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공멸이 아닌 공존번영의 길 - 교육, 과학, 문화의 국제협력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 유네스코는 명칭대로 교육, 과학, 문화 분야의 국제협력을 통해 세계 평화와 안보 증진을 목표로 하는 국제기구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 평화를 심는다"는 유네스코의 비전에서도 알 수 있듯, 군사력 또는 정치권력이 아닌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비안보분야에서의 소통과 교류가 서로의 신뢰와 협력의 필요성을 증대시켜 인류의 공동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네스코의 등장은 유엔의 전신, 국제연맹(League of Nations)의 역사에서 출발한다. 1921년 9월 21일 국가들이 문화, 교육, 과학적 성과를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타당성을 연구할 위원회를 선출하는 국제연맹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이를 통해 1922년에 탄생한 국제지적협력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n Intellectual Cooperation, ICIC)에는 아인슈타인, 퀴리부인 등이 참여하여 지식인 간의 국제교류를 촉진하는 자문기구의 역할을 담당했으며, 1924년 국제지적협력연구소가 설립되어 관련 활동을 이행하게 되었다.
더불어 1925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설립된 국제교육국(International Bureau of Education, IBE)은 교육분야 최초의 정부간 기구로 발전하여, 교육과정, 교수, 학습, 평가 등의 영역에서 회원국들의 역량강화를 지원하기 위한 정책 권고, 지식 공유 등을 수행하게 되었다. (IBE는 이후 1969년 유네스코 산하 기관으로 통합)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국제협력에 좌절을 남겼다. 관련 논의가 부활한 것은 대서양 헌장과 유엔 헌장이 서명된 후, 연합국 교육장관회의가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진행되면서부터이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1945년 4월부터 6월까지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국제기구에 관한 유엔 회의의 권고에 따라 11월 16일 유네스코가 창설되었다.
유네스코 창설과 발전에 대한 사상적 기반에는 영국의 교육부 장관 래브 버틀러(Rab Butler)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참석했던 영국 의회 의사록에 의하면, 유네스코의 초기 구상은 전후 세계의 과학, 문화, 교육 분야의 국제협력을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파괴, 지적 수준과 문화 교류의 기회에 가해진 피해, 사회 및 재정적 재앙"의 문제를 극복할 뿐만 아니라 "사상의 영역에서 증오와 의심으로 인해 형성된 장벽을 극복하고, 지성과 사고의 영역에서 무엇이 최선인지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는 숭고한 목표가 있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은 1920년대 등장했던 교육분야의 국제협력과 유사하게 유네스코의 등장 역시 '전후' 세계의 안정을 위한 해결책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은 말 그대로 세계를 전쟁의 도가니 속에 넣고 지구촌 전체를 고통과 절망에 빠뜨린 인류 공멸의 충격적 사건이었다. 수천만 명의 피의 희생과 잔인한 학살을 경험하고 나서야, 인류는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이 재앙과 같은 사건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 위한 열망에 동의하게 되었다. 세계 경제도, 건물도 파괴적이었지만, 세계대전의 가장 큰 파괴는 인간성과 문명 그 자체였다.
지식 공유을 통한 보편적 가치의 공유, 그리고 상호이익을 위한 발전의 협력을 통한 공존 의식은 전쟁의 뼈아픈 교훈에서 나온 소중한 발견이었다. 문화와 공동체, 사람을 연결하는 지적 협력은 그러한 보편적 가치와 정신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장이었던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자유로운 공유가 문명을 더욱 풍부하게 하고 공동의 발전을 낳을 것이라는 신념에서, 군국주의와 민족주의를 포함한 전쟁을 만들어낸 극단적 사상을 극복하기 위한 장기적인 힘의 토대를 만들려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