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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Mar 08. 2024

히키코모리 10년 경력자의 일기

괜찮긴 한데 그래도 조금만 섬세해줄래요?

"이번에 또 특이한 학생이 들어왔네."

줌 화상회의 그리드 속 얼굴들 중 하나가 말했다. 

<가창 실기> 강의 교수님이었다. 


사람들 앞에서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노래 자체도 늘 배워보고 싶었다.

보통 목회자 자녀라면 교회 안에서 찬양이라든지 악기 하나쯤은 자연스레 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우리 교회는 워낙에 빈촌의 작은 교회였고, 아버지 목회 철학 상 요란한 걸 지양했기 때문에 그런 기회는 없었다. 내 흥미도 다른 쪽에 많이 있긴 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목회자 자녀라는 집단 안에서도 평범에서 벗어나있다는 생각이 있었고 이번에 노래를 배우는 것은 뒤늦게라도 평범으로 한 발 더 다가가기 위한 나의 평범하지 않은 노력이다. 심지어 학기 말에 뮤지컬을 직접 하게 된다. 그건 몰랐다. 강의계획서를 읽지도 않고 그냥 넣은 거라. 얼떨결에 버킷리스트 하나 해보게 되었다. 


수강 정정기간이라서 가볍게 비대면으로 OT를 하는데 마지막쯤에 교수님이 수염을 기른 내가 좀 재밌어 보였는지 호명을 하며 몇 살이냐고 물어봤다. 


"한국 나이 34예요."


교수님은 놀람과 동시에 계속 재밌다는 듯 웃으면서 말했다. (격자 속 여학생들의 놀라는 리액션도 곁들여서) 


"아니 왜 서른네 살인데 대학을 다녀요."


"아이 뭐, 사연이 있습니다."


머뭇대지 않고 생긋 웃으며 즉답했지만 '사연'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아주 약간 쉬고 말했다. 말하기 조심스럽다는 듯이. '방금 그 멘트는 무례할 수도 있었습니다. 힌트는 드렸으니까 혼자서 생각은 한 번 다시 해보셔요.'

  

저런 류의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 상황이 더 이상 부끄럽다거나 상처받는다거나 하지는 않는다. 단지 조금 귀찮다. 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는 개도 불안하게 한다는데, 반복되는 질문은 나를 식게 만든다. 

'재미없어.'

'아, 역시 또?'

교수님 입장에서는 한 번 물어본 건데 내가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안다면 억울할 만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나의 지난 인생들이 뭔가 이야기할 만한 것들로 채워진 충실한 '삶'이었다면 저런 질문도 전혀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을 테다. 단지 상대가 나빴을 뿐이겠지. 


그래도 여러분들아, 한 번쯤은 조금만 더 섬세해주지 않을래요? 


세상에 이런저런 사람 있다지만 그래도 내 이기적인 바람은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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