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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당연

by 온호

당연(當然)

: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 마땅히 그러함. 또는 그런 일.


"당연한 거 아니야?"

"원래 그렇게 하는데"

류의 말을 나는 싫어한다. 태어나 보니 이미 당연해 있는 것들의 이유를 알고 싶은데 저런 말을 이유 삼아 알려주면 속이 콱 막히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까지 싫어진다. 내가 똑똑한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유를 남에게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으려면 똑똑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 나는 똑똑한 사람들을 좋아하게 된 것이었다. 나를 답답하게, 의욕이 꺾이게 만들지 않으니까. 당연하다는 게 무언가의 이유가 되는 게 득이 안되고, 나는 납득이 안되면 의욕이 안 생기는 기질이 너무 강하다. 그래서 학습할 때도 납득을 시켜주면 꽤 좋은 성취도를 보이는 것 같다고 요즘 체감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당연하다는 말뜻을 찾아본 결과가 유의미하다. "일의 앞뒤 사정을 놓고 볼 때"라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말에는 이유를 찾는(앞뒤 사정을 놓고 보는) 것이 이미 들어있는 것이다. 이유를 물을 때 "당연"으로 답을 순환시켜버리는 사람들에게 앞으로 "당연"의 뜻을 말해주면 되겠다.


어쩐지 세상에는 당연하다고 설정돼 있는 것에 의문이나 불편감, 저항감을 고집있게 가지지 않는 사람들이 다수파인 것 같다. 중학생 땐 머리를 기르고 싶어도 "학생은 머리가 짧아야 하는 거야~"하면 고분고분 짤라 오는 애들이 많았다.

요 며칠 본 재밌게 본 현상은 강의실 책상이 불편하게 줄지어 있어도 놓인 대로 앉는 것과

샐러드 드레싱 통이 샐러드 채소보다 앞에 있으니까 샐러드를 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드레싱을 뿌리는 일이었다.


지난주에 교양 강의실에서 다섯 개가 횡으로 붙어 놓인 책상이 너무 불편해서 앉기 좋게 2,3으로 나눴더니 다음 수업 때는 전체가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물론 내가 앉았던 자리가 첫 줄이었던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을 것 같다.


샐러드 드레싱 같은 경우엔 당연히 채소 위에 드레싱을 뿌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드레싱을 접시에 먼저 담아놓고 그 위에 채소를 담지 않는다. 그래서 줄이 평소보다 훨씬 밀리고 있는데도 다들 굳이 레싱을 지나쳐 채소를 먼저 담고 드레싱을 뿌리기 위해 다시 앞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가 지켜본) 아무도 드레싱 통을 기거나 채소를 먼저 담지 않았다. 원했던 시간에 학생 식당에 도착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9시 수업까지 남은 시간도 그렇고 여러모로 예민했던 내가 드레싱 통을 채소 다음 순서로 옮겨놓았다.


전이라면 이런 행동들은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게 아마 '내가 억누른 나' 아닌가 싶다.

요즘은 은둔고립하게된 것도 내 이런 기질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돈이 많이 깨지면서도 혼자 할 수 있는 공부나 현실에 뒤처진 공부를 하는 대학생활의 '당연함'을 못 견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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