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떡, 2026, 카프카, 지갑

#기운, 기분

by 온호

호떡

지하철 역 앞의 노점상에서 호떡을 하나 샀다. 호떡을 먹는 것은 1년 혹은 2년 만이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음식은 먼지 때문에 꺼려진다는 말이 신경 쓰여 몇 번이나 먹고 싶은 것을 외면하고 지나쳤기에 알게 모르게 잔뜩 기대를 하고서 종이컵에 반 구겨 담긴 호떡을 받았다. 한입 깨물어 먹었다. 혓바닥 위에는 씹혀서 잘려 나온 호떡 조각이 놓여 있었지만 입김은 나오지 않았다. 견과류가 섞인 설탕 층은 빈약했고 그걸 감싸고 있는 떡에서는 와사비를 먹었을 때마냥 효모 냄새가 지나치게 알싸하게 났다. 며칠 있다 나는 화를 풀기 위해 호떡 믹스를 사서 직접 해먹었는데 퍽 만족스러웠다. 레몬청을 만들기 시작했던 것도 아마 이런 이유였던 것 같다는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2026

몇 번의 말실수든 손실수든을 거쳐서 낯선 숫자도 익숙해질 때쯤이 되면 다시 바뀌는 숫자들. 이번엔 2026이다. 늘 설마설마하지만 눈 떠보면 어느새 숫자는 바뀌어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해 일출이라는 것을 봤던 것은 2023년에서 2024년이 되는 때였다. 자조모임 청년들과 1월 1일 일출을 보기로 했었고 북한산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처음 본 일출은 이 날 본 것은 아니었고 그 전날인 12월 31일의 일출이었다.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혼자서 오롯이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처음을 남에게 뺏길 수 없다는 위기감이었는지 모른다.

400m 조금 넘는 고향집 바로 뒷산을 갔었고 거기서 본 일출은 참 특별했었다. 어릴 때 많이 다녔던 추억이 있는 산이었기도 하고 아무 불빛이 없는 야산을 무식하게 준비도 없이 달빛과 휴대폰 손전등 기능에 의지해서 올랐다 보니 무섭기도 해서였던 것 같다. 길도 한 번 잘못 들어서 헤맸고 무서워서 뛰어다녔다 보니 땀도 많이 났었는데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모조리 식는 바람에 달달 떨기도 했다. 그런 일들을 겪은 후에 어둠을 물리치며 시뻘겋게 올라오는 태양의 이마를 본 것이라 더 충격적이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날 서울로 올라가서 이틀 연속 일출을 봤던 것이다.

올해는 자조모임 구성원 네 명이서 아차산에서 일출을 봤다. 체력이 안 좋은 멤버들이 있어서 낮은 산을 고른다고 고르면서도 명소라고도 하길래 골랐었다. 당일에 장소 자체에 대해서는 굉장히 후회를 했다. 정상 부근부터는 줄을 서서 아주 천천히 조금씩 이동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내려올 때도 비슷했다.

불편했던 경험과 별개로 처음으로 새해 일출을 봤던 청년분들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올라오는 태양에 대한 좋은 감상이 남았기를 바랐다. 밤늦게까지, 혹은 새벽까지 깨어있지 않고 아침 해를 맞는 생활을 하게 되기를 바랐다.

카프카

카프카는 행복하기보다는 불행하기 쉽게 태어난 사람인 것 같다. 프로이트 읽기 교양강의에서 카프카의 몇 가지 단편을 다뤘던 것을 계기로 처음 읽어본 후에 단편선을 읽고 있는데 이 사람 글을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행복의 길보다 불행의 길이 더 잘 닦여져 있어서 그 길로 걷게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이 난 있다고 생각한다. 육체적인 조건, 감각적인 조건, 정신적인 조건, 환경/상황적인 조건 등.

단편선 <관찰>의 일부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의민가 싶은 생각이 드는 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일기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봤던 것, 생각했던 것, 느꼈던 감정을 자기 말로 아주 세밀하게 그려놓은 것 같다. 강하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어지는 글은 혼자 생각해 본 것을 AI에게 물어본다. 독서토론 진행도 시킬 수 있다. 그러다 너무 정답적인 답변들이 맘에 안 들면 나는 그게 맞냐고 따지기도 하고 우기기도 하고 그런다.

정답들은 아무래도 다 비슷하다. 미인들이 어느 정도 다 비슷하게 생긴 것과 마찬가지다.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고 미인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못 생긴 사람은 제각각으로 못 생겼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으로 불행하다.

『멋진 신세계』의 레니나를 볼 때도 느꼈고 평소 생각도 그렇고, 나는 완벽에 가까워짐으로 비슷해진 것보다는 그게 추함이라 하더라도 조금 묻어 있어서 고유한 무언가인 채로 있는 것을 더 좋아한다. 버나드가 "비참하더라도 나 자신이고 싶어. 아무리 즐겁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지는 않아"라고 했던 것처럼 나한테도 버나드와 비슷한 결이 있다고 생각한다. 클로드나 제미나이가 주는 정답에 반문하거나 우기거나 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갑

집에서 257m 떨어진 음식점에서만 해도 꺼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그 이후에 집으로 곧장 이동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갑은 집 근처에서 잃어버렸다. 매일 그 길을 걸어 다녀야 하기 때문에 지갑이 아른거리는 것을 그래서 막을 수 없다. 분명 지갑에는 내 신상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어째서 돌아오지 않는 걸까.

Lost112 라는 앱을 처음 알게 됐고 가끔 분실자명에 내 이름을 써서 검색해 보거나 물품명에 지갑 브랜드를 써서 검색해 보거나 했다. 공백만 뜰 때마다 내 마음도 그랬다. 그러다 경찰서에서 문자를 받았을 때는 소리를 뱉을 정도로 놀랐다. 하루하루 지날 때마다 하루만큼씩 포기했고 희망적인 상상은 점점 더 안 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미리 전화를 꼭 해야 한다는 안내에 따라 경찰서 번호로 전화를 하고 현금이 있는지 물어봤다. 현금은 없다는 말에 새로운 기분이 찾아왔다. 문자를 받았을 때의 엄청난 기쁨은 순식간에 빛을 잃었다. 사례비를 두둑이 드렸다는 생각을 본능을 거슬러가며 해봤지만 처음에 느꼈던 기쁨과 감사로 돌아가지지는 않는다. 땅 속 깊숙이 묻어둔 물건을 맨손으로 흙을 흩으며 찾는 것 같은 느낌만 난다.

그래도 지갑을 잃어버린 후에 후회로 생장하고 마는 아쉬움이라는 씨앗을 줄곧 키우던 일이 그친 것은 정말 축복이다. 지갑을 찾은 기쁨과 현금이 없어서 생긴 실망, 물-지푸라기 이야기 속 주인공 같은 나에 대한 실망을 느꼈지만 중요한 건 내 지갑이 돌아온 것 아닌가. 인류애 그래프는 다시 우상향을 그리고, 지갑 사건은 열린 채로 남아서 남은 인생을 나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닫힘으로써 지나간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