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의미에 대하여
1941년 태국에서 등장한 한 영화는 여러 면에서 혁신적이었다. 수백 명이 뒤엉킨 전쟁 장면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코끼리까지 동원되었으며, 현지 배우들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로 연기를 하는가 하면, 실제 당시 왕궁을 로케이션으로 하여 왕실의 모습은 물론 전통 음악과 무용까지 표현해냈다.
영화 '흰 코끼리의 왕'(1941)은 태국을 전제군주제에서 입헌군주제로 전환시킨 혁명을 주도하고 명문 탐마삿 대학교를 설립한 프리디 바놈용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1540년경 태국의 왕조 아유타야를 통치한 차크라 왕이라는 가공인물을 설정하여 반전과 평화에 대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즉위 3년 째 시종장으로부터 365명의 아내를 두는 전통을 따르라는 조언을 받았지만, 차크라 왕은 인도로 세력을 확장하는 물Mul 대왕과, 주변강국인 혼사Honsa 왕이 동맹을 맺고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무에 집중한다. 혼사 왕의 나라는 아유타야와 조약을 맺은 우방이지만, 혼사 왕은 야심이 있고 아유타야는 말과 코끼리가 부족하여 여인 보다는 군대가 필요하다고 차크라 왕은 말한다.
군사력을 키우기 위해 직접 코끼리를 잡으러 떠난 차크라 왕과 군사들은 많은 코끼리 외에도 흰 코끼리를 잡았다. 흰 코끼리는 신성한 동물로서 왕국이 번영하고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길조를 의미했다. 반면 혼사 왕은 신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유타야와 맺은 조약 문서를 찢고 아유타야에서 잡은 흰 코끼리를 바칠 것을 요구했다. 혼사 왕의 서신에는 많은 코끼리를 모으는 것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것은 극단적 도발로 간주하여 조약을 파기한다고 밝히고, 평화를 원하면 흰 코끼리를 바치라고 요구하며 이를 거부할 경우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겁박한다. 결국 차크라 왕의 거부를 구실로 삼아 혼사 왕은 전쟁을 준비하라 지시한다. 많은 백성들이 탄식하고, 한 노병은 일생 동안 10번도 넘게 전쟁에 나섰다며 흰 코끼리 하나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죽는 전쟁을 멈출 것을 호소하자 혼사 왕은 창을 던져 그 노병을 죽였다.
혼사 왕의 군대는 국경의 마을을 정복하고 남성들과 아이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여성은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마을을 불태우도록 명한다. 선전포고 없이 침략한 상황에 차크라 왕은 친정의 의지를 밝히며, 병사들에게 개인의 야망을 위해 백성을 희생시킨 댓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 말하며 타국의 백성 전체가 아닌 혼사 왕을 대상으로 한 정의의 전쟁임을 강조하여 불가피한 전쟁의 정당성을 설파한다.
승리에 도취되어있던 혼사 왕은 음식과 술, 여성을 즐기는 사이 그의 군대는 아유타야 군에 의해 패배했고, 차크라 왕은 더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 왕과의 일대일 대결을 제안한다. 코끼리를 탄 두 왕의 싸움은 끝내 혼사 왕의 패배로 끝난다. 차크라 왕은 포로들을 석방하며 불필요한 전쟁이었음을 말하며 평화를 위해 집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전쟁에 승리하고 돌아온 왕은 시종장의 딸을 왕비로 맞이하고, 그녀의 조언에 따라 365명의 아내를 두는 특권을 포기하는 대신 365 마리의 코끼리를 길러 국력을 키울 것을 다짐한다.
차크라 왕의 이야기는 역사인물을 모티브로 하였다. 아유타야 15대 국왕 마하 차끄라팟에게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실제 역사에서 마하 차끄라팟은 버마와의 전쟁에서 패하고 심지어는 왕비가 칼에 맞아 전사하는 비극을 겪었다. 이후에도 버마 왕 바인나웅이 흰 코끼리를 바칠 것을 요구한 것을 거절하였다가 아유타야의 수도가 포위되었고, 아들과 자신까지 인질이 되었다. 석방이 된 후에도 버마에 저항했지만 곧 사망하고 말았다. 이후 아유타야는 버마의 속국으로 지내다가 마하 차끄라팟의 손자로 태국의 위대한 정복군주 나레수안에 의해 1593년 버마 왕세자와의 일대일 코끼리 결투 끝에 승리하여 강대국으로 부상하게 된다.
