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식
교장선생님의 훈화가 시작되었다
몇 가지 어린이 여러분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은
에, 또.....
에, 또......
선생님은 계속
에, 또,에, 또 하고
우리는 여기저기서
에취, 에취 했다
거기 5학년 2반 맨 뒷줄......
다 보이는 교장선생님 때문에
아주 조금씩 꼼지락거릴 뿐 고무신은
땅바닥에 얼음처럼 붙어버렸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에, 또.....
에, 또.....
에휴, 방학식이 먼저 끝날지
겨울방학이 먼저 끝날지......
"펑펑펑"
"이게 무슨 소리고?"
눈을 뜨자 방안이 훤했다. 그 사이에도 지붕 위에선 연이어 폭발음이 들렸다. 내 머리통이나 겨우 들어가는 조그만 창호지 창문으로 들어오는 불빛이 대낮처럼 방안을 훤히 비췄다.
"미군들 훈련이 시작된 모양이야."
주섬주섬 겉옷을 챙겨 입으며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양말이며 목도리를 챙겨 주시며 엄마도 겉옷을 입으신다. 조명탄 불빛에 드러나는 형의 이빨 빠진 입을 보니 신이 나서 웃고 있는 게 틀림없다. 놀라서 정신 못 차리고 있던 세 살배기 막내가 엄마 목소리를 듣자 그제야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방문을 열자, 기다렸다는 듯 새파란 겨울바람이 재빨리 방 안으로 쳐들어온다. 앞마당 구석으로 달아나는 쥐새끼가 보이고 담장 너머로 먼 앞산까지 훤하게 보였다.
"조심하세요. 산길이 미끄러울 텐데……."
그 사이에 막내를 포대기로 업으신 엄마가 아버지를 따라나서며 목도리를 묶어 주신다.
"걱정하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자"
"어이구 저것들이 자겠어요?"
형과 나는 마당에 내려서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소나무가 울창한 뒷산 꼭대기에 서너 개 되는 커다란 별들이 연기를 내며 천천히 떨어지고 있었다.
"펑"
"야아"
앞 개울 너머 산 위에서 폭발음과 함께 연기가 보이더니 별 하나가 떠서 천천히 떠다니고 있었다. 뒷산 기슭에서 어른들 목소리가 들리자 아버지는 부리나케 대문을 나섰다. 엄마 뒤에 서 있던 형이 슬그머니 대문으로 움직였다.
"이누무시키 어디 가?"
엄마가 형의 한쪽 팔을 잡으며 돌려세웠다.
"아버지 따라 쪼끔만 갔다 올게"
"얼마나 위험한데, 양말도 안 신고…… 어딜?"
그러고 보니 형이나 나나 맨발에 고무신을 신고 있다. 조명탄 불빛이 얼마나 훤한지 형 발등의 땟국이 훤히 보였다.
"뭘? 저기 봉호 형도 갔는데……."
"봉호하고 너랑 같아?"
하긴 봉호 형은 어른들과 키가 같았다. 이제 열세 살인 형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 조기 산 아래까지만, "
"이런 염병할 놈이"
"퍽!"
팔을 비틀며 빠져나가려던 형의 등에 엄마의 커다란 손이, 거의 형의 등만 한 손바닥이 내리쳐졌다. 형은 날개 꺾인 닭처럼 팔을 꺾으며 주저앉았다.
자기도 될 일이 아니라서 억울하지는 않은지, 어구어구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앉아 있지만 울지는 않았다.
엄마 뒤로 보이는 마루 끝에서 셋째 운도가 몰래 들고 있던 고무신을 큰형이 등을 맞고 넘어지자 재빨리 마루 밑으로 던지는 것이 보였다. 뒤돌아서던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딴청을 한다.
“와아아 께꾹 와아아 껙”
소리 내 보지만, 녀석 놀랬구나. 딸꾹질한다.
엄마는 뭐든지 다 안다. 딸꾹질하는 운도를 잠시 내려다보던 엄마가 형을 부른다.
“얘 추워서 딸꾹질한다. 어서 옷 입혀서 개울까지 가서 놀다 오너라.”
오그라져 있던 형의 몸이 용수철처럼 펴지더니 이빨 빠진 입이 보인다. 눈치 빠른 내복바람의 운도가 먼저 방으로 뛰어들어가고 형을 따라 나도 재빨리 들어갔다.
“군인들 훈련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애 얼기 전에 들어와”
우리 셋은 벌써 대문을 벗어났다.
