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대기를, 이게 맞나 싶긴 하지만, 정말 격식 없이 써보자.
벌써 2025년 5월의 초반이 끝나가는 시점이다. 나는 26살의 중간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지금은 도서관에서 교수님께 드릴 PPT를 만들다 '귀찮아...'라는 생각이 들어 잠깐 음악을 들으면서 쉬는 중이기도 하고. 아무튼, 나를 먼저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00년생 남성, 과학과 노잼의 도시 대전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연세대학교 재학 중인 학부생이다. 어린 시절부터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EBS 강의 중 '멀리서 움직이는 물체를 가만히 앉아 계산해 예측한다면 정말 멋질 것'이라는 강사님의 말에 빠져 물리학 덕질을 한 지가 벌써 12년째다. 중학생 시절에는 '이휘소 박사'를 알고 나서 나도 입자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항상 모든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다, 내가 살던 지역, 지금도 매우 싫어하는 곳이지만, 그곳의 학군이 매우 좋지 않아 일진 무리에게 찍혀 흔히 '너드'로 살아가던 나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참고로,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측정한 지능 지수는 시그마 15 기준으로 130이었다.
나는 과학고에 가고 싶었다. 지금은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하여 변리사 1차를 붙은, 내 초3 때부터의 정말 친한 친구보다도 더 먼저 과학고를 지망했고(그 친구도 뒤늦게 중학생 3학년 때 지원했었다.) 선생님들께도 별 참 특이한 아이로 기억되었던 것 같았다. 지금은... INFJ/INTJ지만, 당시는 진짜 극극극 ENTP 성향으로 굉장히 모든 일에 재미를 느끼고 도전해 살아갔었던 기억이 있다. 물론, 임용고시를 한 번에 붙고 그 일진 무리에 물들어버린 나의 중1 담임 선생님조차 나를 좀 좋지 않게 보신 나머지, 정말 그 이후로는 내성적이 되어 지금까지의 성격이 되었지만.
아무튼, 내가 제일 원했던 건 과학고등학교에 입학해 카이스트까지 가는 루트였다. 정말 지금까지도 의아한 건, 내가 초등학생 6학년 때부터 과학고 노래를 부를 때마다 어머니께서 그러라고 하셨지만, 막상 중학교 3학년이 되어 지원할 시기가 되었을 때 어머니께서 갑자기 내가 알지도 못하는 친척 이야기를 꺼내며 '적응하지 못해 일반고로 갔다', '거기는 다 영어로만 수업한다', 와 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보면 각각 '난 안 가게 노력하면 되지', '대학교도 영어로 수업하는데?'라는 간단한 반론을 꺼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어머니의 멍청한 결정은 내가 그동안 준비한 과학고등학교 준비물들을 박살내 버렸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에 쌓인 어린이 동화를 늦둥이 출산한 이모께서 주실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어머니는 '내 아들이 과학고 갈 때 보여줄 거다'라는 말을 해놓고 그제서야 갑자기 멍청하게 막아 세운 것이었다. 지금 다시 물어봐도 흙부모답게 '나도 내가 왜 그랬는지 몰라'로 넘어가지만. 어머니는 사실 시대에 매우 뒤떨어진, 그리고 도대체 어디서 알아낸 건지도 모를 괴상한 정보들을 갖고 오시는 분이었다. 예를 들면 친척이 수능에서 +1을 -1처럼 보이게 적어서 틀렸다...(아니 그걸 어떻게 알아낸 건가?)라든지, 생산직은 물 마시는 시간이 국가에서 정해져 있다, 라든지, '임을 위한 행진곡'이 아직도 금지곡이라고 알고 있다든지.
이야기가 엇나갔지만, 정말 아들이 3년 간 열심히 준비했고, 성공만 하면 집안을 일으켜 세울 하나의 거대한 커리어를 쌓을 기회가 그렇게 사라졌다. 난 정말 허망감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느꼈고, 사실 그 이후로 공부에 흥미를 제대로 다시 찾질 못했던 것 같았다. 다만, 내신은 전교권이라 다행히 당시 점차 부천, 안산 지역에서 인재들이 몰리는 자율형 공립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곳에 들어가는 게 오히려 절망적인 선택지였다는 걸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로 말이다. 참고로, 위에서 언급된 친구는 과학고에 2번 지원(경기과고, 경기북과고)했지만, 아쉽게도 되지 못해 나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난 그래도 수학과 물리학에 있어 재능은 있던 아이었다. 스스로 어려운 문제를 푸는 걸 좋아해 했고, 계속 언급되는 친구와도 수학 문제를 같이 공유하던 사이었다. 그러나, 사실 과학고를 가지 못했던 것에 무기력감이 사라지지 않았고, 어머니께 문제집을 사달라고 해도 형이 볼펜으로 낙서해 내가 제대로 풀지도 못할 문제집을 물려주는 등, '넌 1만 투자해도 100000을 얻으니 난 방관함 ㅂㅂ' 같은 태도를 보여준 것이었다. 사실 상, 교육에서 손을 떼어 두고 내가 개같이 구르면서 얻을 명성을 얻어 타 먹을 전형적인 흙부모의 모습을 보인 것이다.