영화가 마하 차끄라팟의 서사를 도입한 것은 패배의 역사를 평화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려는 시도였다. 영화를 만든 프리디 바놈용은 1940년대 당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과거 아유타야에 대한 버마의 위협으로 연결시켰다. 흰 코끼리를 요구하는 행위 역사 외세의 불합리한 요구이자 불필요한 전쟁의 명분으로, 특정 지도자의 욕심에 의한 상징으로 설정한다. 실제 역사와 달리, 영화 속 차크라 왕이 외세의 위협에서도 자신의 힘을 통해 적을 물리치는 이야기는 태국이 세계대전 과정에서 타국을 침공하는 제국주의적 야욕을 삼가하고 외세의 위협에 단호히 맞서 싸울 수 있는 힘과 명분을 갖춘 평화의 수호자라는 이미지를 극대화한다. 패배자의 역사를 승리의 서사로 바꾼 것은 정복이라는 군사적 우월성이 아닌 부당한 침략 속에 저항하는 도덕적 우위를 강조하는 평화주의적 관점인 것인다.
영어로 촬영된 이 영화는 관객의 대상이 전 세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동방의 무지하고 무능하고 야만적인 군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높은 도덕성을 가진 문명국이자 여러 나라들이 공존할 수 있는 지혜와 힘을 가진 평화의 수호자로 세계에 태국을 알리고자 한 것이다. 더불어 왕이나 지도자와 같은 특정 권력자에 의해 다수의 백성들이 전쟁에 동원되고 희생되는 것을 비판하며 평화와 민주주의를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이 영화의 서사나 관념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태국에서 만들어진 영화의 특성상 근원적으로 전쟁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 체제, 지도자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다수 백성의 안전을 위해 전쟁을 피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평화를 위한 다수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을 지도자 개인의 덕성이나 의지에 맡기고 있다. 또한 전쟁은 당사자 사이에서의 소통부재 또는 오해에서 발생하기도 한다. 아유타야의 군사력 강화라는 시그널은 주변국에서 안보 위협으로 여겨졌고, 이는 영화에서나 실제 역사에서는 적국의 침공이라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원인이었다. 군사력 강화가 전쟁을 막느냐 오히려 확대시키느냐는 영원한 과제이지만, 힘으로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한 나라의 의도가 타국에게 긴장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프리디 바놈용이 말하는 평화는 상호 소통이 부재한 상황에서 강력한 군사력에 의존해야 한다는 모순에 기인하게 된다.
이러한 모순은 코끼리에서 가장 극대화된다. 적극적인 소통과 외교, 균형 등 다양한 방식으로전쟁을 예방하고 차단하기 위한 노력 보다는 전차부대와 같은 코끼리를 모아 군사력을 증강시키는 행위는 정당화되고, 외세의 침략은 특정 지도자의 잘못된 인성 또는 욕심으로 치부한다. 결국 흰 코끼리의 왕은 도덕적으로 우월하며 평화를 사랑하는 군주이지만, 근원적으로는 피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라는 모순의 상징이 된다.
물론 태국과 불교문화권에서는 위와 같은 해석을 달리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마야부인이 흰 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붓다를 잉태하였다는 점에서 흰 코끼리를 탄 군주는 영적인 힘과 지혜로서 다스리는 정의롭고 덕성을 갖춘 지도자이다. 전쟁에서 승리하여 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희생을 멈추고 평화를 이루어내는 것은 위대한 군주가 이루어야 할 과업인 것이다.
당장의 판단보다는 평화란 무엇인가를 질문을 던지는 이 영화를 보며 생각해보면 어떨까.
1940년대에 만들어진 영화는 오늘날 태국에서도 다양한 관점에서 논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영화는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