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팀장 36, 업무시간에 딴짓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 업무시간에 딴짓도 하세요.”
기존의 틀을 벗어나 새로운 생각과 방법의 도입을 통해,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고 성과와 가치를 창출하라는 지시를 받는 것은 영 달가운 일을 아닙니다.
이런 요구를 받는 팀장이나 실장 입장에서는 듣자마자,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가슴 또한 답답해짐을 느끼지요.
이런 요구는 수시로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특히 연말 사업계획을 수립할 때면 더 심해지니 지금이 그런 시즌이 아닐까 합니다.
예전 모셨던 본부장님 중 한 분이 유별나게 혁신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내야 한다는 압박을 많이 주셨습니다. 매주 간부 회의 때는 물론이고 보고를 들어갔을 때도, 꼭 혁신적인 아이템에 대해 언급을 하셨지요.
“예, 알겠습니다.”라고 대답은 넙죽하고 나오지만, 고구마 대여섯 개를 물도 없이 먹은 것처럼 꽉 막히고 답답한 느낌이네요.
가만히 있으면 고인 물처럼 썩기 때문에 계속 깨끗한 물을 넣어주어야 한다는 것인데 맞는 말입니다.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며, 스스로 살아 숨 쉬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저 역시 동일하게 느끼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직장인들은 일이 없던 많든 간에 늘 바쁩니다. 왠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러다 보니 빠쁘다는 핑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낼 시간이 없다는 변명을 하는 팀/실장이 있게 마련이지요.
하루는 본부장님이 팀/실장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씀을 하시더군요.
“하루에 두 시간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놀거나 쉬면서 생각을 하세요. 그러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으니 눈치를 보지도 말고 부담도 갖지 말고, 하루 두 시간은 사무실을 떠나 자유롭게 나가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대로 하세요.”
‘와우~ 대단한 분이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뭐 하고 놀지?’하는 걱정도 듭니다.
일에 시달릴 때는 쉬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다 가도 막상 쉬라고 하니 막막하네요.
그냥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무심히 멍하니 쳐다보고 있습니다.
점심 식사 후 식당을 나와 사무실로 가지 않고 그냥 주변 공원을 산책하였습니다.
바람이 부는 데로 마음이 내키는 데로 그냥 발길 닿는 데로 걸었지요.
하루, 이틀, 사흘…
그냥 멍하니 쉬기도 하고 무작정 걷기도 했지만,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안 떠오릅니다.
문득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혁신이라는 아이콘이 대세이기는 하나, 과연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라는 말처럼 결코 찾기 쉬운 것은 아닐 것이네요.
‘혁신의 아이콘’이라 불리는 스티브 잡스도 “창의력은 그저 사물을 연결하는 능력일 뿐입니다.”라고 한 것처럼, 서로 다른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연결하는 것이야 말로 혁신을 이끈 원동력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창하고 획기적인 새로운 것을 추구하기보단, 기존의 것을 어떻게 조합하고 변형하여 더 나은 방향으로 갈 것인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운 것은 아닐는지요.
쉬면서 비우면서 다시 채운 생각을 정리하여 보고를 드렸습니다.
결코 혁신은 아니었지만, 무척 만족스럽게 받아들이시더군요.
이 분이 원한 것은 진정한 혁신적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느끼고 깨달으라는 것이지요.
지금도 연말이 되면 문득 생각이 나는 분입니다.
항상 업무에 대한 부담은 주셨지만, 우리 업무에 관심을 갖고 격려해 주신 유일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면 더욱 뵙고 싶은 분입니다.
지금 주변에는 현실에 순응하고 “오늘도 무사히 넘기자.”라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 버티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여 씁쓸하네요.
오늘도 펭귄의 짧디 짧은 다리로 달리고 달리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