중학교 때는 수재로 칭찬 받던 내가, 굇수들이 바글바글하고, 굇수가 아니더라도 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문제집, 학원, 그리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다니는 친구들에게 내가 밀리는 건 당연했다. 내가 처음으로 받은 성적표는 300등 중 200등 후반이라는 처참한 성적이었고, 이후 난 정말로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다. 같이 들어온 초3 동창(그냥 지금부터 서울대 동기 1이라고 하겠다.)은 잘 나가는 반면, 집안의 무관심, 구시대적인 발상(나중에 또 말하겠지만, 정말 나오면 안 될 말인 '교과서만 봤는데 수능 1등한 사람'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었다.), 그리고 친형의 게임 돈낭비로 인해 난 정말 꿔다놓은 보릿자루로 살아가는 중이었다.
고등학생 시절이 재밌긴 했어도, 이런 다크한 이야기로 넘어갈수록 꺼내기 싫은 건 매한가지인가 보다. 날 챙겨주던 친구들은 다들 부모님이 끊임 없이 지원해 주셨고, 교육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지금은 어느 유형이 제일 좋고, 그러면 어떤 게 필요하고... 이런 걸 하나 하나 혼자가 아니라 자식과 같이 알아보는, 매우 훌륭한 부모님 상들이었으니. 내 동창 중 서울대 수리통계학부를 수시로 들어간 친구의 부모님은 은행원과 약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난 그냥 폴리텍 출신 금형 기술자 아버지(사업을 여러 번 날리심)와 지방대 치기공학과(당시엔 전문대였었고, 면허도 없는 걸로 안다) 출신 어머니였으니. 더욱 기억나는 건 별 것도 아닌 '학부모 모임'을 '귀찮아' 안 가는 걸 '돈을 내야 한다'라는 핑계로 안 나간 어머니가 결국 나가서 배워온 거라곤 '중경외시'가 아니라 '중경에시'라는 것, 이것 뿐이었다. 당시 반에서 정말 공부를 잘 하던 친구의 어머니와는 말 하나도 못 섞고 반에서 성적 좋지 않은 친구의 부모님과 친해졌다는 걸 보면, 참 못난 사람 만나는 것에는 도가 튼 게 아닐까.
기억나는 장면은, 내가 고3이 되어 3월 모고를 처음 보았을 때, 그 서울대 수시 합격한 동창에게 누군가 수학 가형 30번 문제를 묻자 막힘 없이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난 순간 말을 잃었다. 분명 저 장면은 3년 전, 내가 아니었는가. 내가 언제 이렇게 무능해졌는가, 그리고 무식해졌는가. 솔직히 그때부터라도 정신을 차리고 공부하려 해도, 친형이 한 달에 200만원 씩 게임에 날리는 탓에 집안 분위기는 좋지도 않았고, 난 정말 책을 한 권도 사지 못했다(그걸 지금 어머니께 말하면 '그때 책 한 권 사줘야 했는데 미안'이라는, 조롱인지 사과인지 모를 말을 한다.). 사실, 알다시피 난 수시 준비도 되지 않았고(애초 부모라는 작자들이 내 학업에 관심이 1도 없었다.), 논술은 말 그대로 말도 안 되고, 정시 밖에 길이 없었음에도 정말 답이 없는 상태였다. 결과는 무참하게도 그 원인을 따라오는 게 순리인 현실을 탓할 수가 없었다. 참고로, 어머니가 하신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모든 지원을 다 해주겠다, 그러나 재수는 안 된다'라는 말이었다. 19학년도 수능이 굉장히 불수능이라서 '재수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말이 나돌았는데도, '지원' 하나 안 해준 어머니는 재수를 하지 못하게 했다. 사실,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던 건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렇게, 난 개판인 집안과 내 우울증 덕에 대입 입시를 망치고, 결국 나도 '전문대 마니아' 어머니의 말에 따라 당시에 흐려진 내 판단과 더불어 전문대 방사선과를 택하게 되었다. 그게 정말 멍청한 결과라는 것을 모르고 말이다. 사실, 내 서울대 동창은 총 3명인데, 아까 말한 3월 모고를 바로 풀어낸 엄친아 서울대 동창, 초3 때부터 친구로 지낸 서울대 동창1, 그리고 고등학생 당시, 같이 다니며 성격이 비슷해 어울린, 지금은 매우 훌륭한 내 스승인 서울대 동창2까지. 그 중 동창 1과 2는 재수를 하게 되었다. 그 둘은 오히려 내가 흔히 말하는 '지잡대'에 가게 됐다는 걸 안타깝게 여기며 공부에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미안하게도 그렇게 성공하진 못한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겪은 일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7등급인 친구와 내가 같은 학과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게 자괴감을 주었고, 강제 MT 참여와 장기자랑에 일정 수 이상 등록, 교수들의 수준 낮은 강의를 들을수록 내가 도대체 여길 왜 왔는지, 정말 눈물만 날 지경이었다. 그때, 내 서울대 동창1이 나에게 제안한 것은 '의학물리학'이었다. 순간 눈이 번뜩였다. 그런 게 있나, 라는 질문을 넘어 단순히 '찍새'로 남을 나를 구원해준 그 친구의 말 덕에 지금의 내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인데, 그 덕에 내가 선택한 길은 '편입'이었다.
