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면 저절로 되는 것이 엄마인 줄 알았다.
모성애는 당연하게 생기는 것이라고.
아기가 태어나고 나를 가장 당황시켰던 것은,
‘엄마’라는 말이 그렇게 낯설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 평생 동안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가 ‘엄마’ 일 텐데,
그 단어가 나를 지칭하는 말이 되자 너무나 어색했다.
아기야~ 엄.... 내가 이거 해줄게.
아기야~ 울지 마. 엄.... 내가 돌봐줄게.
‘엄마’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 무게가 내 목에 걸려서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나는, 아기 앞에서 ‘엄마’가 아니었고, 아니고 싶었다.
아기가 잠들면,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는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심장이 뛰어온다.
아기가 깨어있으면, 그야말로 풍랑 속에 떠도는 작은 배가 된다.
남들은 아기가 아프면 대신 아파주고 싶다던데?
밤새 간호하느라 잠도 못 잔다던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던데?
나는 나 안 아픈 게 좋고,
자느라 아기가 밤새 열이 났는지도 모르겠고,
눈에 넣고 싶지는 않던데...
내 모성애는 어디 갔지??
내가 돌보고 책임져야 할 작은 생명체.
나는 그 책임감의 무게가 너무 버거운, ‘엄마’라는 이름을 감당하기에는 나약한 존재였다.
그것을 인정하기까지, 나는 꽤 오랫동안 혼란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엄마는 ‘됐다’가 아니라, ‘되어진다’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