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감정 속에서

나는 성장한다

by 강철 의사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물론 평소라면 결코 하지 않았을, 생산적이지 못한 생각이다.

날씨가 쌀쌀해져서일까, 아니면 인간관계 속에서 받은 스트레스 때문일까.

나는 지금, 여기서 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밖에 있는 친구들은 매일같이 온전한 노력을 온전한 자신에게 쏟아붓고 있을 텐데,

나는 왜 이곳에서 1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그들의 시선과 기대, 오해와 편견 속에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세상에는 나와 잘 맞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종종 나와 잘 맞는 사람을 ‘착한 사람’,

잘 맞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 단순하게 구분 짓는다.


그렇기에 나는 안다.

나는 부대에서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하게 흔들리는 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선인은 분명 존재한다.

내가 스무 살이 되자마자 만난,

그 사람은 내 삶에서 만난 대표적인 선인이었다.

속이지 않고, 타인을 먼저 생각하며,

작은 생명과 감정 앞에서도 진실될 줄 아는 사람이었다.

본과 시험 준비로 누구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밖에 없는 시간 속에서도

남을 가르치고 도왔고,

손해 보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악인 또한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악인은 어쩌면 유전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환경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성장 과정에서의 결핍, 왜곡된 관계 맺기,

반복된 무시와 상처로부터 나온 굴곡.


그리고 어떤 사람은,

누군가에게는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주는 악인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다른 면모를 보이는

입체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후임에게 입에 담을 수 없는 부조리를 자행하고

우리 부대로 날아온 사람이 있다.

나는 그 대상을 대하면서 한 번도 불쾌하다는 감정을 품은 적 없었다.

나에게만큼은, 잘 배려하고 양보하고 맞춰주고, 좋은 사람이었다.


사람은 이처럼 단순히 ‘착하다’, 나쁘다’로 분류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모순적인 존재다.


결국 중요한 건

그들이 나에게 불편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내 마음을 흔들 이유는 없다는 사실이다.


이성적으로는 누구나 알고 있다.

내 마음의 평온은 타인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의 시선과 판단에 달려 있다는 것을.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다.

결국은 타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

상처받고 기뻐하고 흔들리는 존재다.

그 흔들림은 인간다움의 증거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

군대라는 특수한 공간은 이 인간다움이 첨예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공간은 좁고 시간은 길며,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관계들 속에서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저 갈등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지만 나는 믿는다.

이 모든 직접적인 감정과

간접적인 경험은 결국

내가 더 성숙해지고, 더 단단해지는 과정임을.

불편한 감정도, 불쑥 솟는 회의감도,

결국은 내 내면의 균형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것을.


나는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외부의 자극, 그리고 내부의 성찰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나’를 만들어가는 것.


이 갈등 또한, 나라는 존재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통증일 것이다.

어쩌면 성장은 아픔과 함께 오고,

그 고통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나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다.


물론 어떤 날은 지칠 수도 있다.

이해받지 못하는 감정,

혼자라는 느낌,

이토록 오랜 시간 갈등의 피로 속에서

자신이 얼마나 무너졌는지를 느낄 때도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죽을 때까지 세도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기에 결국은 세상에서 무조건 한 사람 이상만큼은

내 편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할

좋은 사람일 것이다.”


삶은 결국 내 것인 동시에,

혼자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결국 나 역시도 오늘도,

이 길을 스스로의 발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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