면 가시덤불이 바지 단과 소매를 잡아채거나 노출된 피부를 할퀴고 갔다. 깊은 수렁에 빠진 것 같았다. 올레가 처음이라 ‘제주올레 한달 걷기’ 프로그램을 신청했는데 함께한 참여자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려다 보니 마음은 점점 더 조급해졌다. 몇 번인가 자원봉사자 김 선생님이 전진하면서 제쳐진 얇은 줄기가 회초리처럼 얼굴을 때리더니, 그녀가 무의식적으로 피한 굵은 나뭇가지에 머리를 박고 말았다. 눈에서 불이 번쩍했다.
인생은 엉겁결에 머리통을 얻어맞는 것 같은 일이 생긴다. 돌이 지난 아이와 아내를 태우고 운전하던 그날 밤도 그랬다. 한쪽 시력만 갖고 운전을 한 지 6개월쯤 되었을 것이다. 약간 흐릿하기는 했지만, 주변 사물이나 신호등이 어느 정도 보였기에 운전하고 다녔다. 될 수 있다면 장거리 운전은 피하고 어린아이의 병원 진료, 쇼핑 등과 같은 단거리 운전만 했다. 지인들과 저녁 식사 약속이 있던 그날은 가족을 데리고 내가 운전을 하며, 이동 중이었다. 그런데 운전을 한 지 얼마 안 되고부터 운전석 쪽 유리창에 하얀 성애 같은 것이 서리기 시작했다. 휴지로 닦아도 보고, 유리창도 열고 에어컨이나 히터를 틀기도 했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순간 신호등도 뿌옇게 흐려져 구분되지 않았다. 너무 놀라 주변을 살펴봤는데 계기판도, 옆 차도, 앞 차도 안개 속에 갇혀 있는 것같이 흐릿하기만 했다. 차를 운전할 수가 없었다. 뒤에서 차들이 ‘빵빵’거리며 클랙슨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비상등을 켜고 한참을 그 자리에 있었다. 옆 차선을 봐 달라고 아내에게 부탁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당황해하는 아내의 얼굴마저 지워져 있었다. 어렵게 갓길에 차를 대고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다. 덜덜거리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다. 분명 의사는 한쪽 눈은 괜찮을 거라고 장담했는데, 두 눈이 다 안 보였다. 놀라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쿵쾅거리는 내 심장 소리에 묻혀 희미하기만 했다.
어느덧 정개왓 쉼터에 도착했다. 다른 참여자들은 벌써 이곳을 통과했지만 힘들어하는 내 모습이 딱해 보였는지 김 선생님이 잠시 쉬자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배낭을 팽개쳐 버리고, 고글마저 벗어버렸다. 땀에 젖은 옷은 소낙비를 맞은 것 같았고 바지 단은 진흙투성이였다. 주저앉고 싶었지만, 온통 돌짝길에 이끼 낀 현무암 바위투성이라 앉고 싶지 않았다. 마침, 쉼터를 뒤덮고 있는 큰 나무가 있었다. 기대어 쉴 수 있을까 싶어 손을 내밀어 만져 봤더니 여러 개의 줄기가 한 뿌리에서 솟아났는데, 줄기 하나의 굵기가 어린아이 몸뚱이만 했다. 스투키 선인장처럼 뻗어 올라간 십수 개의 줄기들이 하늘을 뒤덮고 아치 형태로 휘어져 반대편 정개왓을 집어삼키려는 듯 뻗어나가고 있었다. 시원한 물 한 잔을 건네며 김 선생님이 “이 참나무의 맹아력이 대단하죠!”라고 말했다.
애잔한 마음으로 까끌까끌한 나뭇결을 쓰다듬었다. 결마다 새겨진 거칠고 험한 나무의 이야기가 손끝에서 읽혔다. 어느 결에는 숯을 만들기 위해 베어진 몸뚱이의 아픔이 느껴졌고, 다른 결에서는 잘린 몸뚱이가 썩지 않기 위해 손톱만한 잎들을 잔가지에 매달아 피워 올린 고단함이 베어져 나왔다. 심지어 어느 결에서는 정개왓을 만들기 위해 불태워지고 뿌리째 뽑힌 다른 나무들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후드득' 하고 요란하게 새들이 날아올랐다. 정개왓을 둘러싸고 있던 나무들이 물을 마시려는 코끼리 무리처럼 햇빛을 빨아먹기 위해 긴 가지를 휘둘러댔다. 그때 알았다. 찢기고 부러진 생의 한가운데서 용기를 퍼 올릴 곳이 이곳이라는 걸….
아랑조울 올레 11코스 : 모슬봉에서 무릉 외갓집까지
1) 제주어로 정개왓은 정씨 성을 가진 사람의 밭이라는 뜻이고, 퐁랑이라는 말은 팽나무라는 뜻이다.
2) 맹아력이란 식물이 손상된 부위에서 새로운 생장점을 형성하여 회복하려는 힘이다. 주로 잘리거나 부러진 줄기, 가지 또는 뿌리에서 발생하며, 이를 통해 식물은 손상된 부분을 보완하고 생존력을 높이게 된다.
3) 올레 11코스 시작인 하모체육공원에서 정난주 마리아 성지까지는 9.2km, 신평사거리까지는 11.2km, 신평 곶자왈까지는 12.3km, 정개왓 광장은 14.1km이며, 종점인 무릉 외갓집까지는 17.3km 거리다. 코스의 전반적 난이도는 시각장애인 기준 ‘중’이나, ‘신평-무릉’ 간 곶자왈은 ‘상’이다(등산 경험이 있는 시각장애인 기준이며 보행 시 안내자가 동반할 경우임). 제주 곶자왈 중에서 가장 큰 곶자왈답게 신평 곧자왈은 관통하는 올레 코스 길이가 4km가 넘는다. 이곳에는 제주도의 초가지붕을 이는 주재료였던 ‘새(띠)’가 많은 밭이라는 뜻을 가진 ‘새왓 쉼터’가 있다. 또한, 형제가 들어와 숯을 굽고 살았다는 '성제숯굿터', 힘센 장사 오찬이가 살았다는 '오찬이궤', 맷돌을 만들기 위해 단단하고 적당한 구멍이 있는 돌을 채취했다는 '가래머들', 소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 나무나 돌로 만들었던 '쇠물통' 등의 흔적이 이야기와 함께 전해진다. 시각장애인들에게 아쉬운 건 각 장소에 안내판이 설치돼 있으나 점자 및 음성안내 기능이 없어 정안인의 설명에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또한 실제 현장도 곶자왈 안쪽에 자리 잡고 있어 정안인들은 멀리서나마 대략 윤곽이라도 확인할 수 있으나 시각장애인들은 불가능하다. 이뿐 아니라 ‘신평-무릉’ 간 곶자왈은 화장실이 전혀 없어 신평사거리 쪽 상가에서 미리 화장실을 사용해야 하는 불편함도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곶자왈을 걸을 때 등산모자, 보안경(저시력인은 변색 기능 추천), 폴딩형 흰지팡이(저시력인은 등산스틱 한 쌍 추천), 20L 내외 배낭(가슴 및 복부에 고정 스트랩 추천) 등이 필요하다. 낙상, 찔림 등에서 안전을 지켜줄 유용한 물품들이니 챙겨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