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
추우니 근처 지하철역까지만 타고 가라며 차를 태워주시는 동기생 분들이 계신다. 감사한 일이다. 등굣길에서 보는 새하얀 달이 아침의 울적한 기분에 조금의 생기를 더해주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도서관에서는 책 옮기는 작업이 한창이다. 수천개는 되는 초록색 플라스틱 농산물 상자가 켜켜이 쌓여 있었는데 작업하시는 분들이 거기다가 책을 한줄씩 담아 옮긴다. 이런 대규모 작업은 어떤 업체에서 하는 건가 궁금해서 여쭤봤다. 기업, 관공서, 도서관, 병원, 학교, 창고 등 기업 이전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였다. 새삼 가정집만 이사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이 대규모로 이동했다보니 잘 옮겨졌는지 확인이 필요했다. 근로장학생들이 투입됐다. 청구기호 순서대로 책장에 꽂혀 있는지 확인하는 정배열 작업이다. 그 동안 근무를 하면서 이 작업을 AI한테 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아직은 여의치 않다고 생각해서 눈과 손, 어쩔 때는 입까지 동원해서 직접 확인했다. 방학부터 새롭게 일하러 온 어떤 학생은 실제로 제미나이에게 시키고 다시 확인한다고 했다.
여러 학생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정배열 작업을 마쳤다. 눈으로 훑는 스캔 실력이 뛰어나거나, 운좋게 잘못 꽂힌 책이 거의 없는 책장이 걸리거나, 책등이 넓어서 청구기호 스티커가 한 번에 잘 보이거나 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 학생들의 담당 서가에서 잘못 꽂힌 책들을 꽤 많이 찾아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이런 확신을 가지는 것이 상당한 착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름대로의 근거를 아주 많이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그러한 근거에서 빗겨나있는 눈에 띄는 몇 학생들은 공통적으로 작업을 빨리 마치지 못했다는 점이 착각이기보다는 정확한 판단일 가능성에 더 무게를 실어주는 것 같다.
수만권의 책들 중 잘못 꽂힌 책이 지명될 확률이야 아주 낮겠지만 간혹 그런 일이 생기면 고생하는 직원이 있다는 사실을 국가근로장학은 일하지 않는 것이 기본 상태라고 생각하는 일부 학생들은 알지 못할 것이다. 일이 적거나 편한 곳일 수록 어쩌다 찾아 오는 일에 대해서 원래 자기의 일이 아닌 추가적인 업무라고 생각하는 듯한 태도에 대해서는 같은 내부에 있을 때도, 외부에 있을 때도 짜증을 느낀다.
한국 가정집에서 가장 흔하다는 독일바퀴벌레 때문에 연일 신경이 곤두서있고, 책을 읽다가도 세계가 보이는 부분 위로 부지불식간에 까맣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눈꺼풀 상영관 쪽에서 바퀴벌레의 형상이 번뜩번뜩 스쳐지나간다. 걱정과 두려움이 보여주는 환상이다. 그런 와중에 카프카의 「변신」을 읽는 시기가 겹쳤다. 미친듯이 집요한 벌레 묘사가 두배의 고통으로 다가왔다.
독자들이 「변신」에 나오는 벌레나 「가장의 근심」에 나오는 오드라덱을 규정하지 않기를 원했던 카프카의 바람과 반대로 사람들은 그것들을 어떻게든 정의하려고 한다. 표지나 삽화에 그려야되기 때문인지, 그냥 너무 궁금하기 때문인지. 하여간 내 경우에는 작가에게 그런 뜻이 있었다는 걸 알고 읽었기 때문에 어떤 벌레라고 정의내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읽으면서 자연스레 바퀴벌레 말고 다른 것은 연상할 수 없었다. 소름이 돋고 털이 서는 것 같은 혐오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필력의 위대함을 느꼈던 초반부였다.
그리고 "벌레로 변하고도 출근 걱정을 한다니까?"라고 몇 번 말씀하셨던 [고전읽기:프로이트] 강의의 교수님. 강의 중 적지 않은 부분에서 자본주의의 지배나 억압을 곁들여 설명하시곤 했다. 그런 말들에서 가지게 됐던 「변신」에 대한 막연한 인상도 있었다. 또,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 같은 말들도.
