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밤의 외출
주 5일 근무제로 금요일은 퇴근이 기다려지고 퇴근 후가 기대되는 요일이다.
소파에 퇴근한 남편과 딸이 느긋하게 저녁을 먹고 한 껏 늘어져 있다. 할 일은 내일로 미루며 씻는 것조차 주말로 미루고, TV리모컨을 들고 놓쳤던 드라마나 예능을 찾아보며 한 껏 여유를 부린다.
덕분에 나도 같이 늘어져 있다가 잠자리에 들려고 양치를 했다. 양치하며 시간을 보니 밤 11시가 되어간다.
갑자기 내일이 휴일이고 이 밤이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밤바다 보러 갈까?"
"지금? 이 밤에? "
"내일 쉬는데 어때? 아니면 영화라도 볼까?"
"그럴까 엄마!"
남편은 놀라워하고 딸은 맞장구를 친다.
"영화는 너무 늦어서 안 되고 바다는 가고 싶으면 가자."
"딸 옷 입어!"
남편이 딸을 재촉했다.
갑자기 양치하다 뜬금없이 밤바다를 보러 가게 되었다. 어디로 갈지 행선지를 찾다가 바다는 함덕이 가까워 방향을 잡았다.
이 밤에 특별히 하고 싶거나 할 일은 없었다.
바다도 어두워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고, 살다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돌발행동을 하고 싶을 때도 있으니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경칩이 지나 봄인가 싶더니 꽃샘추위가 찾아와 날은 춥고 바람까지 거세다. 밤바다를 보러 왔지만 해변 근처 가게들은 닫혔거나 마감정리 중이다. 딱히 갈 곳도 볼 것도 마땅치 않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해변에 가로등이 많아 바다는 볼 수 있었다.
파란 쪽빛 바다는 아니더라도 거센 파도가 부서지고 있었다.
날씨가 좋았다면 해변에 앉아 치킨에 맥주나 커피를 마셨을 텐데 너무 추워 차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춥다! 이제 집에 갈까?"
"벌써? 금방 왔는데 엄마, 좀 아쉬운데 우리 편의점 갈까?"
"그럴까? 흐흐."
이대로 그냥 돌아가기에는 아쉬운 불금이니까.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신상품이라는 라뽂이, 라면, 소시지 등을 골랐다. 천천히 둘러보니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종류가 참 많았다.
속옷부터 의약품까지, 영양제부터 유산균, 간단한 화장품까지 천천히 둘러보면 한 시간은 훌쩍 보낼 수 있을 만큼 다양했다.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 편리하지만 마트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어서 자주 들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떤 상품들이 있는지 다 알지 못했다가 돌아보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아이들은 편의점 브랜드별로 할인 행사나 통신사 할인 등을 따져가며 요령 있게 이용하는 것 같다. 많은 정보 속에서 어떤 것이 이득인지 잘도 찾아낸다.
하나를 사면 하나를 더 준다든지, 두 개를 사면 하나를 더 주는 행사가 많았다. 특히 캔맥주는 네 개를 사면 훨씬 저렴하게 살 수 있다.
편의점은 날마다 다양한 할인 마케팅이 쏟아져 나오는데 무작정 마트가 쌀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생각이었는지 느끼게 되었다.
라면을 먹고 나니 12시가 넘었다. 창가에 있는 복권 용지를 보던 딸이 펜을 들고 와서 번호를 체크한다.
한동안 쉬었다며 나온 길에 같이 복권을 사자고 해서 번호를 체크하고 카운터로 가져갔다.
"사장님, 복권 주세요!"
"지금은 안 돼요. 12시가 넘었네요."
"네? 12시가 넘으면 안 되나요?"
"12시부터 6시까지 마감하고 결산 보느라 살 수가 없어요. 복권을 사실 거였으면 아까 오자마자 사셨어야죠!"
"아! 네 그렇군요."
이 늦은 시간에 복권을 사본적이 없으니 모를 수밖에. 복권은 언제든지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틀렸다.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사기로 하고 표시했던 용지를 챙겨 들었다.
추운 날 밤바다는 더 할 게 없었다. 해안을 따라 만조가 된 바다에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을 보았다.
갑자기 나선 늦은 밤 외출, 딸은 엄마가 J가 아니라 P인 것 같다는 말을 한다.
밤바다는 차 안에서 대충보고 야식만 먹고 온 셈이지만, 그래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가끔은 계획 없이 마음 가는 대로 살아보는 것도 신나는 일이다.
살면서 오늘 같은 즉흥적인 행동을 얼마나 할 수 있을까? 가끔 늦은 시간이나 새벽에 어디론가 나서고 싶다가도 포기하고 말곤 하지 않았던가.
이번엔 마음 가는 대로 해버린 그런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