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류스타로 중국 대륙을 '들었다 놨다'했던 배우 김수현이 간첩으로 등장한 영화가 있다. 장철수 감독의 '은밀하게 위대하게'다.
김수현이 맡은 역할은 2만 대 1의 경쟁률을 뚫은 북한 최고의 엘리트 요원 원류환. 그는 남파특수공작대 5446부대의 전설 같은 존재다. 하지만 조국통일이라는 원대한 사명을 안고 남파된 그가 맡은 임무는 어이없게도 '달동네 바보'다.
달동네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져 가는 원류환에겐 '추리닝'으로 코스프레한 바보 동구와 날카로운 눈빛의 남파간첩이 겹쳐진다.
700만 명이 관람한 이 영화를 통해 MZ세대는 간첩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을까. 김수현의 '살인미소'와 빨래판 같은 '식스팩'에 여성팬들은 간첩에 대한 고정적인 이미지도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남파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의 배우 김수현영화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아무리 상상력을 발휘하더라도 시대적인 트렌드가 그대로 투영된다. 남파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를 보면 알 수 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의형제', '간첩', '은밀하게 위대하게'등 영화 속 간첩의 모습은 왠지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강동원, 김수현 등 꽃미남 스타를 기용했고 간첩을 시종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영화 '간첩'에서 김명민은 남파 22년 차로 비아그라 판매상인 평범한 가장이다. 역시 고정간첩인 탑골공원 독거노인, 동네 부동산 아줌마, FTA(자유무역협정)에 반대하는 귀농 청년 등 우리 주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인물들이다. 북으로부터 암살지령을 받지만 금고털이에 마음이 설레는 모습을 보면 웃프다.
최근 미군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 도입 반대운동을 한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는 충북 청주지역 노동단체 출신 4명은 우리의 친근한 이웃이다.
이들의 반대운동이 마냥 폄하될 일은 아니다. 스텔스 기를 운용하는 청주 17 전투비행단 인근은 청주공항과 맞물려 평소에도 소음이 심한 곳이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지역의 시민사회^환경단체가 반발하는 사례는 흔하다.
문제는 이들이 북한 공작원으로부터 지령을 받고 활동비도 2만 달러나 수령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국정원이 확보한 이들의 USB에는 북한 체제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는 취지의 서약문도 저장된 것으로 보도됐다.
최근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청주 노동단체 활동가들대체 어쩌다 그리 됐을까. 간첩이 영화 속에서나 등장하는 구시대 유물로 치부했던 사람들에겐 무척 흥미롭고 충격적인 일이다.
더구나 이들은 범여권 후보로 총선에도 출마하고 지방선거에도 부호 등록을 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지난 추경예산심의 때는 F-35A 도입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커넥션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하긴 북한이 아무리 '삶은 소대가리', '둘째가라면 서러울 특등 머저리'등 원색적이고 거친 언사를 쏟아내고 아무리 위협적인 말을 해도 해괴한 논리로 북한을 감싸는 여권 정치인들을 보면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청주 간첩단은 이 정권을 향해 "이 사건은 문재인 정부의 간첩조작 사건"이라고 주장했다. 아마도 국정원이 책상 서랍 속에 묵혀 두었던 이 사건을 갑자기 발표한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일까. 그렇다 해도 뻔한 사실을 '조작'이라고 항변하는 것은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스텔스 전투기는 레이더에 잡히지 않아 더 위험한 폭격기다. 김수현과 김명민이 간첩으로 나온 영화처럼 북한의 마수(魔手)에 포섭된 간첩들이 암약(暗躍)하는 영화 같은 현실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들이 스텔스기처럼 겉으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