직접 읽어 본 변신에 대한 감상은 한마디로 '일기잖아?'였다. 가족들 사이에서 겪는 여러 정서적 고통들과 고뇌를 원동력 삼아 쓴 것 같은 글. 워낙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글을 쓴 위대한 작가이고, 세계를 묘사하면 그것들이 자연스레 함께 담기기 때문에 자본주의 대결이나 실존주의나 정신분석학이나 여러 학술적인 해석이 물론 가능하겠다. 그래도 굳이 무게중심을 그쪽에 두고 읽어야 하나? 나는 방 안에서 고통받는 아주 섬세하고 불안한 한 인간의 우화로밖에는 읽을 수 없었고 그것 말고는 인정하고 싶지 않다는 기분까지 들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성정의 차이나 그게 자신한테 어떻게 물려졌으며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사랑으로 하는 어머니와 어린 욕심으로 하는 동생의 차이, 가정부 할멈을 말리는 시늉만 하고 말리진 못한 어머니의 몸짓, 쇼파에서 잠든 가족의 실랑이, 하숙인에게 지나치게 예절을 갖추는 부모님의 모습, 지배인에게 보이는 부모님의 모습, 나한테 사과를 던지는 아버지, 사라지는 게 낫다고 말하는 동생과 동생보다 본인이 더 그렇게 생각할 거라는 말, 위축될 수밖에 없는 입장이지만 그럼에도 가끔 어쩔 수 없이 느끼는 가족들에 대한 분노, 그레고르가 사라지고 찾아 온 가정의 평화와 희망...
벌레가 됨으로써 방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 재정적으로 무능해졌고 가족에게조차 끔찍한 혐오감을 준다는 것, 본능적인 혐오감과 제도적 책임 혹은 사랑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이중적 심리 등 여러가지 것들이 책을 다시 펼쳐보지 않고도 떠오른다.
내 자신의 히키코모리 생활과 할머니 간병을 통해 겪었던 상황이나 느낌이 눈 앞에 그대로 그려지는 것 같았다. 아무리 천재라해도 이 모든 걸 상상만으로 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직접 눈으로 포착하고 마음으로 상처 받으며 쓰지 않은 것일 수는 없다고, 그 모든 순간들을 엄청난 노력과 재능으로 종이 위에 그대로 하나의 이야기로 담는데 성공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하고 피상적인 해석일 수 있지만 나는 그냥 「변신」을 일기, 조금 더 꾸며서 말하면 가족소설까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너무나 진실하고 적나라하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곳에서조차 거의 자연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표현력이 미천한 나 대신에 카프카 평전에 인용된 애도사 일부를 가지고 와본다. 나도 내 느낌을 이렇게 명료하게 표현할 수 있는 지식과 능력이 있었다면 평전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과 부끄러움, 존경심, 질투가 섞인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누군가가 내가 느낀 것과 똑같은 것을 이미 써둔 것, 그것도 아주 범접할 수 없이 훌륭하게 써둔 것을 발견하는 게 독서의 쾌감 중 하나 아니겠나 싶다.
단편들이 너무 어려워 AI나 여러 블로그들의 해석도 찾아보고 논문도 기웃거려봤는데 내 입맛이나 색안경과는 잘 맞지 않는 거시 담론 뿐 이었다. 마음에 드는 이야기 상대를 못 찾아서 뭔가 후련하지 못하고 아쉬움이 자꾸 남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도서관 책장의 833 부분을 서성거리다 무심코 카프카 평전을 꺼내 펼쳐봤는데 운명의 상대를 만난 듯했다. 너무 두꺼워서 전체를 읽지는 못했지만 부분 부분 궁금한 데만 찾아가며 아주 만족스러운 대화를 나눴다.
그 중에서도 밀레나가 애도사에서 카프카라는 사람을 표현한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예민한 신경을 가진 그는 마치 점쟁이처럼 단순히 얼굴 위에 나타난 순간적인 표정을 포착함으로써 한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을 헤아려 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인간에 대한 혜안은 심오하고 비범했습니다. 그는 젊은 독일 문학 중 가장 주목할 만한 책들을 썼습니다. 그의 책들 속에는 그 어떤 경향적인 입장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온 세상의 시대적 투쟁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 책들은 너무나 진실하고 적나라하고 고통스러운 나머지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곳에서조차 거의 자연주의적인 색채를 띠고 있습니다.
카프카가 도라가 사 온 꽃 향기를 맡으며 죽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눈물이 좀 났다. 나는 사람이 죽는 장면을 보거나 읽을 때 울음이 나오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는 미소가 지어졌던 것 같은 기억이 있어서 카프카의 「변신」을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