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황나무 문

성황나무 문으로 들어가기

by 유재복

이노옴.

왜? 뭐야?

이놈들

대낮부터 술 마셨냐?

하하하.....


오랜만의 봉택이 전화다. 황당해서 웃음소리 끊어지길 기다려줬다.


너 이놈 할아버지 기억나?

.......

아 우리 어릴 적에......

아! 포도밭지기 할아버지?

응. 오늘 돌아가셨어.

그래? 그렇다고 내가 부고받을 자리는 아닌 것 같은데.......

자손도 친지도 아무도 없어서 내가 상주야. 그리고 넌 꼭 와야 해. 네게 유산을 남겼거든.......

뭔데?

모르지. 네가 확인해 봐야지.


유산이라고? 나를 어찌 알아서.......

아무튼 어릴 적 친구들 모여 술이나 한 잔 하자는 말과 혼자서 빈소 차리고 있다는 소리에 직원들에게 먼저 가겠다 하고 서둘러 나왔다.

금요일 정체시간보다 빨라서 막히지 않고 장례식장에 들어서 현관에서 화면을 살피니 알쏭달쏭한 영정사진 아래 상주 김봉택이란 이름이 보였다.

이응상? 아 이 씨 할아버지였구나. 가만 우리 아버지보다 일곱 살 위시네. 할아버지는 아니셨네.


방명록엔 모르는 이름이 둘 그 옆에 용진이 이름이 있다. 부조함은 막혔고 안내하는 이도 없이 문상을 못하고 돌아보니 식당에 앉아 있는 봉택이와 용진이가 손짓한다. 앉아서 들어보니 봉택이네와 이놈 할아버지와의 인연 얘기 중이었다.


봉택이네는 포도밭 바로 아랫집이라서 자주 오갔고 그때도 봉택이 아버지와는 술동무였단다. 포도밭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골짜기 산막에 사실 때도 봉택이 엄마 무릎 때문에 침놔주러 자주 들리곤 했단다.


"두어 달 전 엄마가 어딜 좀 가자 해서 모시고 갔더니 이 아저씨 요양원이야."

그때 통장 건너주며 자신의 장례를 부탁하더란다. 약초재배와 근면함 탓에 통장의 잔고는 생각보다 많았고 장례비하고 남은 돈은 어쩌냐는 말에,

"네가 가져"

"그럴 순 없죠. 다른 사람 아무도 없어요?"

"없어"

"그럼 어디 기부하시고 싶은 데는 없어요?"

"네 친구들 중에 도도라고 있지 않아? 그 애랑 상의해 봐."

"왜요?"


"성황나무 뒤에 있는 구멍 아래에 네 상장이 있대. 우리 어렸을 때 대낮에 포도서리 하려다가 꽁지 빠지게 달아난 적 있잖아. 그때부터 한참 동안 우리 얼굴 들켰다고 포도밭 앞으로 못 다니고 빙 돌아다닌 적 있지?"


생각났다. 여름방학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던 어느 날 치완이가 넓어진 철조망을 발견하고 딱 한 송이씩만 따먹자는 말에 서리를 시도했던 날, 봉택이는 앞질러가 이놈 할아버지 집과 원두막을 살피고 나는 신작로에 사람이 나타나나 망보고 치완이와 용진이가 철조망 안으로 들어갔었다.

"도도야, 칼 좀 줘"

포도송이를 잡고 빙빙 돌려 끊어보려던 용진이가 나를 불렀다. 연필 깎는 칼은 필통 속에 있으니 나는 서둘러 가방을 열고 공책 두어 권 빼내곤 필통을 쥐었다.

"어어, 어어"

봉택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내쪽으로 달려오며 벗어놓은 치완이 가방을 집어 들었다.

"이놈들"

이내 이놈 할아버지 목소리가 원두막 쪽에서 들려왔다. 나도 용진이 책가방을 들고뛰었다. 개울둑에 내려가 얼굴을 씻으며 우리는 한참 키득거렸다. 이 놈 할아버지는 그때 원두막에 누워 낮잠을 자던 중이라 안 보였는데 갑자기 뭔가 솟아 나오듯 일어나더란다. 그때 우리가 흘리고 간 신발주머니에 내 상장을 넣어 가져가라고 성황나무 아래 잘 보이는 곳에 두었는데,

"누군가 비가 오니 젖지 말라고 성황나무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던 것 같대."

