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85. 진실화해위원회는 균형 있게 진실을 추구하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뉴스를 보면서 한 번쯤 이 기관의 이름을 접하신 적이 있을 겁니다. 기관명에서부터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단번에 알아차리셨을 것 같은데요. 진실화해위원회 홈페이지에 적혀 있는 ‘자기소개’는 이렇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항일독립운동,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권위주의 통치 시에 일어났던 중대한 인권침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등을 조사하고 진실을 밝혀 이를 바탕으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설립된 독립적인 조사기관입니다. 우리 위원회는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앞장서겠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과거 국가폭력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피해생존자 및 유족들의 간절한 열망과 사회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출범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렇게 어렵게 탄생한 진실화해위원회, 최선을 다해 진실규명에 앞장서고 있을까요?
지난 2022년 12월 2기 진실화해위원회의 수장으로 김광동 위원장이 부임했습니다. 차기 위원장 후보로 거론될 당시부터 시민사회에서는 “부적절한 인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어요. 김 위원장이 이명박 정부 당시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 집필에 참여한 뉴라이트 계열 인물이었기 때문이에요. 2013년 국정원의 대선 개입 논란이 벌어졌을 때는 국정원을 지지하는 글을 언론에 기고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죠.
진실화해위의 핵심 가치는 과거의 역사를 세밀하게 복기하고 톺아보며 기존의 오류를 수정하고 진실을 바로잡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과 정치적 중립성은 진실화해위원장이 갖춰야 할 필수적인 요건입니다. 과거 행보에 비춰 봤을 때 김 위원장은 이러한 자격 조건에 부합하지 않았죠.
그러나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윤석열 대통령은 김광동 위원장의 임명을 강행했습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지금, 김 위원장은 ‘진실’과 ‘화해’를 부정하는 언행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가 진실화해위원장으로 부임하기 전후로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내뱉은 발언들을 모아봤습니다. 살펴보시면 독자 여러분도 현직 진실화해위원장의 왜곡된 역사관과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향한 적대적 태도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제주4·3 폭동은 반한·반미·반유엔·친공투쟁이다”
- 2014년 4월호 <한국논단> 기고문
•“5·18 광주민주화 운동에 북한이 개입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2023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자 유가족들이 군경이 죽였다고 신고를 한다. 인민군이나 빨치산에 의해 죽었다고 하면 보상을 못 받기 때문이다”
- 2023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 기도회
•“인민군과 빨치산, 즉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이 (군경에 의한 희생보다) 더 고귀하고, 선(先)보상이 돼야 한다… 침략자에 맞선 군인과 경찰이 초래한 피해에 대해 1인당 1억3,200만 원의 보상을 해주고 있다. 이런 부정의는 대한민국에서 처음 봤다”
- 2023 서울 영락교회 조찬 강연
•“전시 하에서는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일 수 있다”
- 2023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희생자 유족 면담
•“노근리 사건은 불법 희생이 아니다. 전쟁 중 부수적 피해다”
- 2024 진실화해위원회 비공개 제79차 전체위원회
•“(불법사찰 피해자) 이 사람은 좀 관찰해서 봐야 할 대상이라고 보호해 준 거 아닌가요?”
- 2024 진실화해위원회 제85차 전체위원회
김 위원장의 주관적인 역사관과 정치적 편향성이 위험한 이유는 그의 그릇된 신념이 진실화해위원회를 과거사 청산으로부터 역행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은 국가폭력 희생자들을 ‘부역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미 의결이 난 사안은 위원장 개인이 별도의 조처를 할 수 없음에도 ‘사건 재조사’를 지시하기도 했고요. 이에 항의하는 희생자 유가족에게는 ‘탄압’으로 맞서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지난 7월 사건 조사가 지연되자 항의방문한 유족회, 과거사단체 회원들을 경찰 30여명을 동원해 강제 퇴거 조치했습니다. 유족들의 아픔을 치유해야 할 진실화해위원회가 되려 유족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는 것입니다.
•함평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에 법적 근거 없는 재조사 지시
•영천 국민보도연맹 및 예비검속 사건 희생자 일부 진실규명 보류
•태안 부역 혐의 희생사건 희생자 일부 ‘악질 부역 가담자’ 규정
•진도 군경에 의한 민간인 희생사건 희생자 일부 ‘부역자’ 규정
진실화해위원회는 역사 사건의 진실을 밝혀 국민통합과 화해에 기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진살화해위원회가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지금의 진실화해위원회는 김 위원장의 독단과 강압에 존재 의의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국가폭력 희생자를 향한 공감 없는 진실화해위원회, 희생자를 ‘반동 세력’이라고 추궁하는 진실화해위원회는 그 자체로 잘못된 역사의 페이지를 써내려갈 것이 분명합니다. 1기 진실화해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김성수 전 국제협력팀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역사에는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훨씬 많다. 하지만 많은 경우 역사가 가해자에 의해 기록되었기에 피해자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묻혀버렸다. 역사에서 중요한 것은 소수의 가해자에 대한 기록이 아니라 다수의 피해자에 대한 기록이다. 어차피 역사의 가해자는 누가 말려도 그 막대한 자원을 동원해 그들의 역사를 기록할 것이다. 그러나 역사의 피해자는 다르다. 누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기억하고 기록해 주지 않으면 역사에서 무시되고 사라지기 쉽다”.
진실 아닌 진실이 사실로 둔갑하지 않도록, 우리 역사가 오점투성이가 되지 않도록 퇴행하는 진실화해위원회의 뱃머리를 돌려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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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한겨레. 22-12-01. [새 진실화해위원장에 김광동 상임위원 내정… 뉴라이트 활동].
미디어스. 22-12-02. ['진실·화해' 부정하는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내정자].
제주의소리. 22-12-03. [“제주4·3은 공산주의 폭동” 김광동 진실화해위원장 내정 논란].
한겨레. 23-03-13. [김광동 “5·18 북한군 개입 가능성 배제 못 해” 입장 재차 고수].
한국일보. 23-06-09. [김광동 “한국전쟁 당시 군경 희생자만 보상 부정의” 발언 논란].
한겨레. 23-06-09. [민간인 학살 보상은 ‘부정의’라는 김광동, 진실도 화해도 아니다].
한겨레. 23-06-09. [[단독] 민간인 학살 피해보상에 “정의 아니다”… 김광동 망언].
오마이뉴스. 23-06-18. ["이젠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까지"... 커지는 김광동 사퇴 여론].
한겨레. 23-08-31. [과거사 단체들, 국힘 당사 앞에서 “김광동 파면 건의하라”].
일요시사. 24-02-19. [‘선 넘은’ 진실화해위 직권남용 논란].
오마이뉴스. 24-10-01. [새로운 국가폭력 가해자가 된 뉴라이트 진화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