신작로도 훤했다. 저 아랫사람들이 신작로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이 보였다. 신작로 너머는 개울이었다. 형은 운도는 팽개치고 개울로 내려선다.
운도 손을 잡고 내가 개울가 얼음 위로 올라서자 형은 쭈그리고 앉아 얼음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운도와 나도 형 옆에 쪼그려 앉았다.
“히야 진짜 환하다. 엉아”
운도 말처럼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개울물이 다 들여다보였다. 형이 나무토막으로 두드리는 얼음 밑에 잠자다 깬 똥고기 한 마리가 느릿느릿 헤엄치고 있었다.
형이 따라가며 계속 두들기자 다른 물고기들도 깨어 언 몸으로 비실비실 헤엄치고 있었다.
운도도 그 사이에 나무막대기 하나를 주워 들고 형을 따라 얼음판을 두들기며 돌아다녔다.
“뭐 하는 거야?”
등 뒤에서 용팔이 형이 묻는다. 그 뒤에는 아직도 하품하는 용진이가 따라온다.
“왜 이제 나오냐?”
형이 용팔이 형에게 묻는다. 마침 빙판으로 올라서며 미끄러져 비틀거리는 용진이 머리를 쥐어박으며 용팔이 형이 말한다.
“이 녀석 때문에. 천둥소리 무섭다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바람에…….”
“겨울에 무슨 천둥소리?”
“그러게, 가만히 누워서 생각해 보니 눈 올 땐 천둥이 안치잖아? 그런데 뭐 하는 거야?”
“봐 봐 물속이 낮보다도 잘 보여 똥고기들이 많아”
“히야 진짜네”
용팔이 형도 용진이도 형이 두들기는 곳을 따라가 보며 소리를 질렀다.
“이럴 줄 알았으면 썰매를 갖고 나올걸”
용진이가 미끄럼을 타며 말한다. 형들도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미끄럼을 탔다. 그 사이에도 미군의 포 사격은 계속돼 너울 사이 흐르는 물방울이 반짝거렸다.
“어 어 어”
“하하하 새끼 메기 잡았네”
용팔이 형 웃음소리에 바라보니 형이 경사진 빙판 끝까지 미끄러져 내려가 얼지 않은 구덩이에 한쪽발이 빠져 있다. ‘어이구 매를 버는구나’ 조금 전 형의 등에 내리쳐진 엄마의 솥뚜껑 같은 손이 생각났다.
“영도야 영도야”
마침 집 쪽에서 엄마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씩 어둑해지는 게 미군들 훈련이 끝나가는 모양이었다. 나는 운도 손을 잡고 먼저 신작로에 올라섰다.
“엉아, 저거 저거…….”
운도는 자꾸 뒤돌아보며 한쪽 발을 쩔뚝거리며 따라오는 큰형을 가리킨다.
“쉿, 엄마한테는 이르지 마”
형은 고자질한 셋째를 그냥 두지 않는다. 쩔뚝거리던 형은 집이 가까워질수록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간다. 형과 나는 한 이불을 쓴다. 젖은 내복이 내 몸을 덮칠 거다.
“왜 이제 오는 거야? 애가 꽁꽁 얼었네.”
운도 얼굴을 쓰다듬으며 옆으로 지나가는 형에게 엄마가 말한다. 정말 고자질은 싫지만 형의 젖은 다리는 더 싫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손가락으로 형의 다리를 가리켰다. 마침 걸음을 빨리해 대문을 들어가는 형의 발소리에는 절벅거리는 물소리가 났다. ‘아 엄마는 뭐든지 다 안다’
“영도 너 잠깐만”
얼음땡처럼 형의 몸이 그 자리에 그대로 멈춘다. 엄마가 형의 바지를 만져 본다.
“그게 아니고 운도가 미끄러지기에, 잡아주다가…….”
“내가 언제? 형아가 지 혼자서 미끄러지고서”
이때다 싶어 운도가 소리를 지른다.
“동생들 잘 보라고 보냈더니, 이런……. 퍽”
쯧쯧 바보형. 기어코 솥뚜껑으로 또 맞고 마당에 나가떨어졌다.
“어서 들어가서 빤스까지 다 벗고 이불속으로 들어가”
“빤스는 안 젖었어요.”
“여기서 벗겨줄까?”
끝내 앙알거리던 형이 재빨리 방 안으로 뛰어든다.
뒷산 너머로 별 하나가 떨어지자 마당이 어두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