난 말했듯이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기본 베이스가 충실했기에, 물리학 과목을 이수하며 교수님과 친분을 쌓을 수 있었고, 교수님께서도 나에게 연계편입을 추천해주셨다. 조금씩 잠들어 있던 머리를 깨우며, 역시 바보들의 왕국이었던 그 학과에서도 높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군 입대와 복학 이후에도 과 수석이라는 놀라운 위치에 올라, 교수님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을 수 있었다. 물론, 그 교수님들은 지금 그 학생이 이렇게 자신들을 까는지 모르시겠지만. 아무튼, 내가 편입을 결정했을 때 교수님들의 반응이 매우 안 좋았던 것(당연하다, 자신들이 내세울 '취업률' 메인 멤버가 도망간다고 하니까.)이 기억나지만 말이다.
결국, 2023년 11월 17일, 나는 편입 합격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도 매우 좋아해 하셨지만 어머니는 역시 그냥 그런 반응만 보였다(물론, 뒤에서는 '내 아들'이라는 말로 자신의 낮은 자존감을 채우고 있는 걸 보긴 했다.). 아쉽게도, 준비한 나머지 대학 편입은 역시 어려운 나머지 잘 되지 않았지만... 지금 잘 하고 있으니 뭐, 라는 생각만 들었다. 사실, 이 과정도 순탄치는 않았고, 중간에 코딩에 관심을 갖게 되어 지금 그 실력을 인정 받을 정도의 노력을 하면서 겪은 여러 일도 있지만, 그건 생략하겠다.
작년부터 다니고 있었지만, 작년은 크게 내가 이루어낸 것이 별로 없었다. 공모전을 몇 번 수상한 것 빼면, 아버지의 부고 소식, 계속된 대학원 컨택 보류, 재정 문제로 인해 내가 제대로 자리 잡을 곳도 없었을 뿐더러, 같이 편입한 동기 중 폐교된 학교에서, 멍청하게 교수들을 욕하며 다니는 한 사람이 편입생들에게 정보 아카이브를 제공한 나를 슬슬 빼더니 완전 '격리' 시킨 일처럼, 매우 힘든 경험이 많았지만,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날 수도 있었고, 특히 내가 코딩에 슬슬 재능을 보이게 된 것도 이때부터였다.
올해, 세미나 과목에서 군마대학의 일본인 교수님께서 중입자 치료를 강의하실 때, 기회라 생각한 나는 영어와 일본어를 먼저 공부해 질문을 했고, 학과의 의학물리 랩실을 운영하시는 교수님 눈에 띄게 되었다. 지금은 그런 인연 덕에, 나는 세브란스에서 매우 자상한 교수님 한 분과, 친누나처럼 날 아껴주는 선임 연구원 누나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물론 아직 멍청한 머리 탓에 그렇게 탁월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자랑으로, 최근 학교 코딩 대회에서 소프트웨어학과를 제치고 내가 1등을 했다. 100만원!) 기대를 해주시니, 그에 맞는 결과를 내도록 노력해야겠다.
별 잡소리도 많았고, 한 시간 가량 내 과거를 쓱쓱 적어 나가봤는데, 나도 참 어두운 과거를 갖고 살아왔지만, 지금이 빛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겠다. 화이팅, 미래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