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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앙금 Jan 03. 2024

네가 우는 것은 나약해서가 아니야.


오늘은 운이 좋았다. 나는 환승 구간이 꽤 긴 홍대입구역에서 배차 간격이 길기로 소문 난 경의선을 타는데, 2호선에서 내려 경의선을 타는 곳으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걸었을 뿐인데 – 막판에 전속력으로 달렸지만 – 경의선을 놓치지 않고 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이 아니라 열차에서 내려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니 집으로 가는 직행버스가 듬직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 시간과 버스 시간이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10분은 족히 기다려야 하는 버스인데도 말이다. 이 직행버스로 말할 것 같으면 늘 타는 사람이 많아 출근길에 타든 퇴근길에 타든 콩나물시루 속 콩나물이 되는 것쯤은 감수해야 한다. 그래도 이 버스를 타면 10분 정도는 빨리 집에 도착할 수 있으니 사람이 많아도 무조건 타는 것을 선택한다.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방금 열차에서 내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까지 더해져 버스 안에서 사람들은 테트리스 게임처럼 빈틈도 없이 차곡차곡 포개지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빈자리가 없어 진짜 테트리스 게임이라면 ‘게임 오버’라는 글자가 뜰 듯한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버스 기사님은 아량을 베풀어 승객 몇 명을 더 태웠다. 그중에는 할머니와 손자로 보이는 어린아이도 있었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버스로 들어선 아이는 할머니의 무릎 정도에 올 정도로 키가 작은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만원 버스를 처음 타 봤는지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고요한 퇴근길 버스 안에서 연신 큰 목소리로 무섭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괜찮다고 금방 내린다고 말하며 아이를 달랬지만, 그래도 아이는 불안한지 계속 무섭다고 이야기했다.      


버스나 아빠 차를 타는 것이나 비슷한 느낌일 텐데 뭐가 그렇게 무서운 것일까 의아했는데, 아이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면 그럴 만도 했다. 검은 패딩을 입은 어른들 사이에 키가 작아 창문 밖 풍경을 볼 수도 없고, 손의 힘이 약해 기둥을 잡아도 몸이 쉽게 흔들릴 것이고, 더군다나 지금이 어디쯤이고 몇 개의 정류장 지나야만 답답한 버스에서 내릴 수 있는지도 모를 테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나도 어렸을 때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을 무서워했다. 놀이기구처럼 불규칙적으로 흔들리는 버스나 지하철에서 행여 넘어지면 얼마나 아플까 하는 두려움은 아무리 엄마가 옆에 서 있어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 언제부터였을까. 버스나 지하철이 더 이상 두려운 공간이 아니게 된 것은. 지하철에서 기둥을 잡지 않아도 두 다리만으로 관성을 버틸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버스에서 안내 방송을 듣지 않아도 창문 밖 풍경만으로도 지금이 어디에 와 있는지 알게 되었을 때는. 도착지까지 눈을 붙이고 짧은 단잠을 잘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 때는 언제였을까. 그 시기가 언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순간을 만들어준 것은 무엇인지 안다. 그것은 무수한 경험이었다. 수백 번, 수천 번의 경험들이 지하철과 버스를 익숙한 공간으로 인지하게끔 만들어 주었고, 그 공간에서 적응하는 나름의 요령을 만들어 주었으며, 그런 요령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게끔 하는 여유를 선물했다. 


버스를 타는 것이 무섭다던 아이는 자신만이 유별나게 연약하고 나약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위험천만한 버스 안에서 무덤덤하고 심드렁한 어른들의 표정들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면서. 그곳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며 울고 있던 자신의 존재를 창피하게 여기면서. 하지만 그 아이가 알았으면 좋겠다. 버스가 무서운 이유는 네가 특별히 연약해서도 나약해서도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단지 경험이 부족해서라는 것을. 그리고 그 경험은 친구와 놀러 가기 위해 버스를 타는 날에, 대학 캠퍼스로 향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는 날에, 교통 체증을 피하기 위해 출근길에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그런 평범한 날에 소복소복 쌓인다는 것을. 그러니 불안해하지도, 조급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생활에서 막 걸음마를 떼고 아장아장 걷고 있는 나를 비롯한 사회초년생들에게도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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