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책육아
작년, 첫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창 외주일이 많아서 작업량에 허덕이고, 새 학기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던 해였다.
엄마들이 만나면 하는 이야기들이야 뻔하다. 아이들 교육 이야기로 시작하다 보니 알게 된 사실.
현실 속에는 책육아를 하는 사람이 없었다.
전국에 책육아 맘들이 굉장히 많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관련 커뮤니티만 맴돌아서였을까?
어쩌다 책 주관을 내보이면 “책 많이 읽으면 좋죠” 미온적이거나 적당한 예의상 반응이 돌아올 뿐, 진심으로 공감하는 사람도 없었고 별나게 보지 않으면 다행인 현실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교육관이 다름과는 별개로, 난생처음 엄마친구가 생기고 커피 한잔, 맥주 한잔 하며 수다 떠는 시간들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날들이 늘어갔다. 당연히 시간은 늘 부족했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는 게 현실적으로 내 시간을 벌고 윈윈 할 수 있는 전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밀려왔다. 다들 이렇게 살잖아 싶었다. 솔직히 일일이 검색하고 책을 넣어주고 읽어주고 소통하는 것보다 “학원 픽업만 다니면 되는 일” 이 편하게 느껴졌던 것도 한몫했다.
그렇게 아이의 학원은 참 많이도 늘어 있었다.
책을 아주 중단한 것 까지는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넉넉한 독서 시간을 확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창작책은 잘 집지 않고, 관심분야 지식책만 편식하는 버릇이 여전하여 독서 학원에까지 보내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 학원에서는 비문학 지문도 풀렸는데, 선생님은 아이가 성실하고 잘 따라온다며 높은 수준을 권유하셨다. 문제를 보고 헉 이걸 9세 꼬맹이들이 푼다고? 했던 것도 잠시. 풀어낸다는 뿌듯함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이렇게 학원의 중독성을 느꼈다. 아이가 레벨이 높아진다는 게 수치화되어 보이는 느낌.
그렇게 학원 픽업을 다니고 일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며 정신없이 보내던 일상 어느 날.
아이가 게임 동영상을 자꾸 보고 싶어 했다.
아, 집에서 검색용으로 쓰는 태블릿을 뺏어야겠다. 중독이 될 수도 있겠어, 하는 공포심에 가까운 불안감이 나를 덮쳤다. 나도 당혹스러울 만큼 크고 강한 불안감이었다.
나는 사실 게임 자체에 민감한 엄마는 아니다. 7세 때 글밥 늘려주려고 그 당시 아이가 관심 있던 마인크래프트 게임의 공략집까지 서슴없이 넣어주던 나다. 이제 와서 다짜고짜 NO를 외치고 싶은 이유. 컸으니까? 초등학생이라서? 아니다. 진짜 불안감의 이유를 알았다.
현재 아이와의 대화와 소통이 줄었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감정이 생긴 거다.
처음 첫애가 게임에 관심을 가졌던 때. 나도 게임에 관심을 가졌다. 재밌어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종일 재잘거리는 아이에게 맞장구 쳐주며 “ 게임에서도 얻는게 있겠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와 잦은 대화로 요즘 관심사와 성향을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학원에 보내고 말고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소통의 부재였다. 그리고 학원스케줄에 숙제에 떠밀려 소통할 시간과 여유가 아이도, 나도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애써 모른 척했던 고민을 수면 위로 꺼냈다. 매달 100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면서 아이의 눈동자를 보고도 일 생각을 하는 나. 이게 맞는 걸까?
여름방학을 앞둔 초2 여름.
우리는, 사교육을 정리했다.
아이와 대화 후 최소한의 학원만 남겼다. 잘 다니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 막상 학원을 끊으니 너무 좋아하는 아이를 보며 미안함이 몰려왔다. 학원에 다니길 은근히기대하는 엄마의 눈치를 봤던 거겠지.
책육아는 철저히 아이의 눈을 바라보는
육아방법이다
아이가 어떤 책을 좋아할까, 필요할까 고민하는 과정이 필수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불안해하지 않고 내 아이를 믿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학원 숙제하고, 쉬는 시간에 게임하고 싶어 하는 아이가 아니라 자유롭게 놀며 때론 관심사에 푹 파묻히는 아이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었다.
그 주말. 온 가족이 으쌰으쌰 대청소를 하고 집 배치를 바꾸었다. 집안에 흩어져 있던 책장들을 다시 거실로 불러 모았다. 책 정리도 대대적으로 시행했다. 이렇게 책 세계로 다시 들어가 보기로! 그간 거짓말처럼 내 독서량도 줄었다. 다시 책은 가깝게, 아이와 대화는 넘치게 를 슬로건으로 의지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