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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익허브 Jul 05. 2022

착한 콘텐츠가 풀어야 할 숙제 : 지루함


넷플릭스의 흥행 콘텐츠, 종이의 집이 한국에서 리메이크되었다. 원작은 스페인의 동명 오리지널 드라마 ‘종이의 집’이다. 원작 자체가 워낙 유명했고, 작품이 가지는 이미지가 뚜렷했으며, 기존의 범죄물과는 다른 콘셉트를 추구했기 때문에 현지화된다고 했을 때 큰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적인 감상부터 먼저 말하자면, 한국판 종이의 집은 뻔하다. 그래서 지루하다. 상황은 급박하지만 시청자는 인물들의 간절함에 몰입하지 못한다. 그들은 어차피 ‘옳은’ 선택을 하게 될 테니 말이다.


나는 종이의 집이 오징어 게임만큼의 흥행성을 가질 거라 예상했다. 감상만 보자면 둘 다 흐름이 뻔하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러나 종이의 집은 하면 안 되는 일은 하지 않는다. 반면에 오징어 게임은 하면 안 되는 일만 골라서 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거기서 작품의 지루함이 갈려버렸다.


해외에서의 호평과 달리 국내에서는 오징어 게임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포맷이었기 때문이다. ‘한국형 스릴러’가 낯선 국가에서는 오징어 게임이 흥미로웠겠지만, 한국인에게는 과거의 ‘답습’ 정도에 그치는 드라마였다. 


오징어 게임의 주인공은 제 어머니에게는 함부로 대해도 밖에서는 잘하는 ‘이상한 선량함’을 가진 인물이고, 위기에 빠진 여성 캐릭터는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의 성을 상품화시키며, 이 세계에서 인간의 목숨은 하찮고 존중받지 못한다. 


반면 종이의 집은 답습하지 않는다. 작품은 인물들이 ‘나쁜 사람이지만 다들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어’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그들의 악함을 합리화시키지 않는다. 덤덤하게 지금의 모습이 된 이유를 설명할 뿐이다. 여성은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머리를 쓰고 주변 인물들과 협력한다. 인간의 목숨은 귀중하며, 감정의 존중 또한 당연하다.


그러나 이렇게 뻔함을 답습하지 않은 종이의 집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래서 오히려 지루해졌다. 드라마의 위기가 시청자들에게 조마조마함을 선사해주지 못했고, 등장인물들은 선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게 될 거란 연출자의 ‘메시지’는 완전히 읽혀버렸다. 


연출자의 이러한 의도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우리에게 선보여질 콘텐츠들도 이런 방향성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징어 게임이 장르문학이라면, 종이의 집은 교과서다. 착한 드라마는 금방 지루해진다. 이야기에 반전이 없으니 자극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현재 착한 미디어 콘텐츠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다. 창작자들은 과거의 방법이 시청자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그 어떤 창작자도 시청자에게 일부러 나쁜 기억을 심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고민했다. 그 결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주인공과 사회의 이상향을 담은 작품이 세상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대중은 서점에서 교과서를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처럼 과거의 방법을 ‘답습’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는 명확하다. 


1.     시청자들은 악당에게 자신을 이입하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나와 비슷한’ 결함을 하나 심어주면 시청자와의 감정 동화에 더 효과적이다.

2.     인간은 주변 사람 모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고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보이는 것 이상으로 해석하여 판단한다. 미디어는 인간이 과장 해석한 모습과 비슷한 캐릭터를 등장시킨다. 거기서 시청자는 자신의 해석에 대한 합당성을 얻는다.

3.     자극적인 것은 어찌 됐든 기억에 남기 쉽다. 욕망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과 같으므로 이야기의 모든 무자비한 요소들을 합리화시킨다.


반대로 착한 미디어는 답습함으로써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이러한 장점들을 모두 버리고 시작한다.

종이의 집이 원작의 연출을 거의 그대로 따라간 것과 별개로, 갖고 있는 내용적인 지루함은 이런 부분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한다.


착한 콘텐츠는 그래서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꼬아야 하고, 더 많이 복잡해야 한다. 동시에 보는 사람에게는 명확하게 다가가야 한다. 이것이 창작자에게 얼마나 너무한 말인지는 같은 창작자인 내가 잘 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필요한 것이니 해야 할 수밖에. 


계속 단점만 이야기하긴 했지만, 분명 착한 콘텐츠만이 가지는 장점도 존재한다. 종이의 집은 보는 내내 불편한 감정이 들지 않는다. 밥 먹을 때 봐도 좋고, 자기 전에 봐도 좋다. 범용적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을 시청자층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원래 개척은 어려운 법이다. 성공사례도 적고, 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해야 하며, 주변의 지지를 받기도 힘들다. 

하지만 방향성이 옳다면 결국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라 걷게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종이의 집은 지루하지만, 다음 시즌까지 보고 싶은 작품이다. 

한국의 종이의 집 시리즈는 과연 착한 콘텐츠계의 영웅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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