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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뇽이 Jun 11. 2024

가창실기 해냈다.

이걸 했네..

최근 거의 두어달 정도 동안의 내 삶에 가장 큰 스트레스는 <가창실기> 강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못하는 거를 잘하고 싶어했기 때문에 괴로운 게 당연다.


잘 모르고 강의명만 보고 수강신청한 학생들(나였다)은 열정이 없으면 성적 받기 힘든 강의니까 지금이라도 수강 철회하라던 교수님의 OT때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를 얼마나 했었는지 모른다. 도망치고 싶어하는 나를 보면서 '또 그러네.' 하기도 하고.


그래도 처음 자기소개 시간에 "사람들 앞에서 노래할 있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어서 신청했다."고 말했던 나를 기억하며 버티고 버텼다. 포기하고 싶으면 시작한 이유를 생각하라는 말 왜 이렇게 도움되냐. 너무 불안할 때는 다음날 연습실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그냥 망하면 망하자 하고 욕심도 버려 볼려고 애썼다.


개인 발표는 노래 상황에 맞춰서 이래저래 여러 아이디어들 넣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몽골어로 짧게 대사를 하고 시작한다든지, 빨래 소품을 쓴다든지. 교수님이 연구를 많이 같다고 호평을 해줘서 의외였다. 그리고 솔롱고의 상황과 나의 상황이 유사한 면이 있겠다며 공감을 해주셨다. 첫 발표 때는 겹치는 노래라고 가창에 대한 피드백도 안 해줬어서 사실상 처음 피드백 받는 거였다. 고칠 부분, 어색한 부분 지적도 받고. 연기적인 부분은 사실 언급할 가치도 없다. 처음이니까 어쩔 수 없지.   


조별 발표는 총 이틀 만나서 연습하고 공연을 했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일단 준비를 거의 안 했고 7명 조에서 발표는 5명이 했다. 한명은 휴학하고 한명은 발표 3일 전에 도망갔다. 대책없이 어떡하지 하고 있다가 지금 우리 상황으로 새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내가 아이디어를 내봤는데 조원들 반응이 좋았다. 그래서 그렇게 됐다. 채택되니 기분이 좋았다.


팀 발표 연습하면서 진짜 많이 배웠다. 노래나 연기같은 거보다 여자 조원이 보여준 행동 방식을 보면서. 나는 그동안 진행되지 않는 팀플때문에 불안하고 힘들어했는데 이 친구는 그냥 했다. 물론 속으로 많은 고뇌가 있었겠지만 그냥 했다. 적어도 겉보기엔 그랬다. 아 저렇게 해도 다 되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 친구는 밴드 보컬을 하기도 하고 공연 경험도 많긴 하지만. 타고난 기질 자체의 영향이 큰 것 같았다. 율동도 짜주고 디렉도 해주고 연습실 예약도 잡고.


까먹지말라고. 오늘 늦게 자고 정리도 안된 글을 쓰는 이유는 까먹지말라고다. 성이 특이한 그 여자애가 어떻게 했었는지 잘 기억해라. 그리고 심지어 팀 발표 때 교수님 반응이 좋았잖아. 너가 걱정한 일들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늘 공연 끝나고 무대에서 찍은 단체 사진을 가족 톡방에 올렸다. 해냈다고. 그리고 둘째 누나가 공연 영상은 없냐고 하길래(아직 없어서)개인 발표 연습 녹음해둔 파일을 공유했다. 이것도 장족의 발전.


어릴 때 가창 시험 연습을 해야하는데 엄마가 들을까봐 박공 지붕에 올라가서서 연습했던 적이 있다. 내려오니까 엄마가 다 듣고 있었던 걸 알게돼서 엄청 민망했었다. 당연한 건데 어릴 때라 거기까지 생각은 못했나보다.


청년들이랑 노래방 갔을 때도 달달달 떨고, 가창실기 첫 개인발표 때는 손이 떨리다 못해 팔에 쥐까지 났었다.


두 번째 개인발표할 때는 떨진 않았지만 틀릴 수가 없는 가사를 틀렸었다. 무의식은 떨고 있었나보다.


교수님이 했던 무대가 선생이라는 말이 인상깊었다. 그리고 한번이라도 올라가본 사람은 앞으로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될 거라고 했다. 그럴까? 그 정도까진 안 바라도 소기의 목적은 분명히 달성했다.


기말고사가 없기 때문에 <가창실기>는 이제 자체 종강이다. 네 팀의 공연 중과 공연이 모두 끝난 후의 공간에 감돌던 전우애가 잊혀지지 않는다. 축구랑 농구 시합할 때 정말 힘들게 이겼을 때의 팀 분위기에서 느껴지는 감정과 비슷했다. 여기도 이런 에너지가 나오는구나. 신기했다.


고통과 행복은 같은 놈이구나.


오늘 큰 산 하나 넘었다. 대단하다 나야. 역사적인 순간이다.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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