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라는 차가운 그림자
성인이 되어 마주한 사회는 학교보다 더 차가웠다.
아무런 의지도 없고 우울증이 크게 왔던 20살이었다.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뭐라도 시켜야 할 생각이 들었는지 아버지는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따라고 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딴 애견미용사 자격증을 들고나간 세상에서 나는 원장에게 머리를 맞기도 하고,
입사 일주일 만에 입에 담지 못할 성희롱과
태움을 겪기도 했다.
서러워 우는 내게 '사회생활은 어떻게 하겠냐'며 비수를 꽂던 그곳을 뒤로하고 나는 대학에 입학했다.
그리고 그곳, A대학교에서는 호텔관광과를 졸업했다. 졸업을 하고 전공과를 살리고 취업하고 싶어서 G리조트에 조기취업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도 나를 힘들게 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룸메이트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뷔페 부서로 배정받아서 일을 했는데
마감할 때쯤에 식기도구들을 닦고 있었는데
불을 꺼버리고 자기들끼리 가버리는 것이었다.
나는 내가 아직 있다고 말했지만
그래도 불을 꺼버리는 인성에서
온갖 인류애가 사라졌다.
회식 때도 연락도 없길래 모인다는 장소로 나가니
"아 방울 씨 미안해요. 방울 씨를 깜빡했다"
라는 말도 나를 아프게 했다.
결국 나는 여기서 일을 해도 사람취급도 못 받겠구나
라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바로 지배인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A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현재의 남편과 당시 2년째 연애 중이었다.
퇴사하고 남편과 데이트를 하면서 이제 뭘 하지 고민을
하다가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야겠다고 생각했다.
애견미용사-호텔리어-간호조무사
자꾸 직업을 바꾸니 부모님도 처음에는 화를 내셨다.
이때의 나도 내가 한심하고 끈기도 없는 바보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이것저것 해보면서
나한테 맞는 직업을 찾아가는 과정이 있었으니까 지금의 나도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25살에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S내과에서 1년간의 직장생활을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사회생활을 배웠다.
이때 처음 술을 마셨는데 힘들고 재밌으니까
뇌에 안 좋은 영향이 있는 줄을 알면서 계속 마셔댔다.
술을 마셔도 발작 한번 하지 않길래 완전히
괜찮아진 줄 알고 더 마셔댔었다.
지금은 일하는 병원에서 중증도가 높은 환자분들을 보면서 느끼는 게 많았고,
내가 내 병에 대해서 더 공부하게 되며
완전히 술을 끊어버렸다.
26살 현재의 남편과 3년 반의 연애 끝에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나는 사랑을 위해 연고도 없는 전라남도로 내려왔다.
낯선 곳에서의 정착도 쉽지는 않았다.
첫 직장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출근 첫날 통보받았고,
원장은 병원 복도에서 드론을 날리며
노는 기막힌 광경을 보기도 했다.
두 번째로 취업한 병원은 사람들은 좋았지만
원장이 처치 나갔을 때 텀블러에 물 채워주기, 방에 페브리즈 뿌려주기, 마우스, 컴퓨터 위치 바꿔주기 등
개인 비서처럼 일을 하는 부분이 있어서 현타가 왔다.
나중에 이런 구조의 병원들이 꽤 있다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내과를 원했던 나는 I내과 내시경실 구인글이 보여서 바로 환승이직을 했다.
그런데 면접을 보니까 유방외과를 뽑고 있는다는 말을 하길래 왜 구인글 내용이랑 다른가요? 물어보니까
실장이 유방외과 직원을 구한다고 하면 사람이
안 뽑힌다고 말을 했다.
나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당장 돈도 벌어야 하니까
일을 하기로 하였다.
여기도 또 술을 좋아하는 기분파 원장.
같이 일하는 간호사 선생님은 기분파가 심했다.
그래도 상근직에 하루는 짧게 일하는 근무여서 다니기에 괜찮았다.
3개월 정도 다녔을 무렵 외로움이 나를 덮쳤다.
지독한 향수병에 다시 환각이 보이기 시작했지만,
조금 쉬다가 일을 해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직한 J병원에서 8년 차 선배의
텃세에 시달리기도 했다.
내가 일을 실수해서 태우는 게 아닌 무조건적인
차별에 기분이 많이 상했다.
그래서 이번엔 도망치는 대신 수간호사 선생님께
내 목소리를 냈다.
선배 조무사는 얘기를 들었는지 갑자기 친절하게 태도가 바뀌었지만,
일주일 지나니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리고 병동이 전체가 바뀌는 일어나면서 선배조무사가 퇴사를 하고 부당함은 사라졌다.
나는 비로소 평화로운 일상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