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션87. 자영업의 붕괴를 막고, 체질을 개선하라
공익허브는 매주 월요일 ‘미션 100’을 연재합니다. 한국사회에 필요한 제도적 변화 100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자영업 공화국’. 이 말에는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의 비중이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의 풍경이 담겨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글로벌 톱’ 수준입니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23년 한국의 자영업률은 23.2%를 기록했는데, 이는 OECD 회원국 중 여섯번 째로 높은 수치죠.
“자영업자가 많은 게 큰 문제라도 되느냐” 싶으실 겁니다. 합당한 의문입니다. 경제활동을 하는 방법이 반드시 회사에 취직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관점을 바꾸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우리나라의 자영업은 지금,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보다 더한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곳곳에서 울리는 위험 신호를 방치했다간 자영업이 순식간에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자영업계에 들이닥친 위기의 시그널은 무엇인지, 지금부터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지난해 폐업을 신고한 자영업자 수는 98만6487명.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였던 2022년(86만7292명)에 견줘 약 14% 증가했습니다. 대표적인 자영업종으로 꼽히는 소매업의 경우 2023년 폐업 사업자 수가 1년 전에 비해 29% 늘어났습니다.
폐업률을 살펴봐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요.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10.8%로 2022년(10%)보다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신규 창업 대비 폐업률은 79.4%를 기록했는데, 이는 가게 10곳이 문을 여는 동안 8곳이 문을 닫았다는 뜻입니다. 그중에서도 소매업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폐업률(20.8%)를 기록했고요.
폐업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폐업에도 ‘돈’이 들기 때문입니다. 점포 철거비용만 해도 평균 848만원(2023년 기준)에 이른다고 해요. 하지만 폐업할 비용이 없어 겨우 버텨봐도 현실은 녹록지 않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 2분기(4~6월) 자영업자(근로자 외) 가구의 한 달 평균 사업소득은 201만4857원으로 임금근로자 가구 평균 근로소득(480만9675원)의 41.9%에 불과했어요. 대부분의 자영업자 가구가 일반 근로자 가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벌이로 버티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2022년 기준 개인사업자(자영업자) 종합소득세 신고 통계에 따르면, 전체 신고 건수의 75.1%가 ‘월소득 100만원 미만’인 것으로 집계됐어요. ‘소득 0원’에 해당하는 건수도 8.2%에 달했고요. 자영업자의 상당수가 소득 빈곤에 빠졌으며,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좀비 자영업자’의 수도 적지 않다는 사실이 수치를 통해 입증된 셈이죠.
이에 반해 자영업자들의 부채 규모는 큰 폭으로 뛰어올랐습니다. 올해 3월 기준 자영업자의 금융회사 대출 금액은 111조7400억원이었는데,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 말보다 51% 늘어난 수치예요. 특히 3개월 이상 연체한 상환위험차주의 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15조6200억원에서 31조3천억원으로 2배가량 증가했어요. 3개 이상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린 다중채무자의 비중도 전체의 절반 이상(51.4%)을 차지했고요.
코로나19 이후 계속해서 자영업자들의 대출 규모와 연체 금액이 늘어난 것은 그만큼 코로나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자영업자가 많다는 방증입니다. 코로나 당시에는 방역에 협조하느라 가게 문을 닫아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고, 코로나가 끝난 뒤에는 고금리와 고물가에 따른 소비 위축에 허덕이며 ‘빚’을 내서라도 생존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것이죠.
이처럼 자영업계가 한계 상황에 직면하자 정부에서도 정책 자금 지원, 취업 프로그램 운영, 경영 컨설팅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관련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해요. 가령, 폐업 자영업자의 취업·재창업을 돕는 고용 지원책은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 실제로는 폐업 자영업자가 선택할 만한 마땅한 일자리가 없다고 지적합니다. 정부의 정책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자영업자를 임금근로자로 유인할 수 있는 일자리 마련 정책이 뒷받침돼야 하는 것이죠.
자영업자의 가장 큰 고충으로 떠오른 배달료 지원 역시 자칫 플랫폼 기업의 배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플랫폼과 소상공인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감안하면, 도리어 플랫폼이 여러 명목으로 사업주의 부담을 높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이밖에 채무조정 대상을 늘리고,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한 새출발기금을 확대하는 방안에도 공적자금의 규모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죠.
한국이 ‘자영업 공화국’이 된 데에는 이른 은퇴와 사회안전망 부족 등의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법적 정년은 60세이지만 실제로는 40대부터 직장을 그만두기 시작한 퇴직자들이 다른 기업의 근로자로 새 출발할 수 있는 문은 너무도 좁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코앞에 닥친 자영업자들의 생존 위기를 해결하는 것만큼, 자영업 과다 유입 현상을 해소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노동 구조를 개혁하는 선행적인 조치가 없는 상태에선 어떤 정책도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하다는 경고인 것이죠. 자영업 공화국 대한민국에 무엇보다 필요한, 뼈아픈 조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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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아시아경제. 24-10-01. ["100만원도 못 버는 ‘사장님’ 안 할래"… ‘자영업 비중’ 20% 무너졌다].
동아일보. 24-09-30. [[사설]자영업자 비중 첫 20% 미만… 단순 연명 아닌 구조 개편 시급].
중앙일보. 24-09-26. ["배민 꼭 망하게 해주세요"… 폐업 자영업자의 절규 [창간기획, 자영업 리포트]].
한겨레. 24-09-22. [자영업자 75%, 월 100만원 못 벌어… 95만명은 ‘소득 0원’].
주간조선. 24-09-13. [추석에 돈 쓸 일 많은데…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은 10.8%].
브릿지경제. 24-09-12. [지난해 소매·음식업 5곳 중 1곳 폐업… 자영업 전체 폐업률은 10.8%].
헤럴드경제. 24-08-05. [‘자영업 문제’ 출구 아닌 입구 전략 시급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
세계일보. 24-07-20. ['고금리·내수부진' 벼랑 끝에 몰린 자영업자들… 정부 대책 충분한가].
한겨레. 24-07-17. [‘더 이상은 못 버텨…’ 폐업 자영업자 100만명 육박].
중앙일보. 24-07-03. [자영업자 점포철거비 400만원… 재창업엔 컨설턴트 붙여준다].
한겨레. 24-05-13. [[사설] 코로나 이후 자영업자 부채 악화, 이대로 둘 건가].
KBS. 24-02-27. [2022년 임금근로자 평균 소득 353만 원… “1위는 금융·보험”].
한국소비자인증. 2024. [2023년 국내 사업자 폐업율 분석 및 대책 보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