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공익허브 Dec 11. 2023

우영우가 없는 이유, 장애인 고용보다 벌금이 더 싸다

미션40. 장애인고용촉진법을 개정하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벌써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이 되었습니다. 지난 12월 3일은 UN이 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었는데요, 그래서 이번 레터는 장애인의 일할 권리에 대해서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미지: motionelements


여러분은 일터에서 장애인 동료를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지난해 많은 사랑을 받으며 종영한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이 변호사가 되어 활약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선 일하는 장애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가 없어요. 이동권, 교육권 등의 기본적인 권리가 장애인에게 잘 보장되지 않다보니 ‘노동하는 장애인’이 우리 사회에 보편적인 존재로 자리잡지 못했습니다. 



헌법 제32조 ①“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장애인은...?


노동은 우리가 삶을 꾸려 나가는 데에 있어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노동할 권리가 기본권으로 나와있죠. 장애인은 비장애인 중심으로 짜여진 노동시장과 직업현장에서 각종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장애인의 일자리를 위한 별도의 제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30년 전에 ‘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이 제정되었어요.


이법의 목적은 장애인이 그 능력에 맞는 직업생활을 통하여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장애인의 고용을 촉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이라면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하게 하는 조항을 두었죠. 현재 시행령은 총 근로자수의 3.1%를 장애인 의무고용률로 정하고 있어요. 공공기관의 경우에는 의무고용률이 3.8% 이고요. 상시 근로자가 100명 이상인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달성하지 못하면 고용부담금을 내야 합니다. 



장애인 고용의무, 절반 이상 기업이 회피


이러한 고용부담금 제도가 장애인 일자리를 확보하는 데에 확실히 기여할 것처럼 보이는데요,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의무를 회피하고 있어요. 2022년엔 근로자수 100인 이상기업의 53.6%가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고 부담금을 납부했습니다. 이 중 세 곳의 기업은 10년이라는 장기간동안 단 한 번도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어요. 민간기업이 아닌 공공기관도 장애인 고용의무를 불이행하기 일쑤입니다. 



“부담금이 더 싸게 먹힌다”


장애인 고용 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일종의 패널티인 고용부담금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장애인을 고용할 의무가 있는데 하지 않았을 경우, 미고용 장애인 수 1명당 최저임금의 60%를 적용해 부담금이 산정되고 있어요. 기업 입장에선 장애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부담금을 납부해버리는 게 돈이 훨씬 덜 드는 거죠. 



대기업이 고용의무 제일 안 지켜


또한 영업이익이 큰 대기업일수록 부담금 산정액이 덜 무겁게 느껴질 텐데요, 그래서인지 우리나라는 기업의 규모가 클수록 장애인 의무고용 이행률이 떨어집니다. 해외에선 대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선도하고 있는 모습과 대비되죠. 독일, 프랑스, 일본 등에선 대기업의 장애인 고용율이 중소기업보다 훨씬 높은 상황인데요, 한국에선 대기업집단에서 장애인 고용율이 가장 저조한 현상이 32년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자료 출처: 김영주 의원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의무 피할 수 있으니 장애인 직무 개발도 안 한다


아무래도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장애인 직원을 위한 업무환경을 만들기가 훨씬 수월할 겁니다. 기업 내 직무도 다양할 거고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돈으로 의무를 회피하고 있죠. 부담금 외에 또다른 패널티로써 의무고용 이행률이 떨어지는 기업들의 명단을 주기적으로 공개하고 있지만, 기업 이미지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도 크지 않고 경제적 타격도 없습니다. 이렇게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지 않았을 때의 제재가 굉장히 약한 상태로 수십년이 흘러왔어요. 자연스럽게 장애인 직원을 위한 직무를 개발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기업인데…장애인이 할 일이 없다? 변명은 그만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게 왜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지 물어보면 장애인에게 적합한 직무가 없다고 이야기해요.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에는 의지만 있다면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반도체 제조회사는 자회사를 설립해 장애인 직원들을 고용한 뒤, 자회사에 방진복 제조 업무와 직원용 간식 생산업무를 맡겼습니다.


다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장애인 직원이 비장애인 직원과 같은 일터에서 함께 일할 수 있는 업무환경과 조직문화를 만들려는 노력도 많이 합니다. 글로벌 기업들은 장애인 고용을 단순히 지켜야 할 의무로만 여기지 않고 ‘인재의 다양성’이라는 관점에서 기업 경쟁력의 기초로 삼고 있기 때문이에요. 다양성, 형평성과 포용성(Diversity, Equity & Inclusion)은 ESG의 핵심 주제로 해외 투자 시장에서도 중요한 화두가 된 지 오래입니다. 



고용부담금 산정 기초액 올려야


한국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장애인 고용의무를 지키도록 만들려면 일단 고용부담금을 높여야 합니다. 장애인고용공단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평균 부담기초액이 1% 증가했을 때 의무고용사업체의 장애인 고용이 0.7% 증가했다고 해요. 부담금 산정의 기초가 되는 금액을 최소한 최저임금의 100% 이상으로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 ‘장애인 고용을 안 하는 게 더 싸게 먹히는’ 상황을 바로잡을 수 있어요. 대다수 국민들도 이런 문제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20~60대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장애인 의무고용을 지키지 않은 기업에게 최저임금의 100% 이상을 적용해 부담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73%나 됐어요. 최저임금의 120% 또는 140%까지 부과하자는 의견도 절반 가까이 됐죠.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2022년 20~60대 성인남녀 1039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장애인 구직자의 잠재력 인정 안 하면 경제적으로도 불리


이미 국회에는 고용부담금을 산정하는 기초액을 높이는 법안들이 다수 발의되어 있어요. 얼른 법안이 통과되어 사회적 의무를 지키지 않는 기업들에 대한 제재가 강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몇 달 전 독일에서도 20인 이상 사업장에 부과되는 장애인 고용부담금의 액수를 두배로 올렸어요. 법 개정 과정에서 독일 연방노동부 장관은 이렇게 말했죠. "변명은 이제 그만하세요. 장애인 구직자의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리석은 짓이자 사회적 차별입니다." 의무를 회피하고 고용부담금을 내는 것보다, 장애인을 실제로 고용하는 것이 기업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알게 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바랍니다.      




참고문헌

 임성택. 2023. [장애인 고용의무 이행을 위한 제도적 개선방안].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 토론회 자료집. 

조혁진. 2023. [장애인 고용의 양적확대와 질적향상을 위한 장애인 고용부담금 개편 방안].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 토론회 자료집. 

조종란. 2023. [장애인 고용의 양적확대와 질적향상을 위한 제언]. 장애인 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개정 토론회 자료집. 

더페어뉴스. 23-05-31. [김영주, "대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 더 안지켜"].


매거진의 이전글 불평등의 해법으로 떠오른 횡재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