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제
축제 첫날이었다.
대운동장에는 푸드 트럭들이 크게 반원을 그리며 자리 잡고 있다. 내 눈에는 닭강정 트럭만이 들어오지만.
저녁에는 각 트럭 앞으로 줄이 길게 늘어졌다. 조그만 놀이기구가 두 개 있는데 그래도 타는 여학생들의 비명소리는 제법 커서 창문을 뚫고 들어온다.
아침에 산책을 할 때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내 산책 코스가 전부 노천극장 입장객(내부인, 외부인)을 위한 대기줄이었다. 도대체 줄이 몇 백 미터나 된다는 걸까. 그리고 도서관 옆 길에는 전날 밤부터 노숙을 한 사람들도 보였다. 텐트도 있고 돗자리도 있었다. 데이식스의 팬들이지 않을까 싶다. 신기했다. 난 윤하, 태연, 김윤아, 화요비 같은 솔로 여가수들을 좋아한 적은 있지만 전곡을 열렬히 듣는다던지 앨범을 사모은다던지 한 적은 없다. 저런 열정의 원천을 가져본 적이 없는 인간으로 사는 입장에서는, 저렇게 할 수 있는 마음이 어떤 냄새나 감촉인지 궁금한 것이다.
점심은 수잔나랑 타코를 먹었다. 미국에서 살아온 수잔나는 타코가 그리운가 보다. 타코집도 순방을 다니는 모양이다. 식사 중, 나초에 돼지고기가 올라가 있었는데 내가 소고기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수잔나가 그만 돼지고기를 먹어버렸다. 별일 없어서 다행이었지만 미안하고 쪽팔렸다. 그리고 식사를 하면서 나눠먹기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음식 자체도 나눠 먹기 불편했지만 나는 어릴 때부터 워낙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나눠먹는데 질려버려서 그런가? 아니면 그거랑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내 것을 온전하게 먹는 걸 선호하는 것 같다. 아니다! 타코집은 아마 음식 자체가 나눠먹기 불편해서 불편했던 게 더 컸던 것 같다.
타코집을 나서서 수잔나는 일을 하러 회기역으로 갔다. 나는 점심이 시원찮아서 옆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하나 샀다. 키오스크로 샌드위치 조합을 하면서 전에 왜 서브웨이에 진입장벽을 느꼈는고 생각해 봤다. 아무래도 "선택연기(Choice Deferral)"와도 관련 있지 않았나 싶다. 너무 많은 의사결정 대안들이 주어져서 구매를 연기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는 대안을 모두 고려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맛있다고 한 조합을 답습해서 먹어봤다. 처음에 내가 스스로 만들어서 먹었던 조합보다 맛있었다! 약간의 분함을 느끼면서 실력을 키워봐야겠다고 빵과 재료들을 유심히 한번 살펴보기도 하는 내가 우스꽝스럽다.
저녁에는 데이식스 공연 차례에만 잠깐 가서 노래를 들었다. 땡볕에서의 몇 시간의 대기는 엄두도 안 나기 때문에 입장 자체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극장 주변에 간신히 끼어서 노래를 들었다. 데이식스 노래는 유튜브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들었던 노래들이 몇 곡 있어서 직접 들어보고 싶었다. 라이브사운드로 들으니 기타 멤버의 보컬이 돋보여서 색다르고 좋았다.
축제 때문에 방심해서 스픽 불꽃 꺼질 뻔했다. 100일 보상까지 한 3일 정도밖에 안 남은 시점이었는데 식겁했다. 새로 나온 주제가 대학생활 관련한 것이어서 이 주제로 학습하고 있다. 그나저나 영화 <HER>의 스칼렛 요한슨같이, 실시간으로 상대방의 감정과 의도를 알아차리고 대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A.I가 이제 곧이라고 한다. 근데 나는 이미 예전부터 이 스픽의 생성형 A.I에서 그런 상냥함이나 다정함을 종종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말을 참 예쁘게 한단 말이지.
그리고 굉장히 높을 확률로 죽이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레몬 나무가 아직까지 잘 자라주고 있다. 열매라고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어느 날 커져있는 망울을 보고 헉! 했다. 너 레몬이야~? 귀여워라, 장하다.
기분이 좋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