포도밭 팔리고 산막으로 이사 갈 때 서운해서 한 잔 하시고 나무 아래에서 한참을 자고 나니 구멍아래 뭔가 보이더라는 거야. 손을 넣어보니 나무 구멍 아래쪽으로 가방이 떨어져 있더래. 그땐 우리가 모두 결혼하고 취직해서 그 동네 떠나온 뒤라 어쩌질 못하다가 나를 만나더니 생각났다고......


그게 유산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무슨 상장이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퇴근시간 지나자 치완이도 성혜도 도착해 인사할 새도 없이, 그때부터 아파트로 살던 땅 보상받고 그 동네에 남아 사시는 마을 어르신과 그분들 모시고 나타난 선후배들이 상가에 들어 서 우리는 번갈아 상주 역할에 지난 인사를 하느라고 바빠졌다.


"저기 호순이 아니야?"

어르신들이 가고 빈시간에 우리도 저녁을 먹는 중에 영정 앞에 웬 여자가 울고 있다.

치완이가 다가가 아는 척하는 사이에 봉택이가 설명을 한다.

"강호형 알지? 강호형이 이씨 아저씨랑 산막에 살았잖아"

"지금은?"

"몇 년 전에 산에서 굴러서 못 걸을 정도로 다쳤대. 어디 요양원 있다고 들었어"


상 치르고 이천만 원 정도 남았다. 다행히 아무도 그 돈에 다른 말을 섞진 않아서 우리는 오랜만에 고향 돌아볼 겸 호순이네 집에 들렀다.

강호형 병원비에 보태라는 말에 손사래 치던 호순이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바보 오빠 뒷바라지 하느라고 남편 눈치는 얼마나 봤을까? 어깨 두드려 주고 우리는 봉택이네 집이 있던 아파트에서 용진이네 집이 있던 아파트까지 내려왔다.


아파트로 빙 둘려진 마을 앞엔 수리산 등산객을 상대하는 막걸리 집과 카페가 있었다. 아이들은 막걸리 집으로 들어갔고 나는 성황나무로 올라갔다.


아파트 입구에 보호수 몇 호라고 쓰인 나무 뒤로 돌아가니 나무 구멍이 제법 컸다. 오가는 차들의 눈치를 살피며 구멍 안에 손을 넣었더니 가방이 만져졌다. 용진이 신발주머니였다. 그 안에 내 일기장과 일기최우수상이 나왔다. 아 이거였구나, 여름방학 끝나고 내 일기가 일기상 후보가 되었으니 그동안 쓴 일기도 가져오라고 해서 그전 겨울방학 일기와 그 사이 일기까지 다 선생님께 드리고 그날 상장과 일기장을 돌려받고 오던 길이었다.


용진이는 제 손바닥만 한 실내화를 꺼내 들고 킬킬거리고 치완이는 막걸리에 취했고 봉택이는 어머니집에 간다고 나갔고...... 우리는 헤어져 집으로 돌아와 일기장을 폈다.


4학년 겨울방학일기와 5학년 여름방학일기 사이에 당시 5학년 담임이셨던 이경희 선생님이 일기 검사를 자주 하신 터라 급조한 듯한 띄엄띄엄 일기장도 두권 있었다,

쓰기 싫은 날은 시 흉내로 두어줄 함부로 쓰고 연필 사이로 지나간 얼룩 틈으로 꽤 긴 글도 보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던 그 반년, 주운 흑백사진처럼 연필글씨 사이를 오래 내려다보면 그날의 앞, 뒤와 아이들 엄마, 아버지 표정도 생각났다.

달라붙어 입 꼭 다문 일기장의 끝을 열어 한 장씩 넘기며 피식피식 웃다가 어느 순간 나는 눅눅해졌다.


성황나무 구멍 바로 아래엔 마치

판타지 영화 속 요정마을보다 더 예쁘고 따뜻한

나의 동화마을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