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인간을 비추는 거울인가, 감추는 틀인가
30세가 넘은 늦은 나이에 군대를 오게 되면, 불리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체력적으로는 물론, 대부분의 병사들과 10살 가까이 차이가 나기에, 매끄러운 소통에 있어서도 굴곡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이 늦은 입대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장점 중 하나는 다양한 인간군상을 별다른 노력 없이 매우 '날것'의 상태로 볼 수 있고 이를 성찰할 여유가 있다는 점이다.
군대는 수직적 계급 사회이자,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청년들이 1년 반 동안,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머무는 특수한 성격을 띤 공간이다. 특히 대부분이 20대 초반이라는 점에서, 아직 삶의 가치관이 완전히 정제되지 않은 인간을 가장 날것의 감정 상태로 마주하게 된다. 사회에서는 드러낼 수 없었던 본성과 결핍이 군대에서는 그대로 드러난다. 그리고 이러한 환경은 나로 하여금, 인간이란 결국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며, 그 관계 형성의 주요 도구인 '자신의 가치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실감하게 했다. 이 가치관이 결여되었거나 왜곡되어 있고, 본인이 이를 인지하지 못한다면 타인과의 관계에서 끊임없는 충돌과 오해가 반복된다.
실제로, 부대 내에서 이해할 수 없는 감정적 반응을 보이는 용사들을 보면 대부분 가치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거나, 비정상적인 방향으로 굳어져 있었다. 근시일 내에 있었던 한 가지 예를 들어볼까 한다.
A 용사는 머리가 객관적으로 보아도 길었기에, 간부의 지시를 받고 선임인 B 용사에게 이발을 받았다. 그전까지 A는 선임인 B에게 항상 먼저 말을 걸고, 과도할 정도로 비위를 맞추며, 아부 섞인 행동을 자주 보이곤 했다. 그러나 이발 직후, 그는 돌연 “죽고 싶다”, “부조리가 너무 심하다”는 내용의 ‘마음의 편지’를 작성하며 전 부대를 뒤흔들었다. 조사 결과, 어떤 부조리도 없었지만 A는 극단적인 감정 반응을 반복하며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던 이 반응을, 나는 그와 나눈 짧은 대화를 통해 분석하게 되었다.
A 용사는 이혼 가정에서 성장하며 지속적인 애정 결핍과 불안정 애착, 특히 불안-양가 애착을 형성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이 경우, 대부분 타인의 반응에 필요이상으로 민감하게 반응하며,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는 심리적 경향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A는 자신이 운전하는 ‘1호차’라는 호칭에 집착했고, “언제나 내 편이지?”, “저랑 가장 오래 보실 각별한 사이 아닙니까?”와 같은 말들을 자주 내뱉으며 선후임과의 ‘특별한 관계’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반응으로 자아를 확립하려는 심리적 패턴은, 타인의 인정이야말로 내 존재의 이유라는 잘못된 자기 개념을 형성하게 한다. 이는 인정욕구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이어지며, 그가 보인 아부적 태도는 단순한 타인과의 친분을 위해서가 아닌 ‘인정을 통한 존재 가치 확보’라는 심리적 동기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그가 B 용사에게 반복적으로 친근하게 접근한 것은 단순한 관계 유지를 위한 행동이 아니었다. 그에겐 그 관계 자체가 자기 존재를 보장해 주는 역할이었다. 그러나 B가 그의 머리를 직접 자른 사건은, A에게 상징적으로 '넌 아직 그럴 짬이 아니다'라는 부정적 메시지로 받아들여졌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그가 이상적으로 꾸며낸 관계의 붕괴를 뜻했고, 동시에 자존감의 손실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 결과, A는 감정적으로 폭발했다. “죽고 싶다”, “부조리가 심하다”는 표현은 단순한 분노의 배출이 아니라, 계급이 높은 제삼자를 통해 자신의 상처를 인정받고 보상받고자 하는 피해자화 전략이었다. 상급자에게 쓰는 '마음의 편지'는,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보상받기 위한 도구였다.
이 용사의 전반적인 행동 패턴은 인정에 대한 강한 의존과 감정의 일관성 부족에서 기인한다. 선임으로부터의 인정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극단적인 피해자 역할로 전환되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수반된 과장, 왜곡, 극단적인 감정 반응은 자기 정당화와 자존감 회복을 위한 방어기제로 해석할 수 있다. 이 모든 흐름은 결국, 자아의 내적 안정성이 약한 상태에서 외부 자극에 쉽게 요동치는 정서적 미숙함을 보여준다. 그의 거짓말, 과장, 왜곡된 해석은 자기 방어의 일환이었고, 무너진 자존감을 살리기 위한 최후의 불씨였다.
군대는 작은 사회다. 입대 전부터도 질리도록 들었던 말이다. 그 속에서는 인간이 가진 다양한 결핍, 욕망, 그리고 왜곡된 자아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사회에서는 포장되거나 억제될 수 있는 감정과 욕망이, 군대라는 시스템 안에서는 날것의 상태로 튀어나온다. 이를 보며 때로는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하고, 때로는 애처로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나는 이 군대라는 집단을 통해 인간을 복습하며 성찰하지만, 정작 이 배움이 사회에선 받아들여지지 않을 아이러니를 마주했다. 사회는 여전히 비정상을 외면하고, 관계는 여전히 얕다. 결국 우리는 ‘정상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자신을 다듬으며 포장하고, 감정을 숨기고, 사회가 요구하는 ‘가치관’을 주입받는다.
그 안에서 자아의 가능성은 점점 사라지고, 정서적 왜곡은 더 깊어질지도 모른다. 사회는 결여된 부분을 채우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성찰하는 것을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군대는 왜곡을 들여다보게 해 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걸 고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것이 아마, 대부분에게 있어 군대가 여전히 회의적이고 